"적십자사, 지금이 '국가 비상 상황'인가?"

[기고] 면역진단시스템 입찰, 3년을 끌더니 긴급수의시담?

지난 7월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에서 주최한 '국가혈액안전관리 이대로 좋은가?' 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토론자들은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사실상독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혈액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성토했다. 핵심은 앞으로 예측 가능한 혈액수급의 불안정성과 현재 드러나는 각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혈액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국가혈액사업 컨트롤타워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기구가 국가혈액관리원이든, 국립혈액원이 됐든 이름과 형식은 추후 더 논의하더라도 그런 기능을 해야 하는 조직의 필요성에는 모두 동의했다. 그날 참석했던 적십자사 혈액사업 본부장까지도 말이다. (☞관련 기사: "적십자사 아닌 국가 주도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 적십자사에서는 노조원들까지 나와 공식적인 토론회장에서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혈액사업본부장은 여전히 자신들이 문제없이 공정하게 혈액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적십자사의 주장과 태도에 반하여, 최근 행태를 보면 적십자사의 독점 시스템을 손봐야 하는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든다. 그동안 적십자사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최근 문제가 된 것은 면역진단시스템과 혈액백 입찰 관련 건이다. 면역진단시스템 입찰은 올해 들어서만 2번 유찰이 되었다. 물론 2016년에 이미 계약완료 했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햇수로만 3년째 계약을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 입찰의 평가방식과 기준을 두고 공성성과 투명성에 대해 수없이 문제제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에게 '부적격 처리되었다'는 문자통보나 올 뿐 외부의 사람은 고사하고 입찰 참여 업체조차도 평가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진행되고 왜 떨어졌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왜 적십자사는 국책사업으로 인정되어 국민의 혈세를 들여 개발한 국내업체의 장비는 평가도 안 해보고 탈락을 시키는 것일까? 왜 서류에서 이미 탈락을 시키고도 특정 서류를 문제 삼아 검찰에 고발까지 하면서, 대기업인 LG화학(다국적사인 지멘스와 컨소시엄으로 입찰 참여)의 동일한 서류의 문제는 '참고 서류'라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일까?(관련 기사 : LG화학 "서류 냈다"...적십자사 "받았지만 참고서류") 한마디로 적십자사에게 밉보이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입찰 관련해 계속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그런 것이 아니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행태다.


그렇게 2번이나 입찰이 유찰된 것에 대해 적십자사의 혈액사업본부장은 공식적인 토론회장에서까지 탈락한 특정업체 대표와 필자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오히려 내가 입찰방해의 주범인양 말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이제 그 업체는 국내에서 앞으로 적십자사하고 사업하기는 다 글렀다'는 말도 대놓고 한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적십자사의 '갑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적십자사가 2번의 유찰을 근거로 이제는 특정 다국적 업체와 수의계약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보통 이렇게 2번의 유찰이 된 경우에는 다시 2번의 입찰과 유찰을 더 거치는 것이 통례인데, 이번에는 국가 비상재해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에나 할 수 있는 긴급수의계약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알려졌다.

정부 입찰 계약 집행기준(2016.12.30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제318호)

제4장 공사의 수의계약 운용요령
제7조의2 (긴급에 따른 수의계약) 시행령 제26조제1항제1호 가목에 의한 긴급한 행사, 긴급복구가 필요한 수해 등 비상재해 그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로서 경쟁에 부칠 여유가 없을 경우라 함은 시행령 제35조제4항 등에 따라 긴급 입찰공고에 의한 경쟁입찰에 의하더라도 계약목적의 달성이 곤란한 경우를 말한다.

위의 긴급수의계약 조항에 대해 법 관련 전문가들은 아예 하지 못하도록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긴급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도 자의적일 수 있지만 보통 긴급한 경우조차 관계 행정기관의 태만이나 준비 지연 등이 주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마 적십자사가 긴급수의계약을 한다면 매번 이유를 들었던 혈액사업의 중요성이나 긴급성을 또 거론할 것이다. 이는 자기들 때문에 2년을 넘도록 하지 못했던 일을 결국 나중에는 국민들을 겁박해서 목적한 바대로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다. 적십자사는 외부에서 재입찰의 입찰서류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이후 LG화학을 성능평가에서 탈락시키고 애보트사 만을 성능평가에서 합격시켰다. 아뿔사! 애보트의 입찰가가 예정 가격 초과여서 재입찰이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적십자사는 이제는 아예 예정 가격 자체를 높여 웃돈까지 줘가면서 긴급수의계약을 시도하고자 하는 상황이라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는 2016년처럼 더 이상 가격을 낮추지 않을 것이라는 애보트의 입장을 염두에 둔 적십자사의 전무후무한 초강수(?) 아닌 초약수이다. 한 업체와 그것도 다국적 업체와 독점 계약을 하면 향후 약가를 통제하기 훨씬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다른 약제의 경우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필자로서는 그 위험성이 더 크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현재 쓰고 있는 애보트의 장비는 이미 단종된 구형 장비다. 이 장비로 계약하면 향후 5년이 기본 계약이고 다시 5년 연장하는 걸 생각하면 앞으로 10년을 단종된 구형 장비를 써야 한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은 이번 재입찰에서 떨어진 업체 관계자가 소상히 알려주었다. 이게 바로 이렇게 업계 내부 관계자가 아니면 외부에서는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적십자사의 국가계약 방식이다.

적십자사가 한 나라의 혈액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우리나라의 혈액주권을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지 개탄스럽다. 정말 묻고 싶다. 정말 국민을 위한 공복 기관이라는 생각이 있기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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