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양에서의 삶을 모른 체 하고 있었다

[프레시안 books] 진천규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2017년 8월, 트럼프는 "북한은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중장거리 전략 탄도로켓 화성-12형으로 괌도 주변에 대한 포위 사격을 단행하기 위한 작전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말폭탄'이 오갔다. 트럼프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트위터 선전포고'를 할지 모른다는 말들이 나왔다. 우스개였지만 웃을 수 없었다.

북미 간 긴장도가 하늘을 찌르던 2017년 9월, 중국 심양의 한 호텔 로비.

"기필코 방북을 원합니다."

언론인 진천규는 외쳤다. 1998년 한겨레 신문 창간 기자로 합류해 판문점 출입 기자,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취재 기자를 지냈던 베테랑 사진 기자 진천규는 미국 뉴욕에 있는 주유엔 북한대표부를 통해 비자를 신청했다. 비자는 평양 당국의 심사를 거쳐 중국 심양 영사관에서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9월부터 미국 시민권자들의 북한 방문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 행정명령은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함께 가기로 한 재미 언론인들은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생겼다. 진천규는 혼자라도 가겠다고 외쳤다. 그렇게 해서 그는 2017년 10월 6일부터 9일간을 시작으로, 11월 10일부터 13일간, 그리고 2018년 4월 11일부터 11일간, 6월 23일부터 15일간 총 네 차례 평양과 원산, 남포 등지로 들어갔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후 한국 국적의 언론인으로서는 최초 단독 방북 취재였다. 무려 8년이 걸렸다.

외국 기자들의 방북 취재와 다른 점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남북 분단의 역사가 오롯이 몸에 새겨져 있는, 같은 말씨를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그의 방북 취재가 특별한 이유다. 그의 사진 속에는 우리 민족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외국인 기자에게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힘이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진천규 지음, 타커스 펴냄. 이하 <평양의 시간>)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진천규
▲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 만두, 계란 등이 있고 푸짐해 보인다. ⓒ진천규

당신이 '아는' 북한, 거기에 '있는' 북한

북한의 이미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 무려 70년간 굳어져 온 이미지다.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와 실제의 구분은 무의미하다지만, 그래도 '허구를 걷어내고 실제에 가까운' 이미지를, 숨겨진 어떤 것을 드러내려 노력해 온 일련의 직군이 사진 저널리스트들 아닌가 한다.

우리가 북한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은 틀에 박혀 있다. 거대한 미사일을 실은 군용 트퍽, 제복 입은 군인들의 기계적 사열,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과 군복 입은 그의 측근들, 굶주리는 아이들, 노동에 찌든 청년들, 그리고 가시 돋친 구호들. 생활상은 영락없이 1950~60년대 남한의 모습이다. 언론은 이를 소비하고 재생산한다. 북한 관련 뉴스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불꽃을 뿜는 미사일, 버섯 구름 배경 속에 인민복을 입은 김정은 따위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평양의 시간>은 우리가 아는 곳과 다른 평양을 소개한다. 단둥발 평양행 기차에서 먹는 도시락은 푸짐해 보인다. 핸드폰(손전화)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리고, 학생들은 재잘대며 청년들은 사랑을 나누고 가족들은 푸근함을 보여준다. 공원과 전철,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옥류관엔 긴 줄이 서 있다. 아파트 베란다엔 장독대가 놓여 있고, 식당에선 유기농 식탁 차려지며, 맥주집 스탠딩 홀에서는 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간혹 카드를 사용해 물건값을 낸다.

믿을만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북한에는 손전화 600만 대가 돌아다닌다고 한다. 한 대에 얼추 300달러 정도다. 거칠게 계산하면 18억 달러의 '하드 커런시'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북한 경제도 사실상 '달러화'가 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공식 시장이 500개 정도, 장마당이 500개 정도 존재하며, '암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북한 경제가 망가졌고, 대북 제재로 현재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야 한다는 허구의 '당위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남한의 보수 정치인들은 이를 믿지 않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평양은 변했다. '고난의 행군'에서 빠져나왔고, 극심한 제재 속에서도 '생존'에 성공했다. '달러 경제'를 막고 무리한 '경제 독립'을 추구하지 않았던 게 주요했다. 모두가 '망할 것'이라고 했던 쿠바가 어쩔 수 없이 '달러 경제'를 인정하고 시장의 이원화(이중 경제)를 방조해 생존에 성공한 것처럼, 북한도 비슷한 상황으로 현재까지 온 것 아닌가 추정된다. 특히 북한에게는 중국이라는 경제 대국이 있었다.

진천규가 보고 느낀 것,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도 바로 그 지점이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멋을 알고 유행을 알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단둥발 평양행 기차 안에서는 '만두 도시락'이

▲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진천규 지음, 타커스 펴냄). ⓒ타커스
진천규는 '단동-평양 국제 여객열차'를 타고 신의주, 정주시, 안주시를 거쳐 평양역에서 내린다. 시간표상으로 단동에서 10시에 출발, 10시 5분에 신의주 도착 후, 17시 20분에 평양에 닿는 여정이다. 열차는 시속 40~50킬로미터로 운행된다. 선로가 단선이라 맞은편에서 열차가 오면 평양으로 가던 열차는 잠시 비켜서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한다. 열차 안에서부터 그의 호기심은 시작된다. 그가 묘사한 기차 풍경은 매우 흥미롭다.

"신의주역으로 출발하면서 승객들은 미리 출입국 카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신의주역에 열차가 서면, 검사원들이 여권 검사와 세관 조사를 한다. 세관검사원들이 열차에 타서 직접 육안으로 검사하는데, 2017년 10월 방북 땐 2시간 남짓, 그 다음 11월 방북 땐 3시간 조금 못 미친 시간이 걸렸다. 과도하게 검사한다는 느낌은 없으나, 모든 승객의 짐 가방 하나하나를 검사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 외설물의 밀반입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생활용품이나 기본적인 물건들은 거의 제한 없이 가지고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 이동 시간이 길기에 객실 안에서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안주로 고기를 먹는 사람이 많다. 열차에서 파는 도시락은 쌀밥, 왕만두, 삶은 계란, 생선전, 소고기볶음, 배추김치, 기타 반찬 등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동행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졸기도 하는 모습은 우리네 열차 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와 똑같은 생김새, 똑같은 모습이지만, 이곳은 북한이다.

() 아이들 몇 몇이 지나가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들의 외형은 순박했지만 표정과 눈빛에서 기대와 설렘, 동경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저 열차를 타고 대도시에 가고 싶어', '평양에 가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열차를 타고 대도시에 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

장항선을 타고 군산으로 가는 길에서 느낄 법한 일상들이다. 그들의 눈빛에서 우리는 '미제에 항거'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결의를 읽을 수 있을까? 전쟁은 단지 정치 행위일 뿐이다. 무형의 권력과 무형의 권력이 맞서는 거대한 선전물들이 난무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북한과, 실제 거기에 '있는' 북한은 다르다.

북한의 일상에서 그가 또 찾아낸 것은 '맛'이었다. 북한의 유기농법과 유기농산물은 여유 있는 중국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북한이 개방에 나설 경우 특히 북한의 농업 분야에 관심을 두는 기업들이 있다고 한다. 북한이 유기농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재에 의한 비료 및 종자 부족이 만들어 낸 기현상일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렸을 때 먹었던 몇 가지 음식의 고유한 맛을 평양과 원산에서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았다. 첫 번째 다시 찾은 맛은 콩나물 맛이다. 평양의 한 음식점에서 콩나물무침을 먹고 50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먹었던 콩나물 맛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 두 번째 다시 찾은 맛은 두부 맛이다. () 그 고소한 두부의 맛을 평양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유전자를 변형해서 수확량을 늘린 GMO 콩을 수입해서 공장에서 기계로 만든 요즘의 우리 두부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북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특히 그는 2017년 완공된 려명거리의 초고층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의 집을 방문해 집안 내부 모습과 가족들의 생활상을 취재했다. 외지인에게 려명거리 살림집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최초라고 한다.

"눈에 띄는 점은 재개발하기 이전에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 즉 철거민에게 아파트 입주 1순위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철거 맞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기존 집이 철거된 사람들은 새 아파트가 지어지면 그곳에 1순위로 입주하게 된다. (…) 려명동 4반 12층 1호로, 서구공공건설사업소에서 미장공으로 근무하는 김충성(31세) 씨의 집이다. 조국해방전선승리기념관 관리원으로 근무 중인 아내 전혜성(29세) 씨와 어머니 박순석(69세) 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김 씨는 건설노동자 출신으로 입사증을 얻어 입주했다. 집은 방 2개 주방, 화장실, 거실로 구성되어 있고, 텔레비전과 피아노도 갖춰져 있었다. 온도계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도 당연히 사람이 살고 있었네

우리는 그들을 모른 체 하고 있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외면했다. 북한과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은 있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북한은 북한이 아니었다. 남북이 화해한다는 것은 지도자들끼리의 화해가 아니다. 그들이 손을 맞잡고 얼싸안은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고 해서, 북녘의 사람들, 남녘의 사람들이 서로를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기자는 2008년, 2015년 두 차례 쿠바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쿠바 방문 후에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사람들이 저마다 만들어 낸 쿠바의 이미지 속에 들어앉아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면 그제야 '신기하다'며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수정한다. 어차피 이미지는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는 굳어진 이미지를 수정하기 위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특히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전쟁과 권력이 만든 '이미지의 벽'을 인정하고 조금씩 허물어갈 때, 우리는 진짜 이해와 화해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진천규는 사진가이면서, 글 잘 쓰는 작가다. 일상의 세밀한 곳을 포착해 내고,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표지판 하나, 사람들의 몸짓 하나에도 북한이 담겨 있고, 세계가 담겨 있다.

ⓒ진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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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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