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는 우울에 취약하다"는 말은 모든 경우에 똑같이 들어맞을까?

[서리풀연구通] 평균으로는 알 수 없는 인종·성별·성적지향이 교차하는 자리의 우울

한국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은 어떨까? 이 질문에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한 온라인 조사 결과로 답해왔다. 이 조사들은 성소수자가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그로 인한 우울, 자살 위험을 꾸준히 드러내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국민건강영양조사나 한국복지패널, 지역사회건강조사 같이 국가가 수행하는 대표적인 조사에는 응답자가 성소수자인지 파악할 수 있는 문항이 없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승인통계조사에 성소수자 관련 항목을 새로 넣으라고 정부에 권고했지만,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등 관계 부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성소수자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우울을 겪는지, 그리고 성소수자 안에서도 누가 더 큰 부담을 지고 있는지 국가 수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성소수자는 우울에 더 취약하다"는 말은 맞다. 그런데 이 말은 모든 성소수자에게 똑같이 들어맞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인구 전체를 대표하는 조사에서 성적지향(내가 어떤 성별의 사람에게 신체적·정서적으로 끌리는지)과 성별 정체성(내가 나를 어떤 성별로 생각하는지)을 물어야 한다. 미국의 약물사용·건강 전국조사(National Survey on Drug Use and Health)는2015년부터 성인 응답자에게 성적지향을 묻고 있다. 최근 미국역학회지(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에 실린 한 연구는 이 자료를 활용해 인종·민족, 성별, 성적지향이 교차하는 자리마다 우울이 얼마나 다르게 나타나는지 살폈다(☞논문 바로가기: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전국 대표 표본에서 인종/민족, 성별/젠더, 성적 지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우울증; 설계 가중치를 적용한 교차적 MAIHDA 연구)

이 연구의 출발점은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다. 흑인 페미니즘에서 출발한 이 개념은 한 사람이 지닌 여러 사회적 정체성이 서로 얽혀 고유한 경험을 만든다고 본다. 예컨대 흑인 여성이 겪는 불평등은 흑인으로서 겪는 인종차별과 여성으로서 겪는 성차별을 단순히 더한 것이 아니다. 두 가지 억압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생겨나는 고유한 구조적 불평등이다. 연구팀은 2015~2020년 조사에 참여한 미국 성인 23만 4722명을 인종·민족(7개 범주), 성별(남성, 여성 - 2개 범주), 성적지향(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 3개 범주)을 조합해 42개 집단으로 나누고, 집단별 주요우울삽화 유병률을 추정했다.

주요우울삽화(major depressive episode)는 미국정신의학회 진단기준(DSM-5)에 근거한 것으로,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즐거움의 상실과 함께 식욕이나 체중 변화, 수면 문제, 피로, 집중력 저하, 무가치감, 자살생각 등의 증상을 여러 개 동시에 2주 이상 거의 매일 경험한 상태를 말한다.

평균적인 차이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았다. 이성애자에 비해 동성애자는 우울을 경험할 가능성이 약 2.2배, 양성애자는 약 2.7~3.2배 높았고, 여성은 남성보다 약 1.5배 높았다. 그러나 평균 뒤에 숨은 차이는 훨씬 컸다. 지난 1년 우울 유병률은 아시아계 이성애자 남성이 2.9%, 다인종 양성애자 여성이 27.3%로 약 9배 차이가 났다. 평생 유병률을 기준으로 하면, 백인 양성애자 여성의 43.1%, 즉 10명 중 4명 이상이 살면서 한 번 이상 주요우울삽화를 겪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같은 성적지향 안에서도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양성애자의 지난 1년 유병률은 인종·민족과 성별에 따라 6.9%에서 27.3%까지 약 4배, 동성애자는 6.9%에서 17.9%까지 약 2.6배 약 벌어졌다. 성소수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평균을 내면 이러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연구팀에 따르면 개인 간 우울 차이의 약 13%는 42개 집단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그 대부분은 인종·민족, 성별, 성적지향 각각의 효과를 더하는 것으로 설명됐지만, 집단 간 차이 가운데 지난 1년 기준 약 10%, 평생 기준 약 16%는 단순한 더하기로는 설명되지 않는 '교차의 몫'이었다.

이 교차의 몫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집단은 흑인 레즈비언 여성이었다. 인종, 성별, 성적지향의 세 가지 효과를 단순히 더해 예상한 지난 1년 유병률은 11.5%였지만 실제 추정치는 8.6%에 그쳤고, 평생 기준으로도 예상치 18.8%보다 낮은 13.3%였다. 그렇다고 이 결과를 흑인 레즈비언 여성이 우울 위험 요인에 덜 노출되어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흑인 레즈비언 여성은 백인 레즈비언 여성보다 아동기 학대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같은 위험요인을 더 많이 경험한다. 연구팀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흑인 레즈비언 여성들, 친구와 가족, 그리고 종교 공동체로부터의 지지가 인종차별, 성차별, 이성애중심주의의 해로운 영향을 견디게 하는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여러 겹의 억압이 겹치는 자리가 언제나 가장 취약한 자리는 아니며,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보호의 힘 역시 교차하는 자리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를 해석할 때 주의할 점도 있다. 이 연구에서 유색인종 집단은 대체로 백인보다 우울 유병률이 낮았는데, 이를 곧바로 '유색인종은 백인보다 우울을 덜 겪는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는 흑인이 구조적 인종차별과 사회경제적 박탈을 더 많이 겪는데도 우울 유병률은 오히려 낮게 나타나는 현상을 "흑인-백인 우울 역설(Black-White depression paradox)"이라고 부른다. 우울을 진단하는 측정 도구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설명 등이 제기되었지만, 아직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흑인의 우울은 더 심각하고 만성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맞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한국계를 포함한 아시아계의 낮은 유병률도 같은 맥락에서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이 연구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러한 결과는 대표성 있는 국가 조사에 성적지향 문항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연구자들이 설문조사를 통해 성소수자의 건강 실태를 꾸준히 기록해왔다. 그러나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의 차이를 넘어,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여성과 남성,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젠더, 이주 배경이나 장애가 있는 성소수자 등 성소수자 안의 다양한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건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국가 수준에서 확인하려면, 대표성 있는 국가 조사에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문항이 도입되어야 한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은 정책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차별금지법조차 아직 제정되지 않은 한국에서 '성소수자'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가려진 얼굴들을 드러내는 일은 건강형평성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서지정보

McGuire, F. H., Beccia, A. L., Peoples, J. N., Williams, M. R., Schuler, M. S., & Duncan, A. E. (2026). Depression at the intersection of race/ethnicity, sex/gender, and sexual orientation in a nationally representative sample of US adults: A design-weighted intersectional MAIHDA.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195(10), 2668–2680. https://doi.org/10.1093/aje/kwag144

▲제26회 퀴어퍼레이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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