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의 품격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제16회 광주비엔날레의 '대만관(Taiwan Pavilion)' 표기를 둘러싸고 지난 9월 초에 벌어진 일은 그 물음을 다시 불러낸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담화문을 내 시정을 촉구했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실제 행동으로 이행하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전시에 참여하기로 했던 중국 작가 19명은 개막 이틀 전 전원 철수를 선언했다. 광저우시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대표단은 예정됐던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 방문을 취소했고, 저장성 저우산시는 여수세계섬박람회에 이미 설치한 홍보관을 운영하지 않고 관련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조직위에 통보했다. 전시관 이름 하나를 빌미로 외교와 문화, 의회와 지방 교류가 한꺼번에 멈춰 섰다.
자국의 핵심 이익이 훼손됐다고 판단할 때 중국이 항의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항의에도 지켜야 할 선과 방식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8월 31일 사과문에서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밝히고, 대만관이라는 명칭은 참여 예술가들에게 맡겨진 표현일 뿐 대만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이틀 뒤 광주비엔날레재단도 사과문을 냈다. 외교부 역시 9월 3일 정례브리핑에서 이 사안은 문화·예술 영역에서 민간이 자체 판단해 결정한 것으로 정부의 대만 관련 입장과 무관하다고 확인했다. 지방정부와 주최 재단이 이틀 사이 두 차례 사과하고 중앙정부가 원칙을 재확인했는데도, 중국 측은 남의 나라 문화 행사를 멈춰 세우는 쪽을 택했다.
<논어> 제15편 '위령공'은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계획을 어지럽힌다(小不忍則亂大謀)고 가르쳤다. 여기서 작은 것은 대만 문제 자체가 아니다. 한 국제미술전 전시관의 표기다. 중국은 공자의 이름을 딴 학술기관을 세계 곳곳에 세우며 그를 대외 문화외교의 상징으로 내세워 왔다. 그러면서 전시관 이름 하나를 참지 못해, 두 도시 의회가 2012년 우호교류협약을 맺은 이래 십수 년간 쌓아온 왕래를 한 주 만에 끊었다.
더 무거운 문제는 호칭을 다루는 잣대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국이 이번에 근거로 든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공동성명이다. 그런데 바로 그 문서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최근 남북을 '두 개의 국가(兩個國家)'로 표현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문제를 제기할 때 들었던 근거이기도 하다. 같은 합의를 들이대면서 타국의 분단 상대는 두 개의 국가로 부르고 자국의 분단 상대는 성(省)으로 부르라고 요구한 셈이다. 분단국의 호칭에 이처럼 엇갈린 기준을 적용하면서 원칙의 보편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런 방식이 처음도 아니다. 2016~17년 사드 배치 당시 중국은 공식 항의와 함께 한한령과 기업 제재, 단체관광 중단이라는 비공식 압박을 병행했다. 이번에도 구조는 같다. 중앙정부의 공식 항의가 나온 그날 작가들의 철수와 지방의회·지방정부의 교류 취소가 동시에 움직였다.
규모는 사드 때와 견줄 수 없이 작지만, 공식 경로로 명분을 세우고 책임을 묻기 어려운 민간·지방 수준에서 실제 비용을 물리는 문법은 그대로다. 미국 우선주의의 일방적 행보에 피로를 느껴 중국 외교를 상대적으로 후하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었으나, 이번 사태는 중국 역시 자국의 기준을 타국에 관철하는 데 주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 쪽에서도 돌아볼 지점이 있다. 다만 그 성격은 대중국 저자세와 다르다. 2018년 시작된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참여 주체를 국가관과 기관관으로 나눠 운영해 왔고, 재단은 협약서상 국립대만미술관이 기관관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했다. 표기를 되돌리게 한 압력도 중국이 아니라 국내에서 왔다.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명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검열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지역 단체가 힘을 실어 파장이 커지자 본전시까지 영향을 받을까 우려해 명칭을 바꿨다고 밝혔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결정했느냐가 아니라, 중국과 대만을 처음 동시에 참여시키면서 충돌이 생겼을 때 적용할 원칙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대표이사 자신도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외교부의 대응은 정확했다. 정부가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것과 민간이 문화행사의 표기를 스스로 정하는 것은 층위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겨눈 것은 명칭이 아니라 바로 이 분리였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훈계가 아니라 준비다. 국제행사의 국가관·기관관 명칭 기준을 미리 세워 외교 쟁점이 개별 행사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되지 않게 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교류 협정에는 정치적 이유로 일정이 취소될 경우의 대응 원칙을 담아야 한다. 민간 영역의 판단은 중앙정부가 공개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과 더 밀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단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은 어느 한쪽에 기대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 때 확보된다. 선을 넘는 강압이 상대 사회의 경계심만 키운다는 사실은, 압박을 가하는 쪽이 늘 가장 늦게 깨닫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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