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워페어가 플레이어를 한국전쟁에 참전시키는 방법

[게임필리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4>

서구 사회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일컬어진다. 국군, 북한군, 중공군, 유엔군 합쳐 이백만 명 이상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민간인을 합치면 삼백만 명, 남북한 인구의 10%가 이 전쟁에서 사망하거나 실종했다. 전 세계에서 63개국이 참전했으며, 미군이 삼만 명이 넘게 희생됐다. 한국전쟁은 양차 세계대전을 제외하면 20세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었다. 왜 잊혀졌을까?

근대 이후 대문자 역사를 기입하는 주체는 언제나 서방이었고, 전쟁은 역시 서구의 관점에서 기술됐다. 서구는 양차 세계대전을 대문자 사건으로 기록하면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크로체의 언명을 정확히 실천했다. 그들은 기억하고, 추모하고, 처벌하고, 청산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로, 본문이 아닌 주석으로만 쓰여졌다. 이 역사서의 본문에 적힌 것은 미국 중심의 자유진영과 소련·중국 중심의 사회주의 진영이 합의한 냉전 질서였다. 한국전쟁은 역사가 아닌 사건으로 간주됐다. 사건(Event)은 현재진행형인 사태다. 정확히 말해 한국전쟁은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잊기로 합의됐다.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한국전쟁이라는 사태는 역사화되지도, 애도되지도 못한 채 유령으로 배회한다. 성불하지 못했으므로 픽션으로 재현되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많지만 극영화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다. 장르적 형식의 재현은 더더욱 그렇다. 문학은 그 자체로서 애도의 방법이 될 수 있어도 상업영화나 게임은 어렵다. 재미 추구 혹은 스펙타클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모든 역사를 소재로 삼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한국전쟁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래도 당사자인 한국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빨간마후라>(1964)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고지전(2011) 등이 한국전쟁의 비극적인 측면을 흡입력 있게 다뤘으나, 게임으로는 몇몇 모바일 게임을 제외하곤 거의 만들어진 바가 없다. 애도가 끝나지 않은, 파국적 균형으로 중단됐을 뿐인 이 전쟁을 게임이라는 마법의 원으로 끌어들이기엔 역사적 트라우마가 너무 큰 탓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신작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4>는 이처럼 다루기 어려운 한국전쟁을 노골적으로 소환한다. 이 게임은 한국전쟁의 미래를 소재로 삼았다. 러시아의 비밀조직으로부터 비밀병기를 입수한 북한의 강경파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다음, 2차 한국전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서울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도시 '하진시'는 불바다가 되고, 평화롭게 군복무를 하던 주인공 박현준 이병은 엉겁결에 전쟁의 포화에 내던져진다. 이전까지는 시리즈의 프랜차이즈 주인공인 SAS 요원 존 프라이스가 플레이어였지만, <모던 워페어4>에서는 평범한 해병대 병사 박현준이 플레이어가 된다. 갑작스런 북한의 남침, 폐허가 된 하진시, 전우를 잃고 반격하는 박현준의 시점에서 조준선이 정렬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쟁의 과거와 미래가 요즘 전 세계적으로 힙한 'K'라는 공간을 겨누고, 폐허가 된 K에서 벌어지는 현대전이 매력적인 소재로 포장되는 것이다.

▲<모던 워페어4> 의 등장인물들. 북한의 고위급 지도층과 한국의 평범한 해병대원의 대비가 두드러지며, 모두 한국계 배우들을 모델링했다. ⓒ액티비전

필자는 90년대 어린 시절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들이를 함께 간 미국인들은 떡볶이와 김밥을 보곤 망설임 없이 Gross(구역질난다), Disgusting(역겹다) 하다며 손도 대지 않았다. BTS가 그래미 상을 보이콧하고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로컬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인들이 김치를 직접 담그는 쇼츠가 유행하는 오늘날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전쟁은 이제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여전히 사태이기 때문에, 과거의 한국전쟁보단 미래의 한국전쟁을 다루는 편이 리스크가 적다. 과거는 애도하고 미래는 꿈꾸는 것이므로 K라는 환등상에 빠진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면 한국전쟁을 미래로 만들어야 한다.

전쟁을 '매혹적인 미래'로 만든다는 건, 다시 말해 전쟁의 질주광적 경험을 미적으로 훈련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20세기 파시즘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 파시즘의 전위를 자처했던 미래주의 예술은 미래 전쟁을 세련된 언어로 찬미했다. <미래주의 선언문>에서 필리포 마리네띠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세계의 찬란함이 새로운 아름다움, 즉 속도의 아름다움을 더했다고 선언한다… 포탄의 폭발음을 분출하는 경주용 자동차는 승리의 여신보다 아름답다. 우리는 전쟁, 군국주의, 애국주의, 무정부적 파괴행위, 그것들을 위해 죽는 아름다운 이상주의를, 여성경멸을 찬양한다!" 이어서 등장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청년들을 위대한 로마 제국의 군단병으로 지칭하며 숭고한 피를 전장 위에 흘릴 것을 명령했다. 마찬가지로 나치는 국민들에게 프리드리히 대왕의 영광과 인류의 진보를 약속하고, 전국에 아우토반을 깐 뒤 그 위를 무제한의 속도로 달릴 폭스바겐 자동차를 국민들에게 제공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이미 그 자체로 질주광적인 게임이다. 오마하 해변을 달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을 누비며, 특수전에서 기갑전, 항공전에 이르는 전쟁의 열광을 만끽하는 대표적인 FPS다. 글로벌한 환등상이 된 한국을 미래로 만들고자 제작진은 심혈을 기울였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 곳곳을 아주 정교하게 재현하고, 한국인의 습속을 그대로 재현한 군대의 풍경을 박현준 이병의 시점에서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계 배우들을 캐스팅해 남한과 북한 등장인물을 완벽하게 모델링하고, 평양과 하진시, 그리고 북한 접경 지대의 모습은 사실감 넘치다 못해 정말 그곳을 탐험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죽고 로딩하길 끝없이 반복하며 이 완벽하게 세팅된 K-공간을 전진하는 플레이어(박현준)의 전투가, 북한과 남한을 말 그대로 '지금 여기'의 전장에서 조형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의 골목길과 도시 풍경이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으로 구현됐으며, 도쿄 거리를 사이버펑크의 표상으로 만들어왔던 서구의 편집광적 시각성은 서울을 치열한 현대전의 테마파크로 그려낸다. ⓒ액티비전

대한민국과 북한의 분쟁을 소재로 한 다른 외산 게임들을 환기해 보자. 전설적인 잠입액션 시리즈인 <스플린터 셀: 혼돈이론>은 북한을 한 챕터로 다뤘으나 잘못 표기된 한국어 간판, 엉터리 플래카드와 피켓 등 미장센에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마찬가지로 <홈프론트>(2011) 또한 북한이 갑작스레 미국을 침공하고 전 세계를 장악하는 등 서사의 핍진성이 떨어져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던 워페어4>는 다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현재 상태에서는 가장 대중적 소구력을 지닌다는 점을 포착해, 휴전이라는 비상사태와 뒤섞는다. K팝과 드라마의 트렌디한 열광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이 뒤섞인 채, 하진(서울)에서 평양 주석궁에 이르는 한반도 전체가 군사적인 테마파크로 탈바꿈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 안을 채워줄 다른 이야기, 평범한 한국인 젊은이가 프라이스 대위 같은 전쟁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성장 서사가 함께 조응한다. 조국의 영광이나 멸공의 횃불도 아니다.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는 더더욱 아니고, 오리엔탈리즘도 아니다. '멋있는 K-사나이'로 거듭나는 게임적 절차가 몰입의 전면에 서는데, 이는 서구와 한국의 플레이어들을 매혹하는 게임적 모병 절차가 되고 만다.

<모던 워페어4>의 주인공이자 플레이어인 박현준 이병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징집병이다. 특수부대와 함께 북한 침투작전을 가는 수송기 안에서도 "우린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라고 되묻는, 무던하고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수많은 동료의 죽음과 전장의 아비규환을 겪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야인이 된 채 지구 반대편 파리 뒷골목을 누비며 아처를 추적하는 프라이스가 '선'을 넘은 것에 대해 고뇌하는 것과는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박현준 이병을 잘 조작하면 조작할수록, 휴전선을 중심으로 그려진 한국전쟁의 매직 서클은 더 강하게 플레이어를 호명한다. 단지 의무 때문에 입대했을 뿐인, 그래서 18개월 뒤에는 다시 시민으로 돌아갈 이 해병대 신병(플레이어)은 팔방미인으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다. 박격포로 많은 적군을 사살하고, 대전차미사일로 적 전차를 격파하며, 장갑차를 조종할 뿐 아니라 북한 야지에 고립된 후에는 유격전을 벌여 탈출하고, 북한 주석궁에 침투해 참수작전에 성공한 뒤 멜트다운에 들어간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고 생채기도 없이 탈출한다.

드론전, 야전, 특수전, 유격전, 상륙전, 시가전을 아우르며 현대의 모든 무기체계를 섭렵하는 플레이어는 한국이라는 글로벌한 환등상의 지표면 위에 스스로 군홧발을 내디딘다. 플레이어는 박현준 이병 뿐 아니라 프라이스의 시점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주민을 학살하는 이름없는 북한 병사의 시점과 암살당하는 북한 주석(리승호)의 시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한국전쟁의 컨텍스트를 연동하게 된다.

북한 병사의 시점에서 게임을 진행할 때 플레이어는 민간인을 학대·처형하게 되는데(콜 오브 듀티의 유명한 No Russian 미션처럼) 냉혹한 감시사회와 인명경시를 스스로 행할 수밖에 없는 강림 상태에서 무기력감과 분노가 동반된다. 이는 후반부에 평양에서 행해지는 참수작전(주석궁을 기관포로 쓸어버리는 미션)에서 카타르시스로 보상받는다. ~되기를 통한 동기부여는 시네마나 TV쇼가 하지 못하는, 게임만의 독특한 매커니즘이다. 여기에 쿠데타 세력을 뒤로하고 공화국에 충성하는 북한 장성, 고진혁과 공조작전을 펼치는 전개는 헐리우드 첩보물·전쟁물이 흔히 쓰는 문법, '현지의 정의로운 세력과의 공조'를 잘 따르고 있다. 처음에는 고진혁을 의심하던 박현준과 칼이 참수작전 후 유대감이 충만한 상태에서 고진혁과 작별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북한 소재 영화의 브로맨스 문법을 표방한다.

이런 서사적 조건들이 충족된 상태에서 <모던 워페어4>는 게임만의 강력한 강령술을 동원한다. 평범한 징집병에서 시작해 IP의 주인공 존 프라이스를 능가하는 무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전쟁영웅으로 호명받는데, 이는 단순히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B급 서사가 아니다. 휴전이 사실상 끝나버린 현실의 갈등을 전쟁으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호명이다.

국가나 군대가 부르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 실제로 전쟁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고, 플레이어가 군에 입대하는 것도 아니다. 아우토반을 달리는 폭스바겐 위에서 해방감을 느낀 독일의 젊은이들이 즉시 친위대에 입대한 게 아니다. 질주하는 자동차에서 톰슨 기관총을 난사하는 마피아 영화에 열광한 미국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그 당위성과 정파성을 떠나, 무엇보다 감각을 지배하고 길들이는 행위다. 전쟁은 물리적인 파괴와 영토의 정복으로만 수행되지 않는다. 전쟁을 '지각의 병참술'이라고 설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이렇게 적었다.

<모던 워페어4>는 프롤로그가 끝난 뒤 북한군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시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 영상을 삽입했다. 이는 '비재현의 윤리'를 무시한 매우 중대한 과실이다. 개발진이 사과하고 영상을 삭제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비재현의 윤리는 지역, 국가, 정파성과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지켜져야 할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철저히 관리된다.

ⓒ액티비전

공적인 성격을 띤 뉴스보도에서조차도 끔찍한 사고나 범죄, 참사를 알리기 위해 그 끔찍함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 송출해서는 안 된다. 무수한 쇼츠와 도파민의 홍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나 픽션에 9.11테러 영상을 함부로 삽입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사건을 암시하는 다른 장면으로 대체하거나, 완화된 장면을 다른 맥락에서 제작하는 등 실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충분하기 때문에 재현은 참사를 그대로 담아내지 않는다. 비재현의 윤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공중파와 방송은 물론이고 인터넷 전체가 스너프 필름으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영상의 저작권은 방송사 또는 개인 촬영자에게 있는데다 '공정 이용' 또한 뉴스나 보도, 다큐멘터리, 교육영상에만 해당된다. 공정 이용이 적용되는 뉴스 보도에서도 비재현의 윤리를 지키기 위해 블라인드·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모던 워페어4>는 픽션이고,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게임이다. 개발사는 실제로 이전작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 6>에서도 9.11테러 영상을 그대로 사용했다가 삭제하고 사과한 적이 있는데, 이 실수를 또 반복했다. 개발사와 유통사는 유족을 포함해 한국 사회 전체에 사과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 문제가 봉합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전쟁'이라는 유령은 배회한다. 한국전쟁과 안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담론 지형이 이 게임으로 인해 징후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모던 워페어4>는 한국인의 전쟁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민족, 평화, 통일이라는 가치가 북한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더는 통용되지 가운데 이 게임은 정교한 병참술로 플레이어를 한국전쟁의 미래에 참전시키고 있다. 한국전쟁이 게임의 소재가 된다는 이물감은 이제 사라졌다. 언제든 전선으로 달려갈 수 있고, 기꺼이 전투를 벌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한국전쟁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던가? 전쟁은 이미 발발했다. 수많은 게이머들은 기꺼이 참전하는 중이고, 한국전쟁은 비로소 흥분과 쾌락이 즐비한 스펙타클로 전락했다. 이 지각의 전장에서는 더 이상 평화도 애도도 찾아볼 수 없다. 비재현의 윤리도, 마법의 원도 사라졌다. "게임은 게임으로 보라"는 공허한 전장의 함성만 메아리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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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저술로는 <게임의 이론>(공저), <인공지능, 플랫폼, 노동의 미래>(공저) 등이 있으며 계간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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