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미식관광 산업 읽기] ⑨ 여행지에서 맛본 그 음식, 집에 오면 살 데가 없다

외국인 장바구니엔 대기업 라면·과자…지역 가공식품은 재구매 경로가 없다

▲ 통영의 수제맥주 양조장 '통영맥주'의 선물 꾸러미. 여행에서 맛본 지역 상품이 일상의 구매로 이어지려면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프레시안(문상윤)

롯데마트에 따르면 외국인 고객이 많은 10개 점포에서 지난해 1월부터 11월 10일까지 가장 많이 팔린 라면은 '미역국라면'이었다. 서울역점에서는 오리온 '비쵸비'가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대부분의 달에 과자 판매 1위를 지켰고 동원 '양반 김부각'도 상위권에 올랐다. 외국인 관광객이 출국 전 마트에 들러 카트 가득 담아 가는 것은 대부분 이런 대기업의 라면과 과자, 김이다.

이 장바구니는 여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맛본 라면과 김을 집에 돌아가서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수출이 함께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식품과 농산업을 합친 'K-푸드+' 수출액은 136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라면은 단일 품목으로 처음 15억 달러를 넘었고 김 수출도 11억 3000만 달러로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해외 소비자 조사도 같은 흐름을 보여 준다. 농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22개 도시 1만 1000명을 조사한 결과 한식을 먹어 본 사람의 94.2%가 만족했고 다시 먹겠다는 응답은 80.6%로 처음 80%를 넘었다. 한 식품기업이 12개국 소비자를 조사했을 때는 집에서 한국 식품을 사는 빈도가 한 달 평균 2.8회였고 고르는 기준으로 '한국 현지의 맛 그대로'를 꼽은 사람이 31%였다. 한국에서 직접 맛본 경험이 해외 매장에서의 구매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한국의 마트와 편의점은 사실상 수출 상품의 시식 매장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흐름에 지역의 음식이 거의 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관광객이 지방에서 맛보고 감탄한 장아찌와 젓갈, 조청과 한과, 지역 양조장의 술은 여행이 끝나면 다시 구할 길이 마땅치 않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국내 여행객도 마찬가지다. 여행지에서 산 특산품이 마음에 들어 집에 와서 다시 주문하려 해도 판매처를 찾기 어렵거나 찾더라도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 가공식품은 대부분 작은 업체나 농가가 소량으로 만든다. 대형마트나 공항 면세점 같은 큰 유통망에 들어가기 어렵고 외국어 표시와 해외 배송을 갖출 여력도 부족하다. 장이나 젓갈처럼 국물이 있는 식품은 비행기 기내 반입이 어려워 외국인이 사 가기에도 부담스럽다. 관광객은 살 준비가 돼 있는데 정작 지역 음식은 살 수 있는 자리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지역 업체가 해외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있는 길은 넓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국내 업체가 온라인으로 해외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 금액은 지난해 3조 234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6.4% 늘었다. 지난해 2분기에는 음식료품의 해외 직접 판매가 1년 전보다 49.8% 늘었다. 해외 소비자가 한국 쇼핑몰에서 직접 식품을 주문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지역 가공식품이 이 흐름에 함께하려면 관광지에서의 첫 구매와 집에 돌아간 뒤의 재구매를 이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포장에 재구매 경로를 담는 것이다. 상품마다 국내 온라인몰과 해외 판매처로 연결되는 QR코드를 붙이면 여행지에서 맛본 손님이 집에서도 같은 상품을 찾을 수 있다.

작은 업체가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은 지역이 함께 맡아야 한다. 지자체나 지역 관광 조직이 지역 특산 가공품을 모은 공동 온라인몰을 운영하고 외국어 상품 설명과 해외 배송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식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기내에 들고 탈 수 있는 소포장과 영문 표시를 디자인해 주는 지원도 효과가 크다. 기차역과 공항, 관광안내소에 지역 가공식품 매대를 두어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길에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관광과 수출 정책을 함께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수출 지원 사업은 보통 해외 박람회와 바이어 상담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무엇을 맛있게 먹고 무엇을 사 갔는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시장 조사다. 관광지에서 외국인에게 잘 팔린 지역 상품을 골라 해외 판매를 지원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품목부터 수출을 시작할 수 있다.

대기업 라면과 과자가 많이 팔리는 것도 국가 전체로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그 돈이 지역의 농가와 작은 가공업체에 돌아가는 몫은 크지 않다. 지역에서 난 콩과 쌀, 과일로 만든 지역 가공식품이 관광객의 장바구니에 오르고 그 손님이 집에 돌아가서도 다시 주문할 때 미식관광의 효과는 여행 기간을 넘어 지역에 계속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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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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