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의 마리스트 가톨릭 고교 미식축구팀은 라이벌 코티지 그로브 고교와의 경기에서 63대0의 대승을 거뒀다. 그런데 마리스트 고교는 다음주 학부모들과 지역사회에 잭 로보이 감독의 해임 소식을 알렸다. 학교 운동부 총감독은 그 경기가 학교의 사명(mission)을 반영하지 않았고 상대팀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교장은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 스포츠맨십 등 학교가 쫓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감독 교체가 필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잭 로보이 감독은 2024년 마리스트 고교를 주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끈 감독이었다. 그러나 비신사적 경기 운영으로 경질되었다. 상대 팀은 선수들 부상으로 인해 단 16명의 선수만 출전해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마리스트 고교 팀은 전반전 이미 크게 앞서는 상황에서도 공격권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온사이드킥을 두 차례나 감행하며 득점에만 몰두했다. 이는 "승리를 넘어 상대를 굴복시키고 모욕하려는 행위"였다. 결국 전반 종료 후 양 고교 총감독과 심판진의 합의로 후반전을 치르지 않고 경기를 종료하기로 했다.
승리 감독 해임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내에서도 그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여론은 학교의 조치에 동의하는 쪽이다. 승리보다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스포츠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본의 중고교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을 '부카츠(부활동, 部活動)'라 하는데 음악, 미술 등 문화부 보다는 운동부 활동이 압도적이다. 일본 학생 3분의 2 정도가 야구, 축구, 육상, 유도 등 운동부 활동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운동부 활동은 교육적, 사회적 성장을 위한 중요한 과정일 뿐 아니라 매우 일상적인 학교생활이다. 이들의 목표는 직업 운동선수가 아니다. 고시엔 야구대회 우승팀에서조차 프로팀 지명을 받는 학생은 한두 명 뿐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파리 올림픽에서 미국팀 메달리스트 중 대학 재학생 수는 44명이었다. 특히 수영, 육상, 체조, 펜싱, 조정 등 기초종목에서 스탠포드, 버지니아, 텍사스, UCLA 명문대 재학생들이 메달을 싹쓸이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이들 중 졸업 후 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또는 선택할 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내게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나는 '단 한 명도 없다'에 건다. 이들은 운동이 좋아서 했을 뿐이고 취미 활동일 뿐이다.
반면 한국에서 학원스포츠는 운동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프로에 가기 위해, 대학에 가기 위해, 메달을 위해, 병역 면제를 위해 운동을 한다. 넓은 의미에서 개인의 '이권'을 위한 방편이다. 한마디로 도구일 뿐이다. 지난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 후 "군 면제만 보고 뛰었다," "저 군대 안 갑니다"라는 망언이 선수들 입에서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 초등학생 때부터 '오직 승리,' '오직 등수'만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자란 선수들은 상대를 조롱해서라도 이기겠다는 비뚤어진 인성을 내면화하게 된다. 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집단으로 외치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지난 아시안게임 직후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지금 창단되는 학교 운동부 수보다 해체되는 수가 두 배가 더 많다"면서 "학교체육이 굉장히 많이 위축돼 있"고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미래가 굉장히 어둡다"고 했다. 왜 어두울까. 해체되는 팀이 많아지는 데서 보듯 운동하려는 학생이 없다. 그렇다면 왜 운동부를 거부하겠는가. 공부는 포기하고 '운동부'라는 섬에서 운동만 하는 운동기계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학생과 학부모는 찾기 어렵다.
이는 학령인구가 줄어서만은 아니다. 과거 다자녀 시대엔 첫째는 공부시키고 둘째나 셋째는 운동을 시키던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출산율 0.8'의 시대다. 자녀의 미래를 '오직 운동'에 걸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취업 기회도 낮다. 야구 외엔 프로가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학원스포츠 지도자 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일본의 고교 야구팀, 축구팀은 각각 4천여 개, 농구팀, 배구팀은 (남녀 포함) 각각 7천여 개인 반면 우리는 고교 축구팀 190여 개, 야구팀 100여 개이고 농구, 배구는 50개가 채 안 된다.
유 회장은 위기의 학원 스포츠 관련해서 "교육부·문체부·국회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들이 왜 관심이 없겠나. 팀도 별로 없고 선수도 없는데 관심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들에게 더 이상 관심 구걸할 필요 없다. 그는 또 학교에서 운동부가 '눈칫밥' 먹는 신세라고 한탄하는데 역시 당연하다. 몇 명 되지도 않는데 관심이 있겠나. 미리 알려둔다. 앞으로 더 없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우리처럼 인기종목과 비인기 종목을 구분하지 않는다. 육상, 수영, 체조를 '기초 종목'이라 구분해 부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생활체육과 대비되는 '엘리트 체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 같은 체육이고 스포츠다. 인기/비인기 종목을 구분하고 정책적으로 생활/엘리트 체육을 차별하는 지금의 제도는 한국 스포츠가 기형적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대한체육회가 교육적,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체육은 도외시한 채 메달 획득의 도구로서의 엘리트 체육만 쫓는다면 그건 자멸의 길이 될 것이다. 유 회장과 같이 탁구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김택수 선수촌장은 위기의 한국 스포츠에 대한 해법으로 "금메달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때는 훈련밖에 답이 없다... 혹독한 훈련, 한계를 넘는 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온 우주가 메달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는 메달리스트들의 한계를 또다시 목격한다.
스포츠의 저변을 넓히고 많은 학생들에게 스포츠의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메달 타령만 하는 대한체육회는 스포츠를 버리고 메달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에게 스포츠는 메달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선수들도 메달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까 공부도 안 시키고 운동만 시키려는 것이다. 협회가 스포츠와 선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선수가 메달을 위해, 협회를 위해 존재한다. 한국 스포츠는 자멸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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