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을 '혁명가'로 재평가하겠다며 국회에서 열린 학술포럼에서 유신독재와 국가폭력의 책임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주장이 잇따랐다. 박 전 대통령을 한국 민주화의 '최대 공로자'로 추켜세우는 반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국가 보상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도 나왔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혁명가 박정희' 학술포럼에서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박정희는 독재자가 아니었음은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화의 최대 공로자"라고 주장했다. 이날 포럼은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실, 새역사국민운동, (사)박정희정신연구소 등이 공동 주최했다.
최 전 장관은 "박정희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맞으나 전제주의적 지도자는 아니었다"며 "박정희가 인권을 탄압했다느니, 독재자라느니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최 전 장관은 박정희 정권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의 책임도 축소했다. 그는 히틀러와 스탈린, 마오쩌둥 등 대규모 학살을 저지른 독재자들을 거론하며 박 전 대통령은 이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정희는 한 번도 본인이 나서서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박정희 정권에서는 국가기관이 개입한 공안사건 조작과 사형 집행, 민주화운동에 대한 강경 진압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도예종 씨 등 8명은 판결 약 18시간 만에 처형됐다. 이후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사건 조작 등이 드러났으며, 법원은 2007년 재심에서 8명 모두에게 사건의 핵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국제법학자협회(ICJ)는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 및 살해 미수 사건 역시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는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지만, 통치권자로서 정치적·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에도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당시 마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노동자 유치준 씨는 2019년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로부터 항쟁 관련 사망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유신 독재 체제를 정당화하는 주장도 나왔다. 발제자로 참석한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대표(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972년 10월 유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조치가 아닌, 경제개발을 지속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당시 헌법의 대통령 임기 제한과 야당의 정권 교체 요구가 경제성장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김대중 당시 신민당 후보의 공약을 '무책임한 선동'으로 규정하며,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나면 "그가 애써 구축해 온 발전국가체제는 해체될 것이며, 고도성장의 경주는 중단될 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감행한 유신은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며 "기존의 공화정치에 심각한 수정을 가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1969년 논란의 3선 개헌에 이어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 일부의 효력을 정지시킨 명백한 독재를했다. 유신헌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중임 제한을 없앴고,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국회의원 3분의 1에 대한 사실상의 임명권 등을 부여한 것이다.
포럼 참석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최 전 장관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박정희 대통령이 영도한 경제발전에 의해 촉발되었고 민주화 세력 자체도 소득 증대에 따라 양성되었기에,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민주화의 실질적 최대 공로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가 산업화를 했기 때문에 화이트칼라들이 80년대 민주화를 외칠 수 있었다"며 "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의 가장 중심에 놓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인식"이라고도 했다.
산업화가 민주화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형성했다는 해석을 넘어,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했던 시민과 학생, 노동자들의 역할을 축소하는 주장이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3선 개헌 반대운동과 반유신 민주화운동이 이어졌으며, 1979년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 붕괴를 촉진한 주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박 전 대통령에게 민주화의 공로를 돌린 최 전 장관은 정작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국가 보상에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민주화 세력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을 하나님한테 감사한다"며 "우리나라의 민주화 세력은 나라로부터 그 민주화 때문에 돈을 받는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했다.
이번 포럼을 공동 주최한 새역사국민운동은 지난 8월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개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포럼에서도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단체다. 당시 새역사국민운동 이영훈 대표는 5.18을 "열흘간의 소요 사태"라고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날 포럼 환영사를 한 이 단체 류석춘 공동대표는 과거 연세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고 "매춘의 일종"이라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날 포럼을 공동 주최한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은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서면 축사로 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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