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빠진 BIFF, 커진 정치공방…현장선 '창작 위축' 우려

장이머우 "창작은 창작"·정주리 "제 영화 아닌데도 위축"…상영·투자·시사회까지 쟁점 확산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스크린을 넘어 정치권과 부산국제영화제(BIFF)까지 번지고 있다.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비판에서 시작된 공방은 상영과 공적자금 투자, 시민 시사회, 해외 영화제와 유통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그 사이 7일 부산에서 예정됐던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는 열리지 않았다.

이날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도 '암살자(들)' 논란이 화두에 올랐다.

▲7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영화 '오래오래 행복하게' 야외무대인사가 진행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1시 예정됐던 '암살자(들)' 야외무대인사는 취소됐다.ⓒ프레시안(윤여욱)

심사위원장인 중국의 장이머우 감독은 작품을 보지는 못했다면서도 "창작은 창작"이라고 말했다. 역사적 진실과 창작의 관계를 단순하게 규정하기 어렵고 영화를 본 관객마다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역시 영화가 가진 특성이라는 취지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온 정주리 감독은 보다 직접적으로 창작자의 위축을 언급했다. 그는 작품을 둘러싼 비판과 관객의 상처 역시 창작자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제 영화도 아닌데 너무나 위축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7일 부산 영화의전당 인근에 진보당 부산시당이 내건 '영화도시 해운대에서 영화인과 싸우는 주진우가 부끄럽다!' 현수막.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공방으로 확산되고 있다.ⓒ프레시안(윤여욱)

정치권의 공방은 작품 내용에서 상영과 투자·지원 문제로 범위를 넓혀왔다. 국민의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역사 왜곡 비판과 상영 중단 요구가 이어졌고 경북 구미의 한 영화관에서는 6일부터 작품이 상영 목록에서 빠졌다. 다만 해당 영화관의 상영 중단이 정치권 요구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산업은행·기업은행 등의 영화와 제작사 투자 과정이 도마에 올랐고 부산에서는 부산영상위원회의 대시민 시사회까지 정치 쟁점이 됐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를 문제 삼자 민주당 부산시당은 해당 작품이 전재수 시장 취임 이후 새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 아니라 박형준 전 시장 재임 당시인 2025년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됐고 시사회 역시 정치권의 취소 요구에 앞서 이미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고 반박했다.

영화에 대한 비판과 공적자금 사용에 대한 검증은 정치권이 제기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만 논쟁이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과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을 넘어 상영 여부와 해외 영화제, 광고·OTT 등 유통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영화를 평가하는 것과 관객이 작품을 접할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어디까지 같은 문제인지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사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실제 일정도 달라졌다.

허진호 감독과 배우 유해진·박해일·이민호는 당초 이날 오후 1시 영화의전당 루프씨어터에서 '암살자(들)' 야외 무대인사를 통해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다. 이민호는 같은 날 오후 6시 50분부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액터스 하우스'를 통해 별도로 관객과 만나는 일정도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제작사는 최근 상황과 관객·참석자의 안전 등을 고려해 관련 일정을 취소했고 BIFF도 제작사 요청을 받아 행사를 취소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안내책자에 기재된 7일 오후 1시 영화 '암살자(들)' 야외무대인사 일정. 해당 행사는 이후 취소됐다.ⓒ프레시안(윤여욱)

그러나 취소 전에 제작된 BIFF 공식 안내 책자에는 오후 1시 '암살자(들)' 야외 무대인사가, 프레스 가이드에는 같은 일정과 함께 오후 6시 50분 '액터스 하우스: 이민호'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온라인 일정에서는 사라진 행사들이 영화제 현장에서 배포된 공식 자료에는 예정됐던 모습 그대로 인쇄돼 있는 셈이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프레스 가이드에 기재된 7일 일정. 오후 1시 영화 '암살자(들)' 야외무대인사와 오후 6시 50분 '액터스 하우스: 이민호'가 함께 예정돼 있었으나 관련 일정은 이후 취소됐다.ⓒ프레시안(윤여욱)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와 정치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을 겪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싼 외압 논란은 이후 'BIFF 2014~2018 외압 사태 백서'로까지 남았다. 당시에는 상영 철회 요구가 핵심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와 경위와 성격은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12년이 지난 부산에서 다시 비슷한 질문이 떠오르고 있다. 작품은 얼마든지 비판과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정치적 논쟁이 상영과 행사, 유통과 창작자의 활동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때 그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7일 영화의전당에서 '암살자(들)'의 감독과 배우들이 설 예정이었던 무대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 대신 BIFF 현장에서는 "창작은 창작"이라는 말과 "위축된다"는 영화인의 목소리가 나왔다. 영화에 대한 찬반보다 상영과 지원·퇴출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더 크게 부각되는 풍경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시 '영화와 정치의 거리'를 마주하게 된 한 장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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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욱

부산울산취재본부 윤여욱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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