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첫 양형기준을 마련했다.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기본 형량을 징역 1년 6개월~4년으로 정하고,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정도가 중한 경우 최대 15년까지 가중할 수 있게 하는 등 내용이다. 피해자와의 합의, 재해자의 자발적인 위험장소 출입 등은 감경인자로 명시했다.
노동계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전국민주노동합총연맹은 형량에 상한을 둔 점, 피해자와의 합의를 감경인자로 삼은 점 등을 비판하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법의 "실효성 강화를 기대한다"면서도 더 세밀한 형량기준 설정, 재해자의 행위를 이유로 한 감경인자 폐지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동원)는 21일 제148차 전체회의를 열어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중대재해 범죄 양형기준 등을 심의했다고 22일 밝혔다. 양형기준은 판사가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하는 지침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권고 효력을 가진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산업재해치사에 대한 처벌 조항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이다. 중대산업재해치상에 대한 처벌 조항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이다. 이번 이번 양형기준은 이 안에서 구체적인 형량 기준을 제시했다.
중대산업재해치사 범죄의 양형 기본영역은 징역 1년 6개월~4년이다. 감경사유가 있으면 징역 10개월~2년, 가중사유가 있으면 3~10년 사이에서 형량을 정하도록 했다. 특별가중인자가 2개 이상 있거나, 특별가중인자가 특별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많으면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이때 특별가중인자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한 경우를 뜻한다. 양형위가 든 예시는 위험요인에 대한 보고 등이 있어 개선 필요가 명백했음에도 하지 않은 경우, 중앙행정기관 등이 반복적으로 시정명령이나 권고를 했음에도 조치를 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조치한 경우 등이다.
특별감경인자에는 유족이 처벌불원서를 낸 경우, 사고 책임자가 실질적 피해 회복에 힘쓴 경우, 재해자가 위험한 장소임을 알면서 스스로 출입한 경우, 재해자가 필수 안전장치를 임의로 해제한 경우 등이 포함됐다.
중대재해산업재해치상 범죄 양형 기본영역은 징역 1년~2년 6개월이다. 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6개월~1년 6개월, 가중사유가 있으면 징역 2~5년 사이에서 형량을 정하도록 했다.
재범 양형 기준도 마련했다. 중대산업재해 범죄가 확정된 뒤 5년 안에 다시 동종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범위 상한과 하한을 1.5배 가중하게 한 내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은 아리셀 참사 항소심 판결 이후 커졌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유족과의 합의 등을 이유로 1심에 비해 11년 감형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생계의 어려움 앞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유족의 사정 등을 고려하지 않고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 책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는 비판이 일었다.
양대노총은 이날 발표된 양형기준에 대한 입장을 각각 밝혔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특히 "피해자와의 합의를 적극적인 감경 요인으로 보는 것은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돈으로 처벌을 회피할 수 있다는 알리바이를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우려했다.
징역 1년 6개월~4년으로 규정된 중대산업재해치사 형량 범위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의무위반치사죄의 기본 양형범위인 징역 1년~2년 6개월"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산안법으로 죄를 묻지 못한 영역에 대해 더욱 큰 책임을 묻는 것이 중처법의 목적이라면 이 양형 범위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또 중대산업재해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에는 "상한이 없다"며 "최대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 처벌 상한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논평을 통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마련된 양형기준을 통해 중대재해 범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보완해야 할 부분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대산업재해치사의 형량범위가 넓어 유사한 중대재해 사건에서도 법관 판단에 따라 형량 편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형량기준을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또 "피해 노동자의 행위가 경영책임자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의 개별 행위를 이유로 한 특별감경인자 재검토를 요구하고, "벌금형 역시 별도의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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