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 태명실업 공장에서 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6.5톤 콘크리트 구조물에 깔려 산재 사망한 가운데, 피해자가 불법 파견, 부실한 안전 관리 등 편법이 만연한 환경에서 일해 온 정황이 확인됐다. 이주인권단체들은 안전관리 책임자인 원청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엄정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고 응우옌 반 탄(39) 씨는 지난 26일 오후 5시 45분경 경기 이천 대월면의 태명실업 이천공장 현장에서 일하던 중 크레인에서 떨어진 6.5톤가량 콘크리트 구조물에 깔려 숨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사고는 구조물을 이동식 크레인으로 인양하던 중 발생했다. 구조물이 약 3m 높이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한쪽 슬링이 끊어지면서 떨어졌고, 크레인 가까이에 있던 지상의 반 탄 씨를 덮쳤다. 해당 구조물은 축구장 등 경기장 관중석에 설치되는 콘크리트 제품이었다.
반 탄 씨가 이곳에서 일을 한 지 한 달 반째였다. 그는 지난 7월 15일 일을 시작했고, 지난 8월 14일 첫 급여 '211만 원'을 받았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에 준하는 기본급 218만 2500원에 사업소득세 3.3%를 뺀 금액이었다. 그는 근로소득자였음에도, 사업소득세를 냈다.
반 탄 씨는 태명실업 공장에서 일했지만 소속은 하청업체인 성원피씨였다. 경기이주평등연대 소속으로 사고 상황을 조사했던 백승호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이주사업국장은 30일 통화에서 "성원피씨는 사람만 투입하는 인력파견과 같은 도급업체로 보인다"며 "원청 안전관리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설비나 안전 관리 모두 원청 소관이었고 아침 작업 회의(TBM), 체조 등도 원청 관리자 주도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 "태명실업 정규직은 50여 명, 성원피씨에선 80여 명이 투입됐다고 들었고, 성원피씨엔 급하게 돈을 구하는 대학생이나 이주노동자가 많았다"며 "기숙사도 태명실업 공장 안에 있었다. 하청의 편법 채용, 원청의 불법 파견 문제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꽃게잡이 배 타다 이천 공장으로… 1년 만에 또 반복된 가족의 비극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27일 사고 현장과 빈소를 방문해 추모 기도를 올렸다.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빈소엔 전남 고흥, 부산,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지인 20여 명이 있었고, 이들과 함께 사고 현장으로 이동했다"며 "고흥에서 온 동료가 가장 많았는데, 고인이 고흥에서 일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반 탄 씨는 2022년 6월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해 충남 태안에 가장 먼저 체류했다. 이후 완도, 고흥 등으로 이동해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는 고흥 등지에서 꽃게잡이 배를 타고 선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수개월간 임금이 체불되고, 일감이 대폭 줄어들자 발을 동동 굴리며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양 집행위원장은 "한 달 벌어 한 달 살고, 가족 부양까지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이 곧 생계 위협"이라며 "그렇게 이천 제조업 공장으로 일터를 옮긴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 탄 씨는 지난해 8월 고흥 새우양식장에서 일하다 감전사한 베트남 노동자 A 씨의 친척이기도 했다. 양 집행위원장은 "일 년 단위로, 가족이 이렇게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극락왕생 기도를 올리기 위해 조계종 사노위와 함께 사고 현장을 방문한 동료들은 평소 그가 즐겨 먹던 맥주와 포카리스웨트 음료, 그가 평소 입던 옷을 기숙사에서 가져와 임시 제단에 올렸다. 이들은 콘크리트 관중석 구조물을 임시 제단으로 썼다.
반 탄 씨는 6세, 7세, 11세의 세 자녀를 슬하에 뒀다. 동료들은 그가 매일 밤낮으로 가족과 통화하며 가족을 살뜰히 챙긴 가장이었다고 전했다. 그의 아내는 경제적 사정 때문에 비행깃값을 준비하지 못해 한국에 입국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반 탄 씨는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1500만 원, 현지 통화로 3억 동의 빚을 졌다. 한국어 교습비, 각종 서류 처리 비용, 보증금 및 체류비 등 고용허가제 비자 발급에 든 비용이다.
줄 끊어진 원인 가리지 않고 기사 탓만? "꼬리자르기 말고 진상규명"
중대재해 사고를 수사하는 경찰은 사고가 난 크레인을 조종한 70대 기사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지난 26일 입건했다.
경기이주평등연대는 즉각 "고령 크레인 기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꼬리자르기식 표적 수사를 중단하라"며 "위험의 외주화와 위장 도급·불법 하도급 구조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요구했다.
박 이주사업국장은 ""구조물을 크레인에 연결한 줄이 파손된 게 사고의 핵심인데, 이게 조종사가 조종을 잘못했다고 끊어질 줄이냐"며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안전 관리는 원청에 책임이 있는데 수사기관인 현재 책임이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은 고령의 기사를 즉시 입건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불법 파견 정황, 비정상적으로 인력을 채용한 정황이 확인되는 등 안전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위험한 현장으로 충분히 추단된다"며 "하청업체는 사고 발생 후 며칠간 직원들을 현장에 출근시키지 않았다. 근로감독관이 조사하러 나왔으니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경기이주평등연대는 "크레인 인양물 하부 작업반경에는 근로자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고 전담 신호수가 배치돼야 하는데도, 현장에는 안전 통제선도, 신호수도 없었다"며 "슬링바는 결국 끊어졌고, 구조물 정중앙에 배치됐던 고인은 피할 겨를도 없이 참변을 당했다"고 밝혔다.
경기이주평등연대는 이어 "원청 태명실업은 위험하고 열악한 생산·상하차 공정을 하청에 위탁하고 불법적인 직접 지시·통제를 행하면서도 사고의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며 "태명실업과 하청 성원피씨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전면 재수사하고, 책임자를 엄벌하라"고 요구했다.
고인은 지난 29일 화장돼 베트남으로 보내졌고, 현지에서 가족장을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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