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암은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사망원인 가운데 하나다. 고령화와 함께 암으로 인한 질병 부담과 사회경제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암을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국가암검진사업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1999년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국가암검진사업은 점차 대상과 암종을 확대해 현재 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폐암 등 6대 암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저소득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해서는 검진 비용을 면제하는 등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도 발전해 왔다. 정책의 논리는 명료했다. 돈 때문에 필요한 검진을 받지 못한다면 그 비용을 낮추면 된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실제로 소득별 검진 격차가 줄어드는 양상도 관찰됐다. 그렇다면 직접적인 검진비 부담을 상당 부분 낮춘 지금은 어떨까.
2026년 국제학술지 <퍼블릭 헬스(Public Health)>에 발표된 연구 한 편은 다소 불편한 결과를 보여준다(☞논문 바로가기: 한국의 지속적인 소득 관련 암 검진 이용의 불평등: 2013년-2023년 반복 횡단면 자료 분석). 연구진은 2013년, 2018년,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4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최근 2년 간 암 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지 분석했다. 국가암검진뿐 아니라 개인이 비용을 지불하거나 민간보험을 통해 받은 검진도 포함한 결과다.
평균만 보면 지난 10년은 성공적이었다. 전체 암검진 수검률은 2013년 63.7%에서 2023년 71.8%로 높아졌다. 그러나 소득별로 보면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소득 하위 20%의 수검률은 58.4%에서 60.5%로 조금 높아진 반면, 상위 20%에서는 70.4%에서 79.4%로 상승했다. 두 집단 사이의 격차는 12.0%포인트에서 18.9%포인트로 오히려 커졌다. 연령, 성별, 건강상태와 만성질환 등 의료적 필요의 차이를 고려한 뒤에도 고소득층에 유리한 검진 이용의 불형평성은 더 커졌다. 전체 소득 관련 불평등 가운데 '소득'이 설명하는 상대적 기여 역시 2013년 38.2%에서 2023년 71.4%로 증가했고, 교육수준의 기여도도 높아졌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아직도 가난한 사람이 검진을 덜 받는다"는 사실이 아니다. 전체 수검률이 꾸준히 올라가는 동안에도 그 개선의 크기는 모든 사람에게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책을 평균 수검률로 평가하면 63.7%에서 71.8%로 오른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그 숫자를 소득집단별로 다시 보면, 개선의 상당 부분을 사회경제적으로 유리한 집단이 더 크게 누렸다. 평균은 전체가 얼마나 많이 검진을 받았는지 알려주지만, 그 증가분에서 누가 더 많이 혜택을 받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숫자가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숫자를 정책의 성적표로 삼느냐'다. 건강과 의료가 강하게 계량화될수록 지표 자체가 본래의 문제를 대신하기 쉽다. 수검률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말과 동일하게 사용한다면, 그 안에서 확대되는 불평등은 오히려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접근성이란 무엇인가. 검진 가격이 낮고 가까운 곳에 검진기관이 존재하면 접근성이 보장된 것일까.
검진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검진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야 하고, 일을 쉬어야 할 수도 있으며, 예약하고 이동하고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하루 일을 쉬면 그날의 소득이 줄어드는 사람에게 '무료 검진'은 사실 무료가 아니다. 소득은 단순히 통장에 들어오는 돈의 크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고용의 안정성,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 휴가 사용 가능성, 미래 소득의 예측 가능성 같은 삶의 조건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 '소득'의 기여가 커졌다는 결과를 곧바로 돈의 효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소득이라는 변수 뒤에는 노동조건, 시간의 자율성, 교육·정보에 대한 접근 등 여러 사회적 조건이 함께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는 개념도 결국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살아가는 조건이 돈과 권력, 자원의 불평등한 분포에 의해 달라진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렇게 보면 정책의 문제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검진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비용"이라고 문제를 정의했다면, 본인부담을 낮추는 것이 합리적인 해법이었다. 그러나 실제 문제가 '누구에게 검진받을 수 있는 시간과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라면 비용을 0원에 가깝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검진 이후까지 생각하면 문제는 더 분명해진다. 암검진은 검사 한 번으로 끝나는 서비스가 아니다. 이상이 발견되면 확진과 치료로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 치료비와 비급여, 노동 중단과 소득 감소가 뒤따른다. 연구진 역시 암이 발견된 뒤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저소득층의 검진 이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제기한다. 검진 시점의 비용만 없애고 그 이후의 재정적 위험을 개인에게 남겨둔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검진의 비용'은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암검진의 다음 단계는 단순히 더 많은 사람에게 검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고, 고용형태에 따른 제약을 줄이며, 예약과 이용 절차를 단순화하고, 암 발견 이후의 진료와 경제적 보호까지 연결해야 한다. 하나의 수단을 먼저 정해 놓고 문제를 거기에 맞추기보다, 실제 사람들이 검진을 받지 못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필요한 수단을 묶어야 한다.
국가암검진사업이 검진비라는 중요한 장벽을 낮춰온 성과는 부정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성공이 이제 다음 단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데 있다. 가격을 낮추는 것과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같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것도 같지 않다. 이제 국가암검진의 성적표는 '몇 명이 검진을 받았는가'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과 관계없이 검진받고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서지 정보
An S, Yi S, Hong J. Persistent income-related inequalities in cancer screening utilisation in South Korea: Evidence from repeated cross-sectional data, 2013-2023. Public Health. 2026 Mar;252:106157. doi: 10.1016/j.puhe.2026.106157. Epub 2026 Jan 17. PMID: 41548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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