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지, 가야지, 오시비엥침 가야지." 만약 폴란드 학생들과 스포츠 경기 중인 상대 팀 선수들이 폴란드 선수들을 향해서 이런 노래를 율동에 맞춰 불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오시비엥침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다.
8년 전 가을 새벽 2시경 폴란드 시골 마을 오시비엥침 역 승강장에서 프라하행 국제열차를 기다렸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지방 도시는 저녁 일찍 인적이 끊긴다. 식당에서 천천히 저녁을 먹고 인근 쇼핑몰에서 마감 시간까지 버티고도 예정된 열차 출발 시간까지는 4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역에는 역무원도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도 없었다. 캐리어에 얹은 배낭 위에 머리를 기대고 기다리는 것도 지쳐서 승강장으로 미리 나갔다. 열차가 과연 제시간에 올는지 걱정하면서 바르샤바 쪽으로 나 있는 어둠 속 선로 끝을 쳐다봤다.
오시비엥침 역 부지는 도시의 크기에 비하면 꽤 큰 편이다. 역 구내 부설된 여러 개의 선로 위에는 화물열차들이 유치돼 있고 승강장 양쪽으로 열차를 받을 수 있는 섬식 승강장이 세 개나 있다. 역 규모로 봐서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니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오시비엥침 역에서 체코 쪽으로 이어진 선로는 역 구내에서 선로를 나누는 분기기를 따라 지선으로 갈라진다. 이 몇백 미터 남짓한 지선의 끝이 절멸 수용소였다. 화물열차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내려진 뒤 간단한 심사가 시작된다. 보따리를 품에 안은 사람들은 선발 장교에 의해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 세워졌다. 바로 죽일 사람과 조금 쓰다 죽일 사람 간의 차이였다.
멀리서 보이는 기관차의 헤드라이트를 보고서야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바퀴를 멈춰 세우느라 작동하는 브레이크 쇳소리가 이어진 객차를 따라 메아리처럼 울리며 새벽의 고요함을 깼다. 열차가 정차했고 승강장에 내려선 차장이 먼 거리에서 수신호 등을 움직이며 승차하라는 손짓을 했다. 올라타자마자 열차는 바로 출발했다. 흔들리는 객차 통로에서 겨우 중심을 잡으며 창밖을 보았다. 체코로 향하는 철길 오른쪽에는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인 비르케나우고 왼쪽은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표어를 정문에 설치한 제1수용소가 자리 잡고 있지만 낮에 보았던 건물들은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았다. 예약된 침대칸을 찾았을 때는 이미 아우슈비츠 구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지구상의 특정한 장소는 트라우마가 내재해 있다. 오시비엥침, 제주, 광주, 팽목항, 이태원 골목 같은 곳이다. 혐오에 기반한 살육의 현장이거나 국가폭력이 자행됐던 곳이거나 생명이 안타깝게 소진된 곳들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잃지 않는 존재라면, 역사 속 잘못을 반성하는 존재라면 아픔이 있는 곳에 마음을 담아 위로해야 한다. 치유는 진실한 마음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기억하고 보듬는 것에서 시작된다. 피해자를 조롱하고 다시 떠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일들을 소환해 놀이로 삼는 것은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위대한 자본주의의 산물인 무한경쟁은 인간을 공동체로부터 고립시켰다. 첨단기술은 개개인 모두에게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정보처리 능력을 갖 단말기를 제공했다. 이 단말기가 제공하는 무한 비교는 인간을 부지불식간에 냉소적으로 만든다. 무한경쟁과 비교 끝에 인간은 고립된 채 서서히 자존감을 잃어간다. 자존감을 잃은 사람들에게 혐오만큼 쉬운 것은 없다.
모든 성취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지루한 선 그리기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성숙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림 그리기든, 외국어 실력이든, 운동 능력이든 자신도 모르게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쇼츠로 대변되는 초고속 시대, 혐오만큼은 접근성에 제한이 없고 큰 노력 없이 아주 쉽게 행사할 수 있다. 또 이 혐오를 바탕으로 한 집단의 일원이 되면 소속감도 생기고 인정도 받는다. 정치, 종교, 기업을 망라한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자들도 앞장서거나 부추기고 조장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아니다. 저 중국인, 동성애자, 장애인, 여자들 때문이다. 저들을 몰아내자!”
혐오의 언어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말을 칼로 삼아 악다구니로 약자를 괴롭히라고 근대 자유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던 것이 아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집단이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적 이해에 매몰될 때 이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로서 시민에게 부여한 것이 양심의 자유이고 표현의 자유이다.
혐오의 발화를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바쳐서 얻은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방패 삼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역사를 돌려 야만으로 가자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끔찍해질 것이다.
드레스덴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계속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객실 통로가 보이는 투명 유리문 안쪽 독립된 방에 6개의 깨끗한 좌석이 있다. 좌석 사이 테이블은 음식을 먹기에도 책을 읽기에도 좋다.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고 조명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현대식 고속열차가 주는 안락함은 인류가 달성한 기술적 성취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철도는 때때로 비극의 한가운데 존재했던 역사적 무대 장치였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많은 우리의 일기나 글에서 기차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상업용 운송수단을 이동식 감옥이나 심지어 죽음의 도구로 봉인된 열차였다"고 회상한다.
1937년 연해주의 한인들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에 따라 삶의 터전을 이뤘던 땅에서 쫓겨났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지역의 많은 역에서 짐보따리를 든 조선인들이 열차에 태워졌다. 만약 누군가가 다가와 총부리를 겨누며 수천 킬로미터 밖으로 떠나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혐오와 의심, 배타적 민족주의, 종교적 맹신이 정치권력의 구동력이 되면 평범한 사람들을 살인마로 둔갑시키고 약한 사람들은 삶의 많은 것들을 박탈당한다.
철도는 인간이 만든 이동 수단에 불과하지만 근대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기계장치로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치는 많은 것들을 토해낸 문명의 도구이다. 도구는 결국 주인의 의지에 따라 사용처가 결정된다. 사람을 이어주고 물류를 이동시키며 교류와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끔찍한 살인 기계가 될 수도 있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긴 열차 여행 끝에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드레스덴을 방문했던 감흥은 사라지지 않았다. 광기에 내몰린 나치의 군대가 행군했던 거리, 폭격으로 돌무덤이 되어 버렸던 도시,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강변 풍경과 파란 하늘, 골목, 광장, 건축물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시공간을 뒤섞은 채 머릿속을 맴돌았다.
"예전 사람들을 맴돌던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듣는 목소리들 속에는 이제는 침묵해 버린 목소리들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다." 시베리아를 여행할 때 떠올렸던 발터 벤야민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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