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미프진 도입을 의사의 재량에 맡겨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해 9월 123대 국정과제에 임신중지 제도 마련이 포함된 데 이어, 3개월 뒤 국무회의에서도 관련 방안 마련을 주문한 이후 벌써 세 번째 공개적인 문제 제기다.
이전보다 즉각적이고 다양한 반응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정말 변화가 시작되는 것인지 기대를 갖게 된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두 번의 국회와 세 번의 정부를 거쳐오고 있다. 그 사이 10건이 넘는 형법 또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되거나 계류를 반복했고, 논의는 이어졌지만 결정은 번번이 미뤄졌다. 이제 한국의 임신중지는 단순한 입법 공백을 넘어, 부작위 자체가 하나의 질서가 된 상태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임신중지는 매년 3만 건 정도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미 사(死)법이 된 모자보건법 14조에 근거하여 건강보험 급여로 시행되는 경우는 약 3천 건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2022년을 마지막으로 한 비공식 집계다. 공적 제도가 인정한 일부 사례를 제외한 나머지 2만7천 명은 건강보험과 제도적 지원의 테두리 밖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겪어내야한다.
온라인에는 정식 허가되지 않은 임신중지 약물 판매 광고와 상담이 끊이지 않고, 2021년 이후 5년동안 불법 유산유도제 판매 적발 건수만 2만6천 건에 이른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로 평가받는 미페프리스톤의 도입은 수년째 신중론 속에 머무는 사이, 효과와 안전성이 더 낮은 미소프로스톨과 메토트렉세이트(항암제 및 면역억제제의 일종)는 별도의 상담체계나 진료지침, 관리체계 없이 사실상 병원에서 약물 임신중지에 사용되고 있다. 의료사고의 위험과 법적 불확실성은 이들 약물에도 동일하게 존재하지만, 이를 다루기 위한 제도와 진료지침 역시 마련되지 않은 것은 피차일반이다.
그동안 의료진은 법적 위험 속에서 위태롭게, 혹은 대담하게 진료할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사례만 선택적으로 진료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해 왔다. 임신 초기이면서 기혼자, 비장애인, 비청소년, 보호자가 동행한 경우처럼 법적·사회적 위험이 낮다고 판단되는 사례들 말이다. 제도가 비워 둔 자리는 결국 비공식 시장이 메웠다.
애초에 임신중지를 하기로 정해진 사람은 없다. 임신중지는 생애 어느 시점, 불현듯 당사자가 되어버리는 경험이다. 간절히 원했던 임신에서도, 난임치료 끝에 얻은 임신에서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청소년에게도 임신중지의 결정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임신중지를 요구하는 사람이 어제까진 임신중지를 반대했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낙인의 시간과 공간을 지나서야 비로소 '당사자였던 사람'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성계나 시민사회 외에도 정부 부처와 의료계 역시 여성의 건강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이 논의에서 임신중지 당사자는 좀처럼 등장하지 못한다. 잊혀져 있다가 논쟁이 시작되면 그 주체가 아니라 보호의 대상, 규제의 대상, 판단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당사자의 경험과 필요는 논쟁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머문다.
약물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우려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처방 기준과 적응증, 금기사항, 응급대응 체계, 추적관찰, 의료진 보호 장치, 그리고 국내 의료진을 위한 교육과 진료지침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단순히 미페프리스톤이 도입된다고 해서 접근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진이 법적 책임을 우려하거나 사용을 주저한다면 약은 있어도 환자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반대로 환자 역시 비싼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 반복되는 진료, 보호자 동반 등을 요구받는다면 문턱이 높은 것은 매한가지다.
더 나아가 의도하지 않은 임신과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경제적 취약성, 그리고 그 선택에 이르게 된 삶의 조건을 외면한 채 약물만 제공하는 방식은 또 다른 취약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선택이 강요된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그 구조에 개인이 적응하도록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칫 약물은 여성을 해방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존의 억압적 구조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동원될 수도 있다. 이러한 준비는 도입을 미루는 이유가 아니라, 도입과 함께 구축해야 할 의료체계의 과제다. 논의를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이미 너무 오래 미뤄왔다.
지침과 제도가 없어 도입도 사용도 할 수 없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동안 관련 제도와 진료지침을 마련할 시간은 충분했다. 실제로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진료지침은 마련되었지만, 약물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와 진료기준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 최종적인 허가와 제도는 정부가 결정한다. 그러나 그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과학적 근거를 축적하고, 안전한 진료기준과 의료체계를 제안하는 일은 의료계와 전문가 집단이 함께 맡아야 할 공적 책무이기도 하다.
임신중지를 연방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은 2022년 돕스(Dobbs) 판결로 뒤집혔다. 이로 인해 임신중지 접근성이 크게 후퇴한 미국에서 의료계와 학계는 어떠했을까.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임신중지를 근거 기반 의료의 필수 요소로 규정하고, 접근성 확대와 전공의 교육 의무화를 지속적으로 옹호해왔다. 학회가 운영하는 "Abortion Is Essential Health Care(임신중지는 필수의료다)" 플랫폼은 임신중지 관련 근거자료와 진료 자원을 제공하며, 그 자체로 안전한 접근을 지지하는 학회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준다. 돕스 판결 직후에는 미국 산부인과 교수 900여 명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임신중지 금지가 여성의 건강과 산부인과 진료, 전공의 교육을 훼손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뉴질랜드에서는 이보다 앞서 산부인과 의사와 시민사회가 함께 제약사를 설립해 미페프리스톤 도입을 이끌어냈다.
안전한 제도와 진료체계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필요성이 지난 7년의 부작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해외에서는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가 집단이 근거를 축적하고 진료기준을 제안하며 제도 논의에 적극 참여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시민사회와 관련 전문가들은 지난 7년 동안 그 책임을 충분히 다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안전한 임신중지 제도는 정부의 결단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옹호하는 전문가 집단이 부단하게 축적된 근거와 기준을 제시하고 시민사회가 공론장을 형성하여 이를 사회정치적 의제로 정립해 나갈 때 비로소 단초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식약처, 성평등가족부와 입법부의 지속적인 부작위는 단순한 중립이나 신중함이 아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지연시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이는 책임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며, 재생산 건강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유예한 권력의 행사였다. 그것은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정작 안전했던 것은 임신중지 당사자가 아니라 결정을 미루는 권력이었다.
미국의 의학자 폴 파머(Paul Farmer)는 <권력의 병리학>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질병만이 아니라 구조라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의 임신중지 역시 그렇다. 위험은 임신중지 자체보다 그것을 안전하게 의료 안에서 다루지 못하는 구조에서 더 크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임신중지는 단지 허용 여부를 둘러싼 이념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총체적 삶과 건강의 문제이며, 재생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다.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안전하게 보장할 것인가'이다.
오늘도 정부가 운영을 위탁한 상담사이트에는 질문이 올라온다. "도와주세요." "불안해요." "저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생리를 안 해요." 수년째 같은 질문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존재할까. 우리가 7년째 논쟁을 계속하는 동안, 이들은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제도권 밖에서 임신중지를 겪었다. 도움을 구하며 시작한 이 무의미한 상담 끝에,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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