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축구연맹(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축구대표팀의 주공격수인 폴라린 발로건의 퇴장 징계를 재검토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피파가 1962년 이후 처음으로 퇴장당한 선수에게 경기를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5일(이하 현지시간)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1일 미국 축구 대표팀 경기가 끝난 직후,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폴라린 발로건의 퇴장 징계를 재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통화 내용을 잘 아는 네 사람이 전했다"며 "이후 이날 피파는 발로건에 대한 징계를 철회하고 6일 벨기에와 16강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번 징계 철회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피피가 월드컵에서 퇴장당한 선수에게 출전을 허용한 것은 1962년 이후 처음"이라며 "인판티노 회장은 수년 간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해 피파는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공개적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한 것을 계기로 그에게 제1회 피파 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난 1일 발로건은 32강전 경기에서 상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대표팀인 타리크 무하레모비치의 발목을 밟아 비디오 판독(VAR) 끝에 32강전에서 퇴장을 당했다.
이후 미국 내에서 불만이 쏟아졌는데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면서 피파에 항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문에 따르면 통화내용을 잘 아는 두 관계자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앤드류 줄리아니 백악관 월드컵 태스크포스 사무총장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피파의 항소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축구연맹(USSF)의 항소를 돕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말했다.
신문은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미국축구연맹의 주요 기부자인 스콧 굿윈은 해당 경기 주심인 하파에우 클라우스가 브라질에서 레드카드를 남발하며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대중적 의혹을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에게 환기시켰다"며 발로건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 심판을 공격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신문은 "브라질 당국과 피파는 클라우스 주심의 부정행위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통화 내용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인판티노 피파 회장과 통화에서 이 의혹을 직접 제기했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발로건 선수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 것은 클라우스 주심의 단독 결정이 아니었다. 신문은 "당초 클라우스 주심은 발로건의 반칙을 선언하지 않았으나, 리플레이를 모니터링하던 다른 심판진의 요청으로 판정을 재심사하게 됐다"라며 "비디오 판독 심판진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프랑스 출신이었다"고 전했다.
미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 피파는 5일 성명을 통해 "피파 징계 규정 27조에 따라, 발로군 선수의 경기 출전 정지 조치 집행을 1년 기간 동안 유예한다"며 "유예 기간 중 발로건 선수가 유사한 성격과 심각성을 가진 또 다른 위반 행위를 저지를 경우, 유예는 취소되고 징계가 집행된다. 이는 새로운 위반 행위로 인해 부과되는 추가 징계와는 별개로 적용된다"라고 밝혔다.
신문은 "성명에서는 다른 퇴장당한 선수들과 달리 발로건 선수에게 자동 출전 정지 징계가 내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발로건 선수에 대한 퇴장 명령 집행 정지가 발표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인판티노 회장이 다시 통화했다고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판티노 회장에게 그 결정이 옳았다고 말했다고 관계자들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의 본인 계정에 "옳은 일을 하고 큰 불의를 바로잡아준 FIFA에 감사한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벨기에 축구 연맹은 성명을 통해 "징계 처분을 받은 미국 선수 폴라린 발로건이 미국과 벨기에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피파의 결정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라며 "모든 가능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벨기에 측은 피파가 자체 규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월드컵 개최 전 회의 및 5월 각국 축구협회에 보낸 서한에서 밝힌 내용과도 상반된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발로군에 대한 갑작스러운 사면은 인판티노 피파 회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라며 "노르웨이 축구협회장은 인판티노 회장을 상대로 제기된 윤리 고발에 이미 동참한 상태였는데, 인판티노 회장이 트럼프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후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피파 정관을 위반했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5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 행사에서 인판티노 회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1회 'FIFA 평화상(FIFA Peace Prize)'을 수여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정치적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문은 "인판티노 회장은 스스로를 미국 대통령의 친구라고 묘사해 왔으며, 피파의 122년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트럼프에 대한 찬사와 선물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왔다"고 전했다.
신문은 "발로건 선수가 받은 이번 징계 유예는 1962년 브라질의 스타 공격수 가린샤가 브라질 정부의 개입 덕분에 그해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할 수 있었던 사건과 닮아있다"라며 "당시 가린샤는 준결승전에서 퇴장을 당했으나, 훗날 대통령이 되는 탕크레두 네베스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이 피파에 그의 출전을 허락해 달라고 청원했다"고 보도했다.
피파의 이같은 행태에 곳곳에서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의 영국 축구 해설위원 게리 네빌은 "판정을 뒤집을 수 있는 정당한 절차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공식 절차가 전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피파가 뜬금없이 나타나 사실상 선수를 뛰게 해주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규칙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말이다"라고 비판했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그는 "내가 벨기에 대표팀이거나, 이번 대회에서 퇴장을 당해 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모든 팀의 선수였다면 정말 격분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가 이 결과에 놀라기나 했나? 아니다. 이 작자들(피파)이 하는 짓거리라면 전혀 놀랍지도 않다"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인 아스널 출신 축구 평론가 이안 라이트 역시 "다들 진실성(스포츠 정신)이니 투명성이니 말들을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특정 팀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면 정말 수치스러운 수준"이라며 "이번 월드컵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몇 일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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