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바우처라는 낯선 이름의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포함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던 신규 제도가, 어느덧 강산이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법률에서는 바우처라는 영어 대신에 이용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일반인에게 익숙한 에너지 쿠폰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해서 설명되기도 한다. 이름이야 어쨌건 결국에는 에너지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정부가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의 역사가 그보다 한참 더 긴 편이다. 2005년에 어느 저소득 가정이 전기요금을 납부하지 못해 3개월가량 연체되자, 한국전력은 약관에 의거해 전기공급을 차단해 버렸다. 그러자 이 집에 살고 있던 여중생이 어두운 방에서 촛불을 켜놓고 공부하다가 잠들었는데, 그만 화재가 발생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국회는 에너지 공급을 담당하는 공기업의 무책임을 비난했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에너지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전담 기관으로 한국에너지재단이 2006년에 설립됐으니, 지금은 어느새 2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됐다.
덕분에 한국은 에너지 복지 체계를 촘촘히 갖춰놓고 있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는 가구당 평균 36만 원이던 바우처 지원금을 51만 원으로 증액해서 지급하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이처럼 에너지 복지 예산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바우처의 미사용률은 2019년 19퍼센트에서 2023년 38퍼센트로 두 배 가까이 폭증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즉, 에너지 용도로 사용이 제한됐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을 미처 사용하지 못할 지경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에너지 복지 20년과 에너지 바우처 1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과 정책의 진화가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나마 에너지 바우처는 예산이 7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일 뿐만 아니라 아파트 게시판에 공시되면서 시민들의 체감도가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국감에서도 매년 주의 깊게 다뤄지는 분야이다. 반면에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된 숨겨진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액화석유가스라고 불리는 LPG의 소형저장탱크 및 배관망 보급 사업이다.
선진국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도 농어촌과 도서․산간의 일부 지역에서는 현대적 에너지인 도시가스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값비싼 등유 보일러를 이용해 한겨울 혹한기를 버티느라 비용 부담마저 큰 편이다. 이런 에너지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2년부터 30가구의 마을을 대상으로 LPG 소형저장탱크보급 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했다. 이어서 2013년에는 9개 광역도 지역마다 한 개씩 추가로 지정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배관망 보급 사업 관련 예산을 16억 원으로 증액했으며, 2015년에는 이를 35개 마을로 확대한 뒤 정부 재정을 52억 원으로 늘렸을 정도였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취약계층 대상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에서는 전기나 도시가스에만 정부 지원금이 지급됐었다. 따라서 액화석유가스 관련 정부 혜택은 누락됐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무렵에는 에너지 바우처가 새로 도입되면서, 산업부가 LPG 소비를 촉진할 수 있었다. 최근인 2022년에는 외딴섬을 대상으로도 저장탱크 사업이 확대되는 중이다. 즉, 31개 섬의 4200세대에게 454억 원을 투입해 2026년까지 액화석유가스 설비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게다가 같은 해 9월에는 군(郡) 단위의 LPG 배관망 사업을 통해 150세대에서 1000세대 규모의 읍면으로 확대하는 계획까지 발표됐을 정도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액화석유가스는 도시가스의 보급 확대로 인해 1990년대 이후 수요가 줄어들면서 재고가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다음 그림에서 보이듯이 2010년까지만 해도 공급 과잉이 오랫동안 유지됐었다. 이후 2012년에 소형저장탱크 사업을 추가함으로써, 천연가스 미공급 지역의 프로판 가스 소비를 늘렸으며, 2022년에는 도서 지역을 포함할 정도로 여러 차례에 걸쳐 신규 시장을 꾸준히 확대해 나갔다.
정리하자면 액화석유가스는 2001년 이후로도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지 못하면서 시장이 정체 및 축소되는 상태였다. 이런 가정용의 LPG 수요를 늘릴 수 있었던 직접적 계기는 2012년의 에너지 복지였다. 즉, 대도시 중심으로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낙후된 미공급 지역의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증진을 명분으로 산업부는 정부 지원금을 늘려나갔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LPG 배관망 사업은 최근 석유화학용 수요의 폭증 및 제주도의 천연가스 공급 개시 같은 변동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꾸준히 확대해 오고 있다.
물론 정부의 LPG 소형저장탱크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산간 외곽지역에서 편리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등유 보일러에 비해 가격까지 저렴하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정부 예산이 지출되는 재정 사업이다 보니, 낙후 지역의 주민들로서는 금전적으로 이익이 제공되는 사업이라서 밑져야 본전인 사업이다.
그렇지만 사실 동일한 저장탱크에 도시가스를 넣어서 배관망으로 공급한다면, 동네 사람들에게는 더 큰 혜택이 제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액화석유가스 보다는 도시가스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 사업을 통해 도시가스가 아니라 LPG를 공급함으로써 발생한 사회적 손실의 수혜자는 액화석유가스 업체일 수밖에 없다. 만약에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석유 시장 및 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에너지 복지의 취지라면, 지금이라도 저장탱크를 도시가스로 채우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만 지난 10년 넘게 국가 재정으로 낙후 지역을 지원하는 사업이어서, 주민들이 만족하다 보니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은 채 예산이 늘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선거 때마다 지역에서 한 표라도 더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도 자신의 치적으로 간주하는 사업이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반론이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번 선관위 사태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즉, 정치인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경우에는 아무런 비판 없이 눈감아 주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정부 사업에 대한 견제가 오랫동안 무력화될 때는 각종 부패와 문제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정권이 세 번 교체될 정도의 시간 동안 무비판적으로 확대된 사업에 대해 이제는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복지 명분의 LPG 배관망 사업에 액화석유가스 대신에 저렴한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건 어떨까?
※ 자세한 내용은 “친환경·에너지복지 수단으로서 액화석유가스에 대한 정부 개입”을 참고할 수 있다(진상현, 2026, 「한국기후변화학회지」, 17권 2호, 297-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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