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시대가 오면서 '녹색 일자리(green jobs)'라는 말이 정책 문서와 보고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풍력발전 유지보수 노동자, 태양광 시공 기사, 전기차 생산 노동자, 건물 에너지 리모델링 시공자, 재활용 산업 종사자 등이 대표적인 녹색 일자리로 분류된다. 그런데 그 일자리는 정말 녹색 일자리인가?
녹색 일자리, 정말 녹색인가
지난 3월 경북 영덕의 한 풍력발전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불과 한 달여 전에는 같은 단지의 다른 풍력발전기의 타워구조물이 꺾여 도로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운영사는 발전기 가동을 중단하고 점검에 들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사망한 노동자들은 분명 녹색산업으로 불리는 재생에너지 산업 종사자였다. 그러나 그들이 일한 환경까지 녹색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제노동기구(ILO)는 환경을 보전하거나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일자리이면서 동시에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를 녹색 일자리로 본다. 2008년 ILO와 유엔환경계획(UNEP)가 공동 발간한 <녹색 일자리: 지속 가능한 저탄소 세계의 괜찮은 일자리를 위하여>는 이 원칙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ILO가 강조하는 것은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노동의 질의 결합이다. 공정한 임금, 안전한 작업 환경, 사회적 보호, 노동3권 보장, 차별 없는 기회,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산업에 속한다는 사실만으로 녹색 일자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탄소를 줄이는 산업 안에서도 위험한 일자리, 불안정한 일자리, 침묵을 강요받는 일자리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녹색 발전기 아래의 회색지대
영덕 사고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 점이다. 한국 산업 현장에는 오래된 원리가 하나 있다. 위험은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발전소와 자동차·조선소, 철도와 건설 현장에서 반복돼 온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구조다. 재생에너지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풍력발전 산업에서는 시공, 운영, 유지보수가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다. 운영사는 유지보수를 전문업체에 맡기고, 외주업체는 다시 단기 계약 또는 일용직 형태로 작업자를 고용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여러 제도적 공백과 결합하면서 위험을 키운다는 점이다.
풍력발전기는 건축물이 아닌 구축물로 취급되며, 현행 법체계에서는 일반 건축물과 같은 수준의 소방시설 설치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수십 미터 상공의 밀폐된 나셀(Nacelle)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설계수명을 초과한 노후 설비에 대한 안전성 관리 체계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최근 정부가 안전성 평가를 통한 가동 중지·철거 기준 마련에 나서고, 관련 법 개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만, 사고 이후에야 제도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 역시 적지 않다. 더욱이 풍력 O&M(운영·유지관리) 작업에 특화된 국가 공인 자격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고소·밀폐 공간 작업에 필요한 전문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채 인력이 투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원청 책임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처럼 법적 사각지대와 다단계 하도급이 뒤엉킨 현장에서 과연 실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구조를 바꾸는 세 가지 과제
영덕 사고는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따라서 해법 역시 사고 당시의 개별 행위만을 들여다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고용구조, 안전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제도, 노동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의사결정 구조를 함께 바꿔야 한다. 그 과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고위험 유지보수 작업에 대한 도급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 고소 작업과 밀폐 공간 작업, 해상 유지보수처럼 생명·신체에 직접적 위험을 초래하는 업무는 원칙적으로 외주화를 제한하거나, 최소한 수급인의 안전보건 역량을 엄격하게 검증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또한 노동자가 위험을 발견했을 때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설비와 감독에 관한 법적 공백을 실질적으로 메워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노후 풍력설비 안전성 평가와 가동 중지 제도가 현장에서 겉돌지 않도록 촘촘한 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풍력발전기 내부 소방시설 기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고소·밀폐 작업 환경에 특화된 풍력 유지보수 전문 자격 체계 구축 역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셋째, 노동자를 에너지 전환 거버넌스의 주체로 포함해야 한다. 위험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은 현장 노동자다.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지, 설비가 실제로 위험한 상태인지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그러나 하청과 일용직 중심 구조에서는 안전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대표의 참여는 단순한 이해관계 조정이 아니라 안전 확보를 위한 핵심 장치다. 개인은 말하는 순간 불이익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집단이 말하면 사회적 의제가 되고 교섭 의제가 된다.
영국 해상풍력 분야 '공정노동헌장'
이런 과제들이 이상적인 구호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과 노동조건 개선을 함께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영국은 2026년 2월, 해상풍력 분야 '공정노동헌장(Fair Work Charter)'을 확정했다. 이 헌장은 정부가 초안을 제안하고 노동조합과 산업계가 공동으로 설계한 노·사·정 협약으로, 청정에너지 일자리가 단순히 탄소를 줄이는 일자리에 그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목할 점은 접근 방식이다. 영국은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각종 공적 지원을 노동조건 보장과 연계하고,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노동권 보장에 책임을 지도록 요구한다. 단순한 처벌 중심 규제를 넘어 공공지원과 사업 추진 과정 전반에 노동기준을 반영함으로써 실질적 이행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또한 해상풍력이라는 고립된 작업 환경에서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접근하고 집단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 장치를 마련했다.
한국과 영국의 제도적 맥락은 다르다. 그러나 청정에너지 산업의 성장과 노동조건 개선을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정책 목표로 묶어 접근했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 역시 발전사업 허가나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지원 등 공적 지원 체계에 안전보건과 일자리의 질을 연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조건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에너지원의 전환만으로 정의로운 전환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재생에너지는 탄소를 줄일 수 있지만,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저절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도와 규제, 그리고 노동자의 집단적 발언권이다. 그래서 녹색 일자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일자리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내용도 함께 물어야 한다. 임금은 적정한가? 고용은 안정적인가? 노동자는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가? 안전 문제를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는가? 생명과 건강은 보호받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일자리는 아직 완전한 의미의 녹색 일자리가 아니다.
영덕 사고가 드러낸 것은 재생에너지 산업 내부에 남아 있는 오래된 노동체제의 문제였다. 위험의 외주화와 안전 규제의 공백, 노동자의 발언권 부재라는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의로운 전환은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만드는 일인 동시에 오래된 위험을 걷어내는 일이다. 녹색 일자리 확대를 말하는 시대, 이제는 그 일자리에서 회색을 지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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