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간부들 취미는 조선 물건 수집?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자기, 2인자는 고서적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⑮ 소네 아라스케, 조선의 고서적을 수집하다

제2대 통감을 지낸 소네 아라스케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1849.2.20.~1910.9.13.)는 야마구치현(山口県) 출신으로 중의원, 사법대신, 농상무대신, 대장대신 등 주요 요직을 거친 정치가였으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뒤를 이어 제2대 통감이 되어 조선을 통치했던 인물이다. 1907년 9월 21일에 부통감이 되었고, 이토 히로부미가 추밀원 의장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가자 1909년 6월 14일에 제2대 통감(1909.6.14.~1910.5.30.)으로 임명되었다.

▲ 소네 아라스케 ⓒ wikipedia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에 대한 침략성을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은 일본의 무력과 불리한 국제 정세, 친일매국노 등으로 인해 한일의정서(1904.2.23.), 제1차 한일협약(1904.8.22.), 그리고 제2차 한일협약인 을사늑약(1905.11.17.) 등 일련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27.), 제2차 영일동맹(1905.8.12.)을 통해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지배를 인정받았고, 러일전쟁 승리 후 포츠머스 조약(1905.9.5.)을 체결하여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시켰다. 이후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한다는 명목으로 을사늑약 체결을 강제한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조선으로 건너와 고종에게 조약 체결을 요구했지만, 고종이 이를 거절했다. 이에 일본은 군대를 앞세워 경운궁을 둘러싸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재차 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결국 총칼을 앞세운 일본의 무력과 을사오적(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으로 인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일본은 통감(統監)을 두고 조선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을사늑약 체결 직후 11월 22일에는 통감부 설치가 공표되었고, 12월 21일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에 임명되었다. 이후 1906년 3월 2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조선에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조선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소네 아라스케는 1907년 9월 21일에 부통감이 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보좌했고, 그가 추밀원 의장이 되어 통감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아 제2대 통감이 되었다. 소네 아라스케는 통감 시절에 내각총리대신인 이완용과 '한국은행 설립 협정서'(1909.7.24)와 '대한제국 사법 및 감옥 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기유각서, 1909.7.12.)를 체결하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갔다.

기유각서는 조선의 사법권을 일본에 넘긴다는 불평등 조약인데, 조선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 박탈, 제3차 한일협약(정미7조약, 1907.7.24.)으로 통감부의 통치권 강화, 기유각서로 사법권을 박탈당하면서 주권과 경찰권만 남아 식민지로 전락할 풍전등화의 상황에 이르렀다.

소네 아라스케는 병으로 인해 1910년 5월에 통감직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통감 부임 이후 얼마 되지 않은 1909년 9월에 치질과 신장병이 생겼고 병세가 악화되어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건강은 계속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건강 문제로 여러 차례 일본으로 귀국했다. 1910년 4월 초에는 건강 문제로 일시 귀국했다가 하루라도 빨리 귀임해 달라는 가쓰라 타로(桂太郎) 총리의 요청으로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조선에 돌아간 일도 있다. 이후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통감직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통증으로 혼절 상태에 빠지기도 하다가 1910년 9월 13일에 사망했다.

고서적 수집

소네 아라스케는 제2대 통감으로 조선을 통치하면서 다량의 고서적을 수집하여 일본으로 반출했다. 그가 왜 조선의 고서적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원래부터 고서적 수집에 관심이 있었을 수도 있고, 또는 부통감 재임 당시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자기 수집에 열중해서 소네 아라스케도 조선의 무언가를 수집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고서적이었을 수도 있다.

소네 아라스케가 조선의 고서적 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나 동기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수집한 고서적의 수량이 상당했다는 점은 아래의 <황성신문>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황성신문>, 1910년 5월 8일자 ⓒ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소네 통감이 부임 이래로 아국(我國) 고서를 수집함에 열중하였음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고 그 수가 2,000여 권에 달하는데, 일본 도쿄제국대학 교수 등은 연구 자료로 제공하겠다고 대여를 청구했다. 통감은 즉시 이를 허락하고 그중 필요한 것을 선택하여 고사촬요(攷事撮要), 목민심서(牧民心書), 광휘(光輝), 택리지(擇里志), 난여(爛餘) 등 1,050권을 지난 4월에 수거했는데, 일전의 전보에서 통감의 짐이 시모노세키(下関)에 도착했다가 가타세(片瀬)로 향했다고 한 일은 곧 이 책 일곱 상자라고 하더라.

위의 자료를 통해 소네 아라스케는 통감 부임 이후 무려 2,000여 권에 달하는 고서적을 수집했다는 점,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1,000여 권을 그의 별장이 있었던 가타세(현재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藤沢市>)로 고서적들을 보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조선에서 수집한 고서적의 일부는 위의 자료와 같이 도쿄대 교수들에게 제공하기도 하고 메이지 덴노에게 헌상하기도 했다. 1891년부터 약 20년 동안 조선에서 통역관을 하면서 조선의 고서적을 수집했던 마에마 교사쿠(前問恭作)는 <고선책보>(古鮮冊譜)에서 아래와 같이 소네본을 언급했다.

소네본은 소네 아라스케 자작(子爵)이 통감으로 재임할 때 수집한 것으로 이것은 그 양이 많지 않다. 사망 후 궁내성(宮内省)에 납입되어 현재 도서료(図書寮)에 현존한다.

도서료는 궁내성의 한 부국으로 덴노 관련 서적을 보관·관리하는 곳인데, 소네 아라스케가 당시 메이지 덴노에게 헌상한 조선의 고서적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네본의 목록 중에 <난여>라는 고서적이 있는데, <황성신문> 기사에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소네 아라스케는 조선에서 다량의 고서적을 수집해서 <난여>와 같은 것은 메이지 덴노에게 헌상하고 다른 것들은 도쿄대 교수들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고선책보>는 <흠흠신서>(欽欽新書), <성학집요>(聖學輯要), <정유각집>(貞蕤閣集), <삼서집의>(三書輯疑) 등 146책에 달하는 소네본의 목록도 수록하고 있다.

한편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조선고적조사사업을 담당했던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도 소네 아라스케가 조선의 고서적을 수집하고 있다는 일을 알고 있었다. 1909년 11월 24일, 야쓰이 세이이치는 당시 통감부 촉탁으로 조선의 유물을 조사하고 있던 세키노 타다시(関野貞)와 함께 통감부를 방문한다. 이때 소네 아라스케와 담소를 나누는데, 야쓰이 세이이치는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남겼다.

통감은 한국 예술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경주를 잘 알고 있어 소박한 어조로 거리낌 없이 담소를 나누셨습니다. (중략) 통감은 고서적에도 취미를 가지고 있어 근래 열심히 한국의 서적을 수집하고 계십니다.

위와 같은 자료들을 살펴봤을 때 소네 아라스케가 조선의 고서적을 열심히 수집하고 있던 모습은 당시 일본인에게도 조선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고, 그 수도 상당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한일회담의 문화재 반환 교섭에서 한국 측은 소네 아라스케가 수집한 고서적의 반환을 요청한다.

■ 참고문헌

정규홍, <우리 문화재 반출사>, 학연문화사, 2012.

前問恭作, <古鮮冊譜> 第1冊, 東洋文庫, 1944.

谷井濟一, '彙報 韓國葉書だより', <歷史地理> 第15券 4號, 1910.

<경남일보>, <신한민보>, <황성신문>

엄태봉 강원대학교 교수

엄태봉 교수는 문화재 반환 문제, 강제동원문제, 교과서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인식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한일 관계 전문가다. 역사인식문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 <교과서 문제는 왜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일본 '영토·주권 전시관'의 영토 문제 관련 홍보·전시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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