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며 5월 미국 물가상승률이 3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료값 상승이 아직 항공료 등 직접 연관 분야에 주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전쟁 장기화 땐 다른 부문으로의 파급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관련해 안이한 태도를 유지했다.
10일(이하 현지시간)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5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2% 상승해 2023년 4월(4.9%)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2월말 이란전 시작 뒤 3월 3.3%, 4월 3.8%에 이은 상승세가 지속됐다. 전쟁 시작 전인 2월 상승률은 2.4%였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달보단 0.5% 상승했다.
이번 상승은 주로 에너지 가격이 뛴 데서 기인해 이란 전쟁의 직접적 결과로 풀이된다. 5월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3.5%, 휘발유값은 40.5% 급등했다. 전월 대비로도 각 3.9%, 7% 올랐다. 노동통계국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 5월 물가상승분의 60% 이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연료값 상승은 여름 휴가철을 앞둔 상황에서 항공료 상승, 운송비 상승으로 인한 일부 신선 식품값 상승에도 영향을 미쳤다. 5월 항공료는 전년 동기 대비 26.7% 올랐고 지난달보다도 거의 3% 올랐다. 신선 채소 및 과일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7% 올랐고 특히 토마토값은 32%, 양상추값은 거의 25% 올랐다. 신선 생선 가격도 7.4% 상승했다.
다만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5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상승해 지난달 상승률(2.8%)에서 큰 변화가 없어 에너지값 충격이 물가 전반에 파급되진 않았다는 평가다. 5월 전달 대비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0.2%로 4월(0.4%)보다 상승폭을 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가 상승에 대한 안이한 태도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백악관에서 이날 발표된 인플레이션 수치 관련 우려가 있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 "없다. 수치는 훌륭했다"며 "난 인플레이션을 사랑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란 전쟁이 끝나면 물가상승률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휴전 위태·AI 관련 비용 급증 등 불안 요소 여전…"에너지 외 부문 파급 시간문제"
전문가들은 물가 불안 요소가 여전히 많다고 지적한다.
유가의 경우 최근 이어진 이란과 이스라엘 간 직접 공격, 이란과 미국 간 소규모 충돌 지속으로 이란 휴전 향방이 다시 불투명해지며 상승 압력이 지속 중이다. 이란 관영 프레스TV를 보면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는 11일 성명을 내 최근 미군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 폐쇄하겠다고 밝히고 모든 통행 시도 선박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 CNBC 방송을 보면 JP모건 프라이빗뱅크의 선임시장경제학자 조 세이들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현재 배럴당 90달러대인 유가가 몇 달 내 140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비료 등 식량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 공급도 차단됐는데, 이러한 영향도 아직 물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미 CNN 방송을 보면 회계·컨설팅기업 KPMG 수석경제학자 다이앤 스웡크는 "전쟁이 식량 가격에 미치는 완전한 영향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며 "비료 및 경유 가격, 작물 수확량 감소, 엘니뇨의 잠재적 영향 등 요인은 가을 수확기와 2027년에 이르러서야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캐나다 투자은행 BMO 캐피털마켓츠의 수석미국경제학자 스콧 앤더슨은 "에너지 가격이 빠르게 완화되지 않는다면 다른 상품 및 서비스 부문과 인플레이션 기대치에 더욱 뚜렷한 파급효과가 나타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관측했다.
이에 더해 <로이터>는 인공지능(AI) 관련 지출 급증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가격 또한 상승 중이지만 이들 부문이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에 반영되는 비중이 작다고 덧붙였다.
실질 소득 감소로 체감 고통은 더 커…연료통 못 채우고 '찔끔 주유'
물가 상승으로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체감 고통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10일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5월 전년 동기 대비 시간당 평균 실질 임금은 0.7% 하락했다. 4월에도 전년 대비 0.3% 하락했다. <로이터>를 보면 미 네이비페더럴 신용조합 수석경제학자 헤더 롱은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재정적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고 짚었다.
<AP> 통신은 휘발유값 상승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한 번 주유할 때 연료통을 완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전 발발 이후 연료값이 비교적 저렴한 코스트코 등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 주유소 이용이 늘어난 데 더해 한 번 주유할 때 일정 분량씩만 채운다는 것이다. 통신을 보면 코스트코 최고재무책임자(CFO) 게리 밀러칩은 지난달 말 소비자들이 "내일 휘발유값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연료통이 빌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더 빈번히 매장 내 주유소를 방문해 기름을 보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미시간대 조사에 따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44.8)는 석 달 연속 하락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금리 관련,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비교적 완만하다고 해도 이란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아 물가 압력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 중인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최근 고용 지표가 양호하게 발표돼 연준이 성장 및 고용 촉진을 위해 금리를 인하할 필요성이 줄었다.
미국 유권자들이 생활비 문제 처리 관련 트럼프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인플레이션 상승세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부담이 될 수 있다. 8일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생활비 관리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면 미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 에릭 고든 교수는 "트럼프는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인플레이션 문제로 공화당을 패배로 이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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