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그런데 전국 91곳에서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발생했다. 선관위의 무능과 준비부족이 불러온 참정권 침해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6.3 지방선거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결정한 자리였을까.
선거 기간 내내 언론과 사회의 이목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누가 승리할 것인지에 쏠렸다. 여기에 지역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 지역의 미래는 없었다. 후보들의 공약도 마찬가지다. 'AI, 반도체, 메가시티, 신공항 건설과 투자 유치'라는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후보들이 놀랍도록 비슷한 언어로 지역의 미래를 말했다. 지역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자본을 유치해 심폐소생을 해야 할 공간으로 등장했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건, 지난 30년 간 지방선거마다 반복되어 온 이야기이기 때문일 테다.
기업과 투자 유치 경쟁으로 전락한 지방선거
이제 지역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하다. 병원과 공공교통, 학교와 문화 체육시설 같은 생활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사라진 지역에서 주민들은 문화생활을 누리거나 배우는 일, 아플 때 치료받는 일, 이동하는 일조차 어려워진다는 '지역불평등'에 관한 보고서가 이미 즐비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5 대한민국 불평등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농촌은 의료기관과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한 데다 교통·거리 등 제약까지 겹치며 의료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디 사냐에 따라 기대수명이 10년 이상 차이난다는 조사는 이런 현실로부터 나온다. 그러는 사이 청년들은 대학 진학과 일자리, 생활 기반을 찾아 지역을 떠나고, 지역은 인구 유출과 고령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지방선거는 이러한 삶의 문제를 정치 의제로 올리는 자리여야 한다. 지역에서 무엇이 무너지고 있고 주민들이 어떤 부족과 불안을 겪고 있는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가 지방선거에서 제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지방선거는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의 필요와 요구는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제기되기보다, 주로 '무엇을 유치할 거냐'는 문제로 수렴된다.
이번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공약이 인구 감소, 청년 유출, 산업 쇠퇴를 문제로 제시하지만, 지역에서 살아갈 조건을 어떻게 다시 만들 거냐는 질문은 결국 '새로운 성장동력, 어떻게 돈을 벌거냐'는 목표로 수렴됐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AI·반도체·바이오·데이터센터 같은 첨단산업 육성이 핵심 전략으로 제시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메가시티와 행정통합, 초광역경제권 구상이 함께 등장하며 수도권과 겨루기 위해 규모를 키우겠다는 주장이 반복됐다. 신공항과 철도, 물류망 등의 인프라 확충은 지역민의 삶의 필요가 아닌 기업과 자본 유치를 위한 기반으로 제시되고, 기업 유치와 규제완화, 민간투자 확대가 최종목표가 되었다. 서로 다른 분야의 공약처럼 보이지만, 결국 지역을 사람들이 살아갈 공간이기 이전에 기업과 자본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거점으로 재편하려는 하나의 패키지처럼 작동하고 있다.
투자만 유치하면 지역은 살 만한 곳이 되는가
기업 유치와 투자 유치가 지역에 일자리와 활력을 가져올 해법처럼 이야기되지만, 지역의 어려움은 단순히 기업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지역의 위기는 자본과 산업이 어떤 기능을 어디에 배치해왔는지, 그 공간적 방식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포항·울산·창원·거제·여수·광양 같은 비수도권 산업도시의 생산직 일자리는 중앙정부의 산업정책과 대기업 중심 생산체제 속에서 형성되며 지역에 사람을 모으고 지역경제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다단계 하청 외주화,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거치며 지역경제는 재편됐다. 기업 본사, 연구개발 등 정규직 중심의 고임금 일자리는 수도권에 집중되고, 많은 지역은 중소영세 하청업체, 대규모 발전소와 물류창고, 폐기물 처리 장소들로 채워지며 더 많은 위험과 사회적 비용을 떠안게 되었다. 지역의 위기는 바로 이런 공간적 분할 속에서 만들어진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산업은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처럼 제시되지만, 반도체 산업이 지역에 가져오는 건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만이 아니다. 그 산업을 돌리기 위한 대규모 전력과 물, 이를 위한 송전망과 댐, 폐기물 처리의 부담이 함께 따라온다.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많은, 에너지 가격이 싼, 즉 송전 안 해도 되는 지역'으로 반도체 공장 배치 필요성을 이야기해왔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호남에 반도체 공장 설립을 검토한다고 한다. 하지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 막대한 자원 소비, 환경 파괴, 기업 특혜 구조가 그대로라면 그게 어디든 문제는 되풀이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들의 반대는 발전을 가로막는 '지역이기주의'라기보단, 대체 무엇을 위해 지역의 자원과 삶의 터전이 동원되어야 하는지 묻는 저항이다.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 반복되지만, 정작 그 일자리가 왜 사람들이 계속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 일자리가 되었는지 충분히 묻지 않는다. 지역의 산업단지와 영세 하청업체, 농어촌 노동, 사회서비스 노동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처우, 취약한 생활 기반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구조를 개선하기보다 지역 정주민이 떠난 자리를 계절 이주노동자나 지역특화형 비자로 메우려는 방식이 반복된다. 지역의 열악한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를 그대로 둔 채 그 조건을 감당할 사람만 새로 배치하는 식이다.
기업과 투자 유치를 지역의 해법이라고 말하려면, 단순히 투자액과 일자리 갯수가 아니라 그 산업이 지역의 노동을 어떤 조건으로 조직하는지, 공공서비스와 생활 기반을 강화하는지, 지역이 떠안는 비용과 위험에 대해 기업과 국가가 어떤 책임을 질지 물어야 한다. 그러한 질문 없이 반복되는 유치 전략은 그저 지역을 자본이 필요로 하는 기능에 맞춰 재배치할 뿐, 지역 주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무엇을 위한 '지역 권한 강화'인가
이재명 정부는 지역에 더 큰 권한과 규모를 부여해 스스로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5극3특, 초광역권, 행정통합 구상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과 재원을 지역으로 나누어 지역의 문제를 지역에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건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권한이 누구의 삶을 위해, 무엇을 위해 쓰이냐다. 지역의 자율성을 키우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내용이 '지역 경쟁력'이라는 명분 하에 기회발전특구와 같이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 인허가 신속화 등이라면 권한 이양은 지역 주민의 자기결정권이 아니다. 그저 자본이 더 낮은 비용과 더 적은 규제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지역 단위에서 마련하는 장치가 될 뿐이다.
특별자치도와 '규제자유특구'와 같은 각종 특구 정책에서 이미 그런 위험이 확인된다.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환경영향평가, 산림·농지 전용, 인허가 권한이 지역으로 넘어가더라도, 그 기준이 주민의 삶과 생태를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결국 개발을 더 빠르고 수월하게 밀어붙이는 도구가 된다. 그 과정에서 개발의 이익과 비용은 누구에게 돌아가고 주민들은 어떤 위험을 감당하는지, 지역의 공공서비스와 노동 등의 조건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리는 묻고 있나. 수도권 일극체제를 완화하겠다는 초광역권이 지역 '간' 불평등 뿐 아니라 지역 '내' 불평등을 자동으로 완화하는 것도 아니다. 투자는 같은 권역 안에서도 거점 도시와 특정 산업에 집중될 수 있고, 주변 중소도시와 농어촌은 오히려 인구와 자원을 빼앗기는 위치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권한의 '양'이 아니라 '방향'일 테다. 권한 강화가 지역정치의 전환점이 되려면, 그 권한은 자본을 유치하는 경쟁을 확대하며 기업이 활동하기에만 편하게 만드는 데 쓰일 게 아니라, 주민들이 어떤 위험을 거부할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보장받아야 하는지 '함께 결정하는 힘'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삶의 조건을 함께 정하고 조직하는 민주주의의 장으로서 '지역정치'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도 관심은 어김없이 같은 곳으로 모인다. 어느 당이 이겼는지, 이후 중앙 정치의 향방은 어떻게 바뀌는지 말이다. 지방선거인데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무엇이 무너지고 있고 주민들은 어떤 조건에서 살아가는지, 그래서 지역정치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는 사라진다. 지역의 위기는 투자 부족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고, 지역의 노동과 자원, 위험과 비용이 공간적으로 배치되어 온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방선거와 지역정치의 자리는, 누가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할 것인가를 겨루는 경쟁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조건을 어떻게 보장받아야 하는지 묻고 조직하는 데 있다.
제로섬 게임처럼 자원을 나눠 받기 위해 지역들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균형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누가 이 장소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 누가 이익을 누리고 누가 위험과 비용을 떠안는지 우리는 따져야 한다. 지역정치는 성장과 유치의 경쟁이 아닌 의료, 교통, 교육, 돌봄, 주거, 일자리를 중심에 놓고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권리를 조직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가 자본과 기업의 대리인 잔치가 아니라 이러한 정치의 장이 될 때 비로소 지역주민이 자신들의 삶을 조건을 함께 결정하고 민주주의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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