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2월 나주의 이주노동자 지게차 결박 사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자 명백한 인권유린"이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최근 화성에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에어건을 분사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며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또한 법무부는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을 발표하며 이민정책을 국가차원의 핵심전략으로 설정하고, 노동부는 '이주노동자 통합지원 로드맵' 수립에 착수했다.
이주노동자 인권 침해 사건은 여전히 반복되지만, 대통령이 앞장서며 정부 차원에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이주민 정책은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국가는 이주민이 '필요'하다
1990년대 이래, 이민정책은 주로 인력 수급 목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정주배제와 단기순환 원칙' 아래 시행돼왔다. 지금까지도 이 원칙은 큰 틀에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절벽이 현실이 되자 2010년대 말부터 이민정책은 기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민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범정부 계획인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23)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주민을 단순 노동력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흐름이 보인다. '국가와 함께 도약하는 이주민'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적극적으로 정주를 유도하거나 숙련 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로 계속되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위기감 속에서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인력 유치 경쟁에 새롭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반영해 2026년 3월 이재명 정부 첫 이민정책으로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이 발표되었다. '미래전략' 역시 이주민을 '단순 노동력 공급'으로 사고하는 도구적 관점을 과거 이민정책의 한계로 지적하면서, 이주민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이민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이민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의 가장 큰 차별점은 '적극적 정주 유도'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주민을 보는 관점은 정부 스스로 지적한 한계에서 벗어나 더이상 '도구적'이지 않은지 살펴보자.
'적극적 정주 유도' 정책에서 영주 요건 완화 혹은 정주를 보장하는 대상은 첨단 산업 분야의 석박사, 사회통합능력이 높은 유학생 또는 특정 지역·산업에 얼마간 거주·근속 등 조건이 붙은 노동자다. 이 정책은 일면 이주민이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한국 사회에 오래 남아 '기여'하길 바라는 국가의 노골적인 욕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마저도 자격에 따라 정주 조건을 확인받으며 체류기간을 갱신해야 하는데,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안정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다.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은 '어떻게', '누구와' 함께 살아갈지 고려하는 것을 핵심 전략으로 표방한다. 이는 결국 이주민을 선별하겠다는 말이다. 이에 각 산업과 지역의 필요 인력, 국가에 이익이 되는 유입 집단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제공하는 혜택을 줄줄이 제시하고 있다. 이민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주민의 인권보장이 아니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이주민을 선별해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에 가깝다.
삶을 조각내는 비자체계
이렇듯 포장만 바뀐 채 이주민을 수탈하는 정책은 현실에서 '비자체계'라는 제도의 힘을 통해 작동한다. 2026년 4월 기준 한국의 체류자격 비자는 37종, 세부 코드까지 센다면 무려 332종에 달한다. 비자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효용와 역할에 따라 수십 수백 개의 비자 코드로 이주민을 구분짓고 그들의 삶을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점이다. 비자제도는 단순한 행정 관리체계를 넘어 이주민이 어디에 살고, 어디서 일할 수 있는지, 가족과 살아도 되는지,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 등 가장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제한하고 조각낸다.
비자제도의 문제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 제한', '직업 선택의 자유 제한'이다. 고용허가제는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주민의 '노동'이 아닌 기업의 '고용'을 허가하고 있다. 주체가 기업인 제도에서 이주민은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사업장 변경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어 애초에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일터에서 일하다 임금체불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꼼짝없이 강제노동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참고 버티다 탈출하는 순간 그는 미등록 이주민이 되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대규모 유치 정책으로 급증하고 있는 유학생의 경우에도 아르바이트가 허용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다. 심지어 학업 성적이 떨어진 경우에는 불성실하다는 판단 하에 정해진 노동시간조차 허가받지 못한다. 그럴 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 취업을 감행하고 기본적인 노동조건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10월 단속반을 피해 숨어있다 사망한 유학생 뚜안 역시 구직 비자로 체류하고 있었지만, 해당 비자에서 허가받지 않은 업종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단속 대상이 되었다.
비자체계의 문제는 비단 노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결혼이민비자 역시 혼인 관계를 기반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가정폭력이나 가정불화가 있더라도 문제제기를 어렵게 한다. 비자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주민은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비용부담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합법'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정해놓은 지역과 일터, 그 밖의 세세하게 규정된 경계 밖으로 벗어날 수 없고, 만약 벗어난다면 이들은 즉각 '불법'적인 존재로 전환되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긴다. 이처럼 제도에 속하든 아니든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대통령이 이주민 인권을 아무리 강조해도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은 반복될 것이다.
당연한 차별은 없다
이렇게 정부 정책으로 '이주민 활용 전략'이 공표되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비자제도'가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보편적 시민권과 다른 '이주민의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정주민과 이주민의 차별적 위계를 더욱 고착화하고, 위계 속에서 차별과 혐오는 심화된다. 이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과 인권침해를 옹호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현재의 비자제도와 같은 이주민 관리통제 정책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거나 필요한 정책이라는 인식도 상당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차별은 없다. 빼앗겨도 되는 권리도 없다. 정부는 국가 질서 확립과 안전사회 보장을 위해 엄정하고 정교한 체류 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한다. 자유롭게 일하고 이동할 권리, 아프면 치료받고 쉴 수 있는 권리, 인권침해나 폭력을 감내하지 않을 권리를 제한하면서 지킬 수 있는 것은 질서와 안전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폭력과 차별 구조 뿐이다.
이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괘씸한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그들을 제도 밖으로 밀어낸 것이 누구인지, '불쌍한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이들에게 자행되는 폭력과 인권침해가 가능하게 한 구조가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누군가 이주민이기 때문에 기본권을 제한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라면 다른 누군가에 대한 차별도 또 다른 이유로 정당화될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평등과 존엄, 보편적 인권은 불가능하다.
보편적 권리를 위한 정책으로
정부는 단순 노동력이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이주민을 받아들이기 위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숙련 노동력'을 '활용'하는 전략과 이를 위한 '관리/통제'의 비자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이주민이 살아가고 있는 차별적 구조와 현실은 그대로인 채, 인권과 사회통합의 이름만 달고 이주민 유입 정책을 편다면 현실을 바꿔내기는커녕, 보편적 인권을 부정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정책이라면, '맞춤형'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권리를 제약하는 데에서 벗어난 것이라야 한다. 이주민을 위한 '지원'은 보편적 권리 주체로서 '이주민'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기 위한 지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민정책의 근본적 목표를 전환하는 이런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이주민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 조직될 때, 보편적 인권을 향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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