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을 간첩으로, 의원을 용공분자로, 김택수의 전방위 공안 행진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김택수, 유신에서 전두환까지, 공안정국을 설계한 검사의 두 얼굴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김택수(金澤洙, 1936~) 항목의 부제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보안사가 조작한 2차 모국유학생 간첩단사건의 이철, 이동석 담당 검사."

그리고 더 읽다 보면 이 한 줄로 끝날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 1986년 유성환 의원 통일국시 발언 사건, 1987년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 사건 은폐. 여기까지 읽으면 비로소 이 사람이 한국 현대사 공안 통치의 굵은 줄기마다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었는지가 보인다.

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구조가 선명하게 보인다. 공안권력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김택수는 그 시스템의 가장 핵심적인 부품 중 하나였다.

1936년 출생, 제1회 사법시험의 엘리트

김택수는 1936년 태어났다.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제1회 사법시험 동기로는 앞서 살펴본 김성남(1942~)이 있다. 이 기수에서 여러 명이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출발선이 같아도 어떤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기록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 기수는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세계사 속의 동류, 시스템의 충실한 부품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떠오른다. 소련의 로만 루덴코(Roman Rudenko, 1907~1981)다. 스탈린(1878~1953) 시대의 대숙청을 집행한 뒤 스탈린 사후에도 소련 검찰총장으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는 나중에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소련 측 수석 검사로 나치 전범들을 기소하기도 했다. 독재 권력의 공안 기구에서 핵심 역할을 하면서도 체제가 바뀌어도 살아남는 능력. 김택수는 박정희(1917~1979) 정권에서 전두환(1931~2021) 정권까지 두 독재를 관통하며 공안정국의 설계자로 활동했다.

미국의 에드거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 FBI 국장도 비슷한 구조다. 그는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부터 닉슨(Richard Nixon, 1913~1994)까지 여러 대통령 치하에서 살아남으며 반공을 명분으로 수많은 시민의 인권을 짓밟았다.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1975년 모국유학생 간첩단, 일본에서 온 유학생을 간첩으로

김택수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975년 재일한국인 모국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0년대 말부터 재일한국인 유학생들을 조직적으로 간첩으로 조작했다. 일본에서 공부하러 온 젊은이들이 귀국하자마자 중앙정보부나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간첩 혐의를 뒤집어썼다.

1975년 2차 모국유학생 간첩단사건에서 보안사가 조작한 이철, 이동석 등에 대한 수사를 김택수가 담당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의 기록을 보면 이 사건에 관여한 공안검사들의 명단이 즐비하다. 황진호, 서익원, 최명부, 김택수, 변갑규. 이들이 나누어 담당한 2심은 서동권(훗날 5공 검찰총장과 6공 안기부장)이 처리했다. 재일한국인 유학생들의 청춘을 갈아넣은 공안 카르텔의 면면이다.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함석헌·문익환에게 중형 구형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재야인사들이 3·1민주구국선언을 낭독했다. 함석헌(1901~1989), 문익환(1918~1994), 윤보선(1897~1990), 김대중(1924~2009) 등이 유신철폐와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예배당에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를 내란음모로 규정했다.

서울지검 공안부장 정치근의 지휘 아래 공안부 검사 황진호, 서익원, 최명부, 김택수가 이 사건을 나누어 담당했다. 이들의 수사를 통해 참여자 18명이 기소됐고, 항소심에서 함석헌, 윤보선, 문익환 등에게 징역 5년에서 8년이 선고됐다. 신앙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노인들에게 검사 김택수가 함께 날인한 공소장이 날아갔다.

1986년 유성환 의원 통일국시 발언, 국회 면책특권을 뭉갰다

김택수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헌법 구조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 있다. 1986년 유성환 국회의원(1935~) 통일국시 발언 사건이다. 유성환은 국회 본회의 발언 원고를 언론사에 배포했는데, 거기에 "반공이 아닌 통일이 국시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았다.

국회의원은 회기 중 국회에서 한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갖는다. 헌법 제45조가 명시한 권리다. 그러나 서울지검 공안1부장 김택수는 "발언 원고를 사전 배포했다"는 치졸한 구실로 면책특권을 비켜가며 유성환을 기소했다. 10월 17일 새벽 체포영장이 집행됐고 유성환은 구속됐다. 이 사건은 야당의 직선제 개헌 요구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권이 '색깔론'으로 역공을 편 것이었다. 김택수는 그 역공의 선봉에 섰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공안검사가 짓밟은 것이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에 관여하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졌다. 이 사건의 진상은 당초 경찰과 검찰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됐다.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실제로는 다섯 명이었는데 둘만 기소됐다. 이 은폐 공작에 서울지검 2차장검사 김택수가 관여했다고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기록한다.

박종철은 두 번 죽었다. 첫 번째는 남영동에서 물고문으로. 두 번째는 검찰의 은폐공작으로. 그 두 번째 죽음에 김택수의 이름이 있다.

대검 중수부장, 수서 비리 사건의 정치수사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관통하며 공안정국의 핵심에 있던 그는 6공 시절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다. 그리고 1991년 수서 택지 비리 사건을 맡았다. 그런데 이 수사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맞춘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권력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검찰은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했다. 공안이든 특수든, 칼끝은 항상 권력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의 에드거 후버는 1972년 현직에서 사망했다. 그가 남긴 비밀문서들이 나중에 공개되면서 그의 반인권적 행적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오늘날 영국에서 후버를 언급할 때는 반드시 그의 인권침해 행적을 함께 가르친다.

한국에서 김택수는 아직 생존해 있다. 3·1민주구국선언 관련자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유성환 의원 통일국시 발언사건이 정권의 색깔공세였음이 드러났지만, 김택수에 대한 공식적인 책임추궁은 없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1986년 10월 유성환 의원 체포영장이 새벽에 집행되던 장면을 떠올렸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공안검사의 궤변으로 뭉개던 그 문법이, 군화 발로 국회를 향하던 그 밤의 문법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김택수의 이름을 기록했다. 재일한국인 유학생을 간첩으로 만들고, 민주주의를 외친 노인들을 기소하고, 박종철의 죽음을 덮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짓밟은 검사의 이름을.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김택수 ⓒ<반헌법행위자열전> 제공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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