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면이 尹 계엄 꿈꾸게 했다? 김대중은 대체 왜 전두환을 사면했나

[프레시안 books]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

2024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화를 이뤘다고 자부했던 한국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계엄을 극복한 것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두환 사면이 윤석열로 하여금 감히 쿠데타를 상상하고 실현해볼 수 있게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2021년 창립한 국제포럼인 김대중평화회의가 최근 출간한 연구도서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을 공저한 김학노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24년 12월의 계엄령 사태는 김대중의 전두환 사면 행위를 오늘날 역사의 현장에 다시 불러왔다"며 "전두환을 사면하지 않고 제대로 처벌했다면 윤석열과 같은 쿠데타 기도나 그를 비호하는 세력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두환에 대한 사면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개인 김대중의 용서와 화해 행위는 그의 진심과 신념에 의한 것이었을지라도, 지도자 김대중의 공인으로서의 용서와 화해 행위는 그 의도의 순수성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게다가 김대중은 신념윤리뿐만 아니라 책임윤리 의식이 강한 지도자가 아니던가?"라며 당시 사면이 현 시점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전두환 사면에 대해 "광주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으로 과연 김대중이 말한 진정한 '한풀이'가 되었는가? 가해자가 과오를 인정하지도 진심으로 사과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만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의 한이 과연 해소되었는가? 이런 상태에서 용서와 화해를 요구할 수 있는가? 그래서, '새 출발'을 했는가?"등의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김대중은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전두환을 사면하는 데 동의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그는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면서 악에 대한 투쟁을 주장했다"라며 "그렇다면, 언제 화해하고 언제 싸워야 하는가? 김대중은 이에 대해 체계적이거나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면서도 두 가지 기준점을 제시했다.

▲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 김학노 , 최영태 , 양재진 , 박진경 , 김병로 , 남기정 , 박명림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지식산업사

그는 우선 책임윤리와 역사윤리 사이의 갈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김대중은 적과의 화해와 투쟁을 선택할 때 당대 현실에 대한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윤리와 함께 장대한 역사라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에 대한 영향을 중시하는 역사윤리 사이에서 갈등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짐작했다.

그는 "어쩌면 김대중은 개인으로서는 전두환을 용서하지 못했어도 공인 즉 지도자로서 전두환을 사면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를 느꼈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직면할 수 있는 거대 보수세력의 반격과 반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책임윤리 의식이 작동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렇다면 김대중이 전두환 신군부의 압박과 유혹을 거부하고 끝끝내 타협하지 않은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80년 사형 언도를 받아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 김대중은 전두환 측으로부터 협력하면 살려주겠다는 유혹을 받지만 결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타협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의 책임윤리 의식은 그의 역사윤리와의 균형 속에서 작동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하나의 기준점은 "상대방과의 헤게모니 관계에 대한 고려"인데 김 교수는 "김대중이 자신(의 세력)과 상대방(의 세력) 사이의 헤게모니 관계에 따라 상대방에 대해 상이한 자세를 가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상대방에 비해 열위에 있을 때는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 수립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했고, 자신이 상대방에 비해 우위에 있을 때는 상대방을 대등한 주체로서 대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용서와 화해의 입장을 가졌다는 게 잠정적 판단"이라고 전했다.

공저자인 최영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는 "김대중은 전두환‧노태우의 사면과 복권은 국가가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가해자를 정치적 용서, 즉 사면을 하지만 '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며 "역사적 평가를 중시했던 그는 아마도 전두환 노태우의 잘못은 법적 사면‧복권과 관계없이 역사 적으로 불명예를 계속 짊어지고 살게 될 것이라는 점도 의식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최 명예교수는 "김대중이 전두환을 대상으로 행한 용서 철학은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분명 위대한 실천이었다. 그렇지만 대통령 및 전직 대통령이라는 공인으로서 그가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게 사면‧복권의 범위를 넘어서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한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이었는지는 좀 더 냉정한 토론의 주제라고 본다"라며 김 전 대통령이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해 청와대에 초청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최 명예교수는 "'지도자의 정치적 관용'이 반민족‧반민주세력의 뿌리를 온존시킴으로써 이 들이 다시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짓밟고, 정의와 진리의 가치를 전도시키게 된다면 그것은 관용의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라며 "공인의 관용 특히, 최고 지도자의 과도한 관용은 자칫 역사와 현실의 진위, 정사표를 뒤바꿀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김대중이 전두환 등에 대해 사면‧복권 차원을 넘어서 전직 대통령으로 깍듯이 예우까지 한 행위는 재고되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최 명예교수는 "김대중의 용서, 화해와 통합 정신, 그리고 DJP 정치연합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 IMF 위기 등 국가 현안의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용서, 화해, 통합의 좋은 모델이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이제는 일반 국민까지 심리적 내란에 가까운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며 현재 한국 사회의 분열 양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 정치에서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교훈적 언어 이상의 대안이 요구된다"라며 개헌을 통한 대통령의 권한 분산,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 선거제도 개선을 통한 다당제 발달의 환경 조성 등 제도적인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화해와 통합' 정치가 민주 세력 내 화해와 통합 정치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과의 화해와 통합 정치, 지역 간 화해와 통합 정치, 대북 햇볕정책을 위한 국내 화해와 통합 등으로 나아갔다고 짚었다.

김 전 대통령의 화해와 통합은 전두환의 사면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갈등과 분열이 더욱 심해지는 한국 정치에서 김 전 대통령이 왜 이런 선택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인식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족적이 주는 무게감은 적지 않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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