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공해상에서 전해진 소식은 참담했다. 가자지구로부터 118해리 떨어진 공해 위에서 우리 국민이 포함된 구호선 '리나 알 나불시'호가 이스라엘 해군에 의해 강제 나포됐다. 이틀 전 선행 선박이 나포된 데 이어 가자지구로 향하던 한국인 평화활동가 전원이 이스라엘군에 억류된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마저 무시한 이와 같은 공해상의 무력 나포는 점령자의 오만이요, 명백한 전쟁범죄의 민낯이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국내의 시선은 쪼개졌다. 국민의힘과 일부 극우 세력은 평화활동가들을 향해 거친 비난과 조롱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이 "거기가 자기 땅이냐, 이스라엘 영해냐"라며 이스라엘의 점령을 '불법 침략'으로 규정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네타냐후 체포영장 집행 검토를 지시한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분노를 퍼붓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 "시각이 극렬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가 같다"며 공세를 편다.
그들의 극우적 본질에 기초한 배설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통령의 발언에 공감하는 이들 중에서도 "너무 무모했다", "왜 그런 위험한 선택을 했느냐", "국가에 부담을 주면서 왜 또 가려하는가"는 걱정과 질책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 두려움과 걱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생명이 걸린 문제 앞에서 안전과 국익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자로 향했던 그들을 쉽게 비난할 수가 없다.
30여 년 전, 중국 유학 시절 베이징대학에서 만났던 한 팔레스타인 친구가 떠오른다. 국비 장학생으로 와 있던 그는 멋진 수염을 가졌고 말수가 적었지만, 늘 깊은 상실의 슬픔을 품고 있었다. 그의 눈망울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 들었던 외조부의 망명 기억을 겹쳐보곤 했다. 나라를 잃고 중국으로 건너가야 했던 외조부의 이야기, 식민지와 독립전쟁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유랑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기억 말이다.
그래서 내게 팔레스타인은 뉴스 속 먼 나라의 국제분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얼굴로 먼저 남아 있다. 지금 그는 어디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이름 없는 숫자 속으로 사라졌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총과 미사일의 논리가 인간의 고통을 압도해버리는 이 시대에, 거대한 국제정치의 언어가 아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으로 이 글을 쓴다.
1. 죽음의 숫자들, 자위권이라는 거대한 거짓말
우선 숫자로 시작해보자. 그것이 가장 정직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엔 OCHA의 최신 보고서(2026년 4월 기준)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후 가자지구에서는 최소 72,315명이 사망했고 172,1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는 21,283명을 넘어선다. 아이 한 명이 평균 한 시간에 한 명꼴로 죽어간 셈이다. 1살 미만 영아 사망자 중 절반은 전쟁 중에 태어났다가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죽었다. 의료진 1,670명, 언론인 252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줄곧 '자위권'을 말하고, 미국은 이 논리를 지지하며 군사 지원을 이어왔다. 그러나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 무차별 폭격, 식량과 의약품의 고의적 차단은 결코 자위권이 아니다. 가자지구 사망자의 약 80%가 민간인이며, 여성과 어린이, 노인의 비율이 56%를 넘는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가려서 공격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것은 자위권이 아니라 무분별한 집단 응징이자 제노사이드(Genocide)다.
과거 이스라엘 병사가 임신부를 저격한 후 "One shot, two kills(한 발에 두 명)"라고 자랑하던 만행, "팔레스타인 아이를 죽이는 것은 미래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일"이라는 이 인종말살적 사고방식이 이스라엘 극우 정치를 이끌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자신들이 당한 것과 유사한 논리로 타인을 지우려 할 때, 비극은 극에 달한다.
전쟁 전 하루 평균 500대의 구호 트럭이 오가던 가자는 이제 유일한 생명선인 라파 국경마저 수시로 봉쇄당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인 110만 명이 '재앙적 수준'의 기근 상태에 있고, 5살 미만 아동 13만여 명이 급성 영양실조 위기에 처했다. 포탄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지만, 굶주림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인간을 파괴한다. 이것이 과연 군사 작전인가, 아니면 생존 불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인구를 제거하려는 잔혹한 책략인가.
2. 이중 기준의 국제사회와 늦게 도착한 '정상화'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전 이 전쟁의 성격을 판단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의 점령이 불법임을 판결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 및 반인도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유럽의 주요국(벨기에,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은 영장 집행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최근에는 네타냐후의 전용기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ICC 회원국 영공을 통과한 것을 두고 '체포 의무 방기'라는 국제적 비판이 들끓기도 했다.
심지어 네타냐후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트럼프마저도 최근 이란과의 합의 추진 과정에서 네타냐후와 격렬한 통화를 나누며 "전쟁을 빠르게 끝내라"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전 세계 여론과 사법기구, 심지어 동맹국인 미국마저 네타냐후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2026년 현재의 거대한 흐름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원칙대로 하라, 너무 많이 인내했다"며 ICC 체포영장 집행 검토를 지시한 것은 결코 '과격한 외교'가 아니다. 서방의 역사적 ICC 지지국들조차 푸틴에게는 서슬 퍼런 기준을 들이대고 네타냐후에게는 눈을 감는 이중성을 보일 때, 한국만큼은 강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제법적 의무와 상식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늦게 도착한 정상화'다.
오히려 "외교는 냉혹한 실무"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섞고, 우리 국민이 공해상에서 잡혀간 사태 앞에서도 대통령의 발언을 '선동'이라 깎아내리는 국민의힘의 시각이야말로 국제 정세를 읽는 나침반이 고장 났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3. 공모의 구조를 깨고 역사의 올바른 편으로
우리가 더 깊이 부끄러워하고 직시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 있다. 한국은 그동안 이 전쟁에서 결코 무고한 제3자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 이스라엘에 4,700만 달러어치의 탄약과 포탄을 팔아왔다. 이스라엘의 드론 기술과 AI 표적 시스템을 수입해 사용해왔으며, 가자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도 방산업체들과의 계약을 지속했다. 더욱이 지난 윤석열 정권 시절인 2024년 9월, 124개국이 찬성한 '이스라엘 불법 점령 종식' 유엔 결의안에 대한민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이스라엘의 무기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목숨을 비용으로 치르며 '전장 검증'을 거쳤고, 한국은 그 검증된 기술을 구매했다. 가자의 비극 뒤에는 우리의 군사·경제적 공모 구조가 끈적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권은 바뀌었고 이재명 정부는 이전과 다른 강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만으로는 오래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진정한 정상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실제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첫째,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 및 방산 계약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실전 검증이라는 미명 하에 학살의 기술을 공유하는 공범이 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둘째, 국제 무대에서 분명한 표결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세계가 '불법'이라 말하는 자리에서 더는 기권이라는 이름으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
셋째,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이유로 시민의 여권을 무효화하는 등의 부당한 조치를 전면 철회하고, 비폭력 인도주의 활동에 나선 시민들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결론 :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우리는 식민지배의 아픔을 경험했고, 독립을 위해 싸웠으며, 민주주의를 피로 쟁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억압이 무엇이고, 저항이 무엇이며, 연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국민이다. 가자로 향했던 구호 활동가들은 말한다. "일제 식민지배를 당했던 역사를 지닌 우리는 안다. 어떤 참혹한 상황에서도 끈기 있게 삶과 투쟁을 이어나가는 민중들이 결국 승리한다"고.
그들의 항해를 '무모한 민폐'로 치부하기 전에, 한 시간에 한 명씩 아이가 죽어가는 현장으로 식량과 의약품을 보내려 했던 숭고한 용기를 기억해야 한다. 공해상에서 우리 국민이 나포되고 불법 침략한 땅에서 국제법을 비웃는 이스라엘을 향해, 지금의 침묵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곧 학살의 공모다.
다시 숫자로 끝을 맺자.
72,315명의 사망자, 21,283명의 어린이, 1,009명의 영아.
이 숫자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대한민국은 과연 어느 편에 서 있는가. 포탄을 팔고 기술을 수입하며 결의안에서 침묵하는 나라인가, 아니면 불법 점령을 불법이라 부르고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빵을 건네는 손을 잡아주는 나라인가.
그 대답이, 2026년 오늘날 우리가 어떤 나라인지를 증명해줄 것이다. 네타냐후를 체포하라! 그리고 당장 전쟁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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