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특별 석방'한 이스라엘, 우리가 마주해야 할 불편한 청구서

[원동욱의 외교광장] 가자 구호선단, 두 청년, 그리고 한국의 불편한 공모

2026년 5월 21일, 청와대 브리핑은 이렇게 끝났다. "이스라엘 측이 우리 국민을 즉시 석방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환영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강한 어조로 이스라엘을 비판한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언론은 대통령의 '초강수'가 통했다고 보도했고, 그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두 개의 질문이 빠져 있다. 왜 그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그 배에 올랐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은 왜 그토록 신속하게, 그것도 한국인만을 '특별 대우'해서 돌려보냈는가? 이 두 질문을 함께 붙들지 않으면, 우리는 결과만 소비하고 구조는 계속 방치하게 된다.

첫 번째 질문: 그들은 왜 배에 올랐는가?

39개 나라, 426명의 활동가들이 항해에 나섰다. 식량과 의약품을 실은 선박 50여 척이 지중해를 건너 가자로 향했다.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나포를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출항에 나섰다. 한국인 평화활동가 김아현(활동명 해초, 28세)과 김동현(34세)도 그 배들 위에 있었다.

해초는 출항 직전 이렇게 말했다. "가자지구가 고립됐고, 그 위험한 곳에 사람이 있다는 건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다. 몸으로 존재하며 저항하는 일이 시스템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동현 군은 "이스라엘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긴급구호 인력과 언론인, 여성·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항해에 나설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들은 보도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나포된 한국인'은 외교 이슈가 되지만, '국제법 위반에 맞서 행동하는 시민'은 처리하기 불편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더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다. 외교부는 해초가 다시 가자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그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자국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 했다. 그러나 논리를 뒤집으면 다른 말이 된다. 국가가 여권을 빼앗아야 할 만큼, 이스라엘의 봉쇄는 폭력적이고 그곳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는 시민의 양심 행동을 막았고,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이유로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들이 탑승한 선박의 이름은 '리나 알 나불시(Lina Al-Nabulsi)'. 이는 과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망한 17세 여학생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이름을 달고 항해한 한국인 청년의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 작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진술'에 가깝다. 언론이 이 맥락을 삭제했을 때, 우리는 사건의 껍데기만 보게 된다.

일각에서는 "국가 망신", "무모한 돌출 행동"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정부가 여권까지 무효화하며 만류한 위험 지대로 걸어 들어간 행보가 행정적·사회적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의 무모해 보이는 항해는 대한민국 헌법의 가장 숭고한 정신과 닿아 있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은 우리 국민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 국민에게 '평화'와 '자유'란 단순히 한반도라는 물리적 국경 내에서만 누리는 이기적 가치가 아니다. 인류공영과 항구적 세계평화에 기여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의 안전과 행복도 영원히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헌법의 확고한 철학이다.

​가자지구의 고립과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인도적 현실 앞에서, 평화활동가 김아현(해초)과 김동현이 사선(死線)으로 향한 것은 바로 이 헌법적 가치를 온몸으로 실천한 '양심적 시민 불복종'이었다.

두 번째 질문: 이스라엘은 왜 한국인만 즉시 석방했는가?

나포 직후 벌어진 일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버젓히 영상을 공개했다. 아스돗 항구 구금시설에서 국제 활동가 약 430명이 양손이 묶인 채 대원들에게 끌려다니고 바닥에 엎드려 있거나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벤그비르 장관이란 작자는 억류자들 앞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펄럭이며 "이스라엘에 온 것을 환영한다.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는 즉각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 이탈리아 총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스라엘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영국 외무장관은 "완전히 경악했다"고 밝혔고,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했다. UN 사무총장 대변인도 즉각 석방과 적절한 대우를 촉구했다.

이 국제적 압박 속에서 이스라엘 측은 한국인을 석방하면서 "이번 사안이 한·이스라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이것은 외교적 언어지만, 그 함의는 뚜렷하다. 이스라엘에게 한국은 잃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것이다. 왜인가?

한국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귀한' 나라인지 숫자를 먼저 보자. UN 무역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2년) 동안 한국은 이스라엘에 약 4,700만 달러어치의 탄약·포탄 등 무기를 수출했다. 같은 기간 이스라엘로부터는 약 1억 5,300만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입했다. 공개 집계만 이 정도다.

문제는 이 거래의 시기와 맥락이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가자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7일 이후에도, 방위사업청은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과 4건, 엘빗 시스템즈와 2건, 엘타 시스템즈와 1건의 계약을 완료했다.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실이 국회에서 언급되자 당시 외교부 장관은 "제가 아는 한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거짓말이거나 직무유기이거나,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외교 행정이 아니다.

기업 차원의 협력은 더 깊다. KAI(한국항공우주산업)는 2021년 이스라엘의 엘빗시스템스와 차세대 무인항공기 업무협약을 맺었다. 정찰·표적식별·감시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내용이다. 한화는 이스라엘의 3대 군수기업 IAI·엘빗·라파엘과 모두 거래하고 있다. 한화디펜스는 엘빗과 협력해 전차 AS-21 레드백을 개발했고, 이를 호주와 동유럽에 수출했다.

이 협력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무기 산업의 특수성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의 최대 강점은 '전장에서 검증된 기술'이다. 그 전장이 어디인가? 바로 점령된 팔레스타인이다. 이스라엘의 드론 기술, AI 표적 산출 시스템, 스마트 장벽 기술은 가자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상대로 실전 테스트를 거쳐왔다. 한국은 그 '검증된' 결과물을 수입하고, 공동 개발하고, 제3국에 재수출했다. 팔레스타인은 이 구조에서 기술 실험의 끔찍한 무대였고, 그 실험 비용을 치른 것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차원이 있다. 2024년 9월, 유엔 총회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결정을 근거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12개월 내 종식」 결의안을 투표에 부쳤다. 181개국 중 124개국이 찬성했다. 반대는 이스라엘·미국 등 14개국뿐이었다. 당시 윤석열 정부는 43개 기권국 중 하나였다. 불법 점령을 불법이라고 말하는 데 한국은 침묵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한국은 포탄을 공급하고, 기술을 사가고, 국제 무대에서 편의적 침묵을 지켜주는 드문 나라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남은 과제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비인도적"이라 하고, ICC가 발부한 네타냐후 총리의 체포영장을 언급하며 "유럽은 자국 입국 시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도 판단해 보자"고 한 것은 분명 이전과 다른 진일보한 태도였다. 이스라엘도 그 무게를 읽었을 것이다. 신속한 석방에는 그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청와대는 "이스라엘 측이 우리 국민을 즉시 석방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통령이 "비인도적"이라 비판하는데 동시에 청외대가 "높이 평가"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공존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행동 자체가 비인도적이었다면, 그 비인도적 행동을 거둔 것을 칭찬할 이유는 없다. 이 양면적 발언은 한국이 이스라엘을 향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의 실질적 한계를 정부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그 한계는 구조적이다. 단순히 청와대 참모들의 정무적 미숙함이 아니다. 이는 철저히 관료 사회의 구조적 사대성과 현실 정치의 장벽에서 기인한다. ​"복잡하다”, "따로 검토하겠다”며 책임을 미루고 쩔쩔매는 풍경. 주권 국가의 외교안보라인이 자국민의 안위나 보편적 인권 규범보다 미국과 동맹국의 눈치, 그리고 침략국의 해명을 먼저 대변하려 하는 오랜 관료주의적 관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비겁함 너머에는 견고한 군사·경제적 공모 구조가 버티고 있다. 말로는 인권과 규범을 외치지만, 이스라엘 정권과 맺은 무기 거래 계약서는 단 한 줄도 수정되지 않았다. 국내 방산 대기업들이 맺은 차세대 드론 및 AI 표적 시스템 공동 개발 MOU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종식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결의안 앞에서도 한국은 기권과 침묵의 스탠스를 요지부동으로 유지하고 있다. 국민주권정부로의 전환이 이루어진지 1년이 넘어가는 현재에도 말이다.

​결국 외교적 언사가 견고한 군사·경제적 이권 구조를 균열 내지 못할 때, 정부의 그 어떤 강경 기류나 수사 역시 국내 정치용 ‘메아리’에 머물 뿐이다. 관료들의 관성적·사대주의적 방관을 혁파하고 실질적인 무기 거래의 공모 구조를 끊어내는 인적·구조적 쇄신이 따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외교는 이해관계에 따라 원칙을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껍데기 외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진짜 질문

이 사건의 핵심은 석방이 아니다. 두 가지 질문이다.

하나는, 왜 한국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여권이 무효화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스라엘 해군에 나포될 것을 알면서도 그 배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국가가 여권을 빼앗고, 외교부가 '안전'을 이유로 그들의 행동을 통제할 때, 그들은 오히려 국가가 지키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키러 간 것이다. 그 무언가는 인간의 존엄이고, 국제법이고, 한국이 스스로 말해온 헌법적 가치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한국인을 즉시 석방한 것이 순수한 외교 성과인가, 아니면 한국이 이스라엘에게 그만큼 '잃기 싫은 나라'이기 때문인가?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이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탄약을 납품하고, 드론 기술을 수입하고, 국제 결의에서 침묵하는 나라가, 그 모든 공모의 대가로 얻어낸 '신속 석방'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한국계 미국인 활동가인 조나단 승준 리(Jonathan Seungjun Lee, 또는 조나단 빅토르 리)는 출항 전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억압이 결국 우리 모두의 삶으로 밀려올 것임을 깨닫게 될 순간이 올 것입니다."

외교안보 관료들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질책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구조를 바꾸는 것이 되려면, 청와대의 "높이 평가"라는 말 대신 다음 행동이 따라와야 한다. 즉, 무기 거래의 전면 재검토, 국제 결의에서의 분명한 입장 표명, 그리고 팔레스타인 봉쇄를 뚫으러 간 시민을 범죄자 취급한 여권 무효화 조치에 대한 해명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면적 외교안보라인의 쇄신이다.

▲ 이타마르 벤 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부장관이 사회관계망서비스(X)의 본인 계정에 "이스라엘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올린 영상의 일부. 활동가들은 손이 케이블 타이에 묶이고 머리를 바닥쪽을 향한 채 무릎을 꿇고 있다. ⓒ벤 그비르 장관 X 갈무리

원동욱

원동욱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중국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현재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제대학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3대 한국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치와 외교, 미중 전략경쟁, 동아시아 질서를 연구하며, 주요 매체 기고와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활동을 통해 공공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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