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피해자'의 죽음, 참담하고 미안해…동조한 조국 등은 사과 필요하다"

[불온(不穩)한 이야기]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불온(不穩)'. 온당하지 않다는 뜻으로 사상이나 태도가 기득권 내지는 통치 권력, 고정관념,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격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이러한 성질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으나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불쏘시개가 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프레시안>은 그러한 '불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불온'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최근 시인 박진성 씨의 성폭력을 알린 김현진 씨가 세상을 떠났다. 김현진 씨는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벌어지던 2016년, 트위터(현 X)를 통해 과거 박진성에게 시를 배웠던 10대 시절을 언급하며 자신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7살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잘못을 인정며 사과문을 올렸던 박진성 씨는 어느 순간부터 무고함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김현진 씨를 무고 가해자로 몰아가며 그녀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했다. 이후 현진 씨는 피할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돈을 받기 위해 '억지 미투'를 제기했다는 것부터, 뜨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2019년에는 박진성 씨가 김현진 씨를 상대로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을 제기한 뒤, 조정 등을 통해 사건을 무마하는 게 일반적인 미투 가해자의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사라지기도 했다. 관련해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 등이 박 씨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현진 씨는 자신의 미투가 진실이었음을 굽히지 않고 법정 싸움을 이어나갔다. 민사소송에 대한 반소를 제기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박진성을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그 결과 박 씨는 징역 1년8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위해서는 7년이라는, 길고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쏟아진 온갖 2차 가해는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4년 전 유명시인에게 3000만원 소송 걸린 피해자가 찾아왔다)

"나는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나를 조각조각 내서 마음대로 말하던 사람들은 침묵하는 현실."

현진 씨가 박 씨의 실형 선고가 있은지 정확히 9일이 지난 2023년 11월17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녀의 말대로 법원 판결이 났지만 사과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되레 2차 가해를 했던 이들은 승승장구하는 모양새다. 조국 대표는 이번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다.

사실 '미투'를 밝히면 2차 가해가 늘 뒤따라온다. 박원순부터 안희정 등. 그것이 진실로 밝혀져도 이에 동조한 이들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분위기에는 미투를 혐오하고 무시하는, 더 깊이 들어가면 여성 운동을 혐오하는 정서도 크게 작용한다.

오랫동안 여성주의 연구와 활동을 해온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지금이라도 조국 등은 김현진 씨에게 사과하면 좋겠다"고 했다. "화살을 날린 이들이 여전히 (사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적어도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는 이유였다.

권김현영 소장은 그러면서 '2차 가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차 가해라는 익명성에 실제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이 숨는 식이 되기에 2차 가해를 행한 이들 하나하나의 행위와 목소리를 따지고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미투에서 2차 가해는 왜 반복되는지, 미투는 현재 왜 정체됐는지, 그리고 미투 운동이나 여성 운동을 일부 세력들에서는 왜 폄하하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등을 권김현영 소장에게 물어보았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 권김현영 소장. ⓒ프레시안(허환주)

"가해자가 정의롭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2차 가해는 더 심각해진다"

프레시안 : 박진성 씨의 문단 내 성폭력을 폭로한 김현진 씨가 2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박진성 시인은 피해자 김현진 씨의 폭로를 '허위 미투'로 일관하며 2차 가해를 벌여왔다. 박 씨는 현진 씨의 미투 폭로 3년이 지난 2019년 3월, 자신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건 허위 폭로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고인이 돈을 노리고 '허위 미투'를 했다면서, 고인의 주민등록증과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보통 미투가 터지면 이런 식의 논리로 가해자들은 자신을 방어하는 듯하다.

권김현영 : 일단 그동안의 '미투 운동'을 되짚어 보자. 보통 폭로되는 가해자는 유명하거나 권력이 있는 반면 피해자는 유명하지 않다. 공동체 안에 있었던 시간도 적고 권력도 덜 갖고 있는 사람이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투가 폭로되면 가장 먼저 '피해자가 미투를 이용해 이름을 얻으려고 한다', '돈을 얻으려고 한다' 등 여러 차원으로 피해자의 미투 의도를 의심한다. 이는 유명한 가해자에 대한 폭로가 있을 때 늘 따라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를 잘 활용한다.

프레시안 : 미투가 터지면 가해자는 그런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기 위해 우선 발뺌하고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식인듯 하다.

권김현영 : 공동체 내에서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렇기에 미투를 폭로 당한 가해자가 도덕적이고 정의롭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2차 가해는 심각해진다. 미투는 그 사람들의 그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세상의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인물이 사실은 문제가 있다고 폭로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문제가 있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거꾸로 그 사람의 문제를 이야기한 사람(피해자)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생각을 수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계는 유지된다.

그렇기에 소위 진보 진영 내 좋은 가치나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가해자일 때 2차 가해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보수 진영에서 나왔던 사건을 생각해 보라. 2차 가해가 거의 없었다. 가해자가 평소 정의로움을 주장했던 사람일 때 피해자가 더 사회적 신뢰 자원을 얻기 어려워서 그렇다.

프레시안 : 폭로 이후, 2차 가해가 매우 심각하지 않나. 이를 감내하고서까지 유명해진다든가, 돈을 받아내겠다고 생각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권김현영 : 그렇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피해 고발은 항상 피해자에게 큰 리스크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말하게 되었는가가 중요하다. 왜 미투운동이 그토록 광범위하게 가능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투는 말 그대로 'me too'로 집단적 이어 말하기다. '저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했어'가 아닌 '나도 그랬어'라는 마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문법이 가진 힘은 '저 사람이 어땠어'라고 폭로하는 게 아니라 '이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화야, 그리고 나도 그것의 일부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투를 말하는 여성들과 연대하는 게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미투를 법정으로 가져간 가해자들, 자신 있으면 법정으로 오라는 식"

프레시안 : 2018년 서지현 씨, 그리고 김지은 씨로 이어지는 미투 흐름에 여러 다양한 공동체 내 여성들이 나섰다. 그때 누군가를 폭로하기 위해서가 아닌 앞서 미투를 한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나섰다는 게 본질 아닌가 싶다.

권김현영 : 그때 굉장히 거대한 흐름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너가 말하면 나도 말할 수 있어, 그리고 이런 일이 이렇게 많이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돼'. 그리고 이렇게 많은 미투가 쏟아지다 보니 '내가 거짓말이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지' 그런 용기를 만들어 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순진했다고만 이야기할 수 없는 게 정말로 세상이 다 바뀔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어느 순간 탁 막혔다. 앞서 이야기했던 2차 가해 때문이다. 미투를 하려면 피해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가게 됐다.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는 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느낌이었다.

권김현영 : 2018년, 2019년까지만 해도 미투 운동의 힘은 매우 강력했다. 이전부터 만연했던 문제들, 내부에서 쉬쉬했던 일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고, 대다수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더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가해자들도 이를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폭로된 중요한 미투 사건 대부분이 개별 법정 싸움으로 넘어갔다.

프레시안 : 상당수가 가해자들이 무고 내지는 명예훼손으로 피해자들을 고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권김현영 : 피해자들이 바란건 가해자들이 소속된 공동체 내에서 이전과 같은 권력을 더는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리고 피해자들이 소속된 곳이 더 나아지는 것이었다. 00내 성폭력, 00내 여성혐오 등이 미투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이유다. 그런데 이를 법정으로 데려간 것은 가해자들이다. 자신 있으면 법정으로 오라는 식이었다.

프레시안 : 법정 싸움은 쉽지 않다. 증거가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나. 미투의 경우, 증거를 가지고 있기 쉽지 않다.

권김현영 : 법이라는 게 피해자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가해자들은 잘 알고 있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유죄인 나라다. 피해자들은 이미 사실을 적시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죄다.

중요한 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한 뒤,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게 미투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를 개별 사건으로 가지고 가면서 어떤 증거가 있고, 어떤 말이 오갔는지 등을 따지는 과거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렇게 미래를 만드는 쪽으로 가지 못하고 법정으로 가면서 미투운동이 만들어내고자 한 공동체, 그리고 사회의 변화로 나가지 못했다.

프레시안 : 박진성 씨는 김현진 씨의 폭로 7년 만인 2023년 법원에서 징역 1년8개월 실형을 확정받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김현진 씨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뒤, 되레 무고범으로 낙인찍힌 채 7년 동안 살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재판 기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권김현영 : 가해자가 진보 진영에 굉장히 유명한 이름값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그 그룹까지도 피해자는 상대해야 한다. 이들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건 선을 넘을 때가 많다.

▲ 지난 2019년 6월 28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상고심 유죄 확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과하지 않는 2차 가해자들, 지지자들이 사과하라고 했으면 사과했을 것"

프레시안 : 박진성의 경우는 사실 미투가 터지기 전에는 누군지도 몰랐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건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권김현영 : 박진성의 경우는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등단한 시인이었고 시 수업의 선생이었다는 위치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스스로 약자임을 내세움으로써 그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적 가치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프레임으로 위력 성폭력에 대한 집단 고발의 장이었던 미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즉 진보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투 운동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포지션을 만들었다.

프레시안 : 박진성 아버지가 박진성이 죽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는 또 다른 2차 가해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권김현영 : 사실 때로 '2차 가해'라는 말은 사건 자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다지 효과적인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자살 협박'이라고 불러야 더 쉽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상대를 통제하기 위해 자살 협박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폭력이다. '네가 나를 만나주지 않으면 나는 죽어버리겠다'는 식이다.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인계하고 '너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에 책임을 져라'는 공포심을 주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렇게 해서 자기 의도대로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통제하는 수단으로 '자살 협박'을 사용하는 듯하다. 또한 그런 '자살 협박'은 김현진 씨에 대한 공격으로도 이어졌다. 일명 '좌표찍기' 수단으로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권김현영 : 이에 동조한 이들은 김현진 씨를, 약자를 공격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박진성을 지키는 게 약자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전도 현상이다.

프레시안 : 김현진 씨의 부고 소식에 곧바로 페이스북에 '박진성 씨의 거짓 부고에 늘 긴급하게 응답했던 이들도 일말의 양심이 남았다면 최소한 고인의 명복을 비시길'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쓴 이유를 묻고 싶다.

권김현영 : 김현진 씨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참담했고 미안했다. 우리 사회의 어떤 오래된 문제들을 고발한 젊은이들인데 거꾸로 사회가 상처를 줬고 그 결과가 이렇게 됐다. 그런 그들에게 화살을 날린,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름을 부르고 싶었으나 너무 분노를 내세우는 것 같아 쓰진 않았다. 그래도 그냥 애도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사과할 사람들이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고 싶었다. (권김현영 소장은 1일자 한겨레 칼럼에서 이 내용을 다뤘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조국의 사과를 요구한다 [권김현영의 사건 이후])

프레시안 : 왜 그들은 사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권김현영 : 그들 주변에는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자기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그들의 지지자들이 '당신이 사과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면 사과할 것이다. 그들의 지지자들이 사과를 요구하지 않기에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뭉뚱그려 '2차 가해'라고 하면 익명성 뒤에 숨는다"

프레시안 : 아까 2차 가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며 이 단어가 납작하게 쓰이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권김현영 : 2차 가해를 하는 이들이 한 100명 쯤 된다고 치자. 그 사람들을 2차 가해자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각자가 행한 2차 가해 행위를 하나씩 모두 지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2차 가해라는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다. 2차 가해라는 말이 범용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사용해서 그 말 자체가 가지는 힘이 그다지 없다고 생각한다. 가해 사실의 정확한 내용이 가려지는 효과가 있다.

프레시안 : 그렇게 하려면 무척 부지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김현진 씨가 겪은 2차 가해를 다른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나.

권김현영 : '미투 이후의 사회정의'로 이야기하면 어떨까 한다. '미투 이후 가해자를 고발하고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자기 얼굴까지 다 드러냈던 피해자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는데 (2차 가해자들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이 부정의는 어떻게 용인되는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야한다. 2차 가해란 말로는 아무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프레시안 : 하나씩 가해 사실을 짚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누군가 미투를 했을 때, 그에 대한 진위를 묻는 것조차도 2차 가해라는 주장도 있다. 피해자의 주장이 진실인지 알기 위해서는 질문을 던져야 하고 주장에 대한 검증도 필요한데, 관련 내용을 묻는 순간 2차 가해를 했다는 식으로 몰리는 경우도 많다.

권김현영 : 그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토론해야 할 이야기와 사실 확인을 통해 밝혀져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모두 2차 가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조사 자체를 하지 않게 하려 종종 가해자와 그의 지지자들도 성폭력 공론화 이후의 조사 자체가 2차 가해라고 하는 경우도 봤다.

▲ 2018년 11월,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열린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 의미 되살리기 위해서는 'OO 내 성폭력' 개념이 다시 나와야 된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남녀 평등을 주장하면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이 현실화 된 게 대학교에서 총여학생회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일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권김현영 : 관련해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2000년 중반 쯤에는 대학에 학생회가 남아 있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로 대부분 학생회를 비운동권이 차지하거나 비대위 체제로 운영됐다. 학생회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식으로 치부됐고, 목소리를 내면 탄핵당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총여학생회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학생회 자체가 망가졌다고 봐야 한다. 그러던 것이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이후, 거기에서 촛불을 들었던 여중생, 여고생들이 대거 대학교로 들어오면서 학생회에 새로운 활력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이 대중화됐을 때 총여학생회를 재건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요는 총여학생회가 최근 없어진 게 아니고 재건하겠다고 나선 새로운 주체들의 활동이 백래시로 막힌 것이다. 그 논리의 중심에 민주주의가 다양성과 다원주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다수결에 의한 지배 정도로 생각되고 활용되어 온 부분이 있다. 크게 보면 양당제 하의 정치적 독점 구조가 지속된 결과라고 본다.

프레시안 : 지금의 상황을 총여학생회가 사라지는 과정이 아닌, 새로운 그룹이 기존에 없어진 학생회, 즉 총여학생회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권김현영 : 지금의 흐름은 그러한 지속성의 과정이다. 하지만 조금 움츠러든 상황이긴 하다. 작년 광장에서 탄핵을 외친 이들의 상당수는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탄핵 이후 이들에 대한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지금의 정치적 기회 구조가 기본적으로 기득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응원봉이라고 상찬한 다음 응원단에 머무르게 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한 번 나온 목소리들이 다시 입을 닫지는 않는다고 본다. 한 번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절대로 목소리를 내기 이전으로 못 돌아간다.

프레시안 : 그렇다 해도 현재 미투 운동은 지지부진한 면이 있다.

권김현영 : 미투 운동이 소멸 됐다고 보지 않는다. 2018년 미투 이후 2020년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2~3년 동안 모든 게 정지됐다. 그 공백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연장선에서의 질문이다. 여성 운동이 고립되고 위축됐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어떻게 깰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권김현영 : 우선 미투 운동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OO 내 성폭력' 개념이 다시 나와야 된다. 문단 내, 영화계 내, 검찰 내, 언론계 내 등. 미투의 핵심은 공통된 경험이다. 개인 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공동체 내의,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문화를 사라지게 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여성운동만이 아니라 여러 운동이 고립됐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혐오가 크다. 이 혐오가 쉽게 발현되는 이유는 타자화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람과 개별적 관계를 맺으면 타자화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탈북자와 난민들도 들어와서, 즉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신으로서 사회에서 서로를 만나 관계를 맺는다면 혐오가 강해지지 않는다.

여성운동도 마찬가지다. 87년 이후의 시민사회운동이 국가를 향해서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운동이었다면 지금의 시민사회운동은 다시 사회를 재건하고 만드는 운동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탄핵 광장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남태령에서처럼, 자기 자신으로서 사회에서 함께 연결되는 경험이 우리가 계엄 이후 만나야 할 다음 단계의 민주주의가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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