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이 '남자친구와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냐', '팬티는 회색이냐', '여자는 살집이 좀 있고 나와야 할 곳이 나온 여자가 좋다' 하더니 새벽에 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전화, 문자가 와서 차단한 적이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볼에다가 뽀뽀를 한 제작사 대표가 아직도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나이도 어리고 막내 작가였기 때문에 여기서 경찰에 신고하는 등 나서면 소문이 나고 잘릴 수도 있을까봐 말을 하지 못하고 넘어갔습니다."
"드라마 보조출연 감독이 추가된 씬에서 보조 출연자분이 저를 안아야 하는 씬이 생기자, 연기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저를 껴안았습니다."
방송·미디어업계 종사자 10명 중 8명이 업무현장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피해자 과반은 신고해도 징계나 사과 등 사후 조치가 없었다고 답했다.
방송 노동인권 단체 '엔딩크레딧'은 지난달 3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방송·미디어 노동 현장 내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지난 2월 11일부터 3월 31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로 진행됐으며, 총 106명의 방송업계 종사자가 참여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자신이 직접 겪은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중복 응답)으로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와 평가(48.9%)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36.7%),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22.2%), 사적 만남을 강요하는 행위(18.9%), 성적 사실관계를 묻거나 관련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15.6%), 성적 관계를 요구하는 행위(11.1%) 순이었다.
성폭력이 발생한 장소는 '회식 장소'가 56.5%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방송·미디어 제작 현장 내 개방된 장소'가 54.8%로 비슷한 응답률을 기록했으며, 자차와 택시, 촬영 현장 숙소에서 피해를 겪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사후 대응 유형으로는 '참고 넘어감'이 59.7%로 가장 높았다. 참고 넘어간 이유(중복 응답)는 '고용형태 등 신분상의 열악한 위치 때문'이라는 응답이 90%으로 가장 높았다. '소문·평판 등의 두려움 때문'은 70.0%, '문제제기를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는 66.7%였다.
성폭력 가해자가 받은 사후 조치를 묻는 항목에서는 '없었다'가 63.3%로 가장 많았다. 정직, 감봉, 해고 등 가해자에 대한 공식 징계는 16.7%로 나타났다.
성폭력 발생 원인(중복 응답)을 묻는 질문에는 '성폭력 행위자가 지닌 권력관계'가 71.2%로 가장 많이 지목됐다. 이어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조직 문화'가 63.6%,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고용상의 불안'(62.1%), '방송·미디어계 인적 네트워크의 폐쇄성'(53.0%) 순이었다.
성폭력 사안에 대해 적절한 사후 조치를 위한 방안으로는 '성폭력 행위자 징계 등 처벌 강화'가 78.8%로 가장 높았고 '성폭력 발생 시 사업주의 조치 의무에 관한 규정을 프리랜서, 외주 제작 종사자들에게 확대 적용(63.6%), 성폭력 등 인권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노동조합 (53.0%) 등이 뒤를 이었다.
엔딩크레딧은 "방송·미디어 산업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의 상당수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과 수직적인 위계 구조에 기인한다"며 "산업 내부에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깊게 인식하고 많은 고민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수십 년째 제대로 된 움직임에 나서지 않아 체념하거나 참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정부는 물론 각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그리고 방송·미디어 플랫폼은 그저 자본의 비용 지출과 책임 회피를 위해 노동자를 압박하고 권리 행사에도 무수한 제약을 끼치는 왜곡된 고용 구조를 해소하는 움직임에 나서고, 낮은 수준으로 정체된 성인지감수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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