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이 뭐냐고요? 아파도 연약해져도 죽지 않을 수 있는 것"

[서리풀연구通]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2024년 증가세를 기록했던 자살률은 2025년 들어 감소세를 보였다. 이재명 정부는 자살사망자 감소 추세를 굳힌다는 목표로 자살사망자 1000명 감축을 위한 '천명지킴 프로젝트'에 나섰다. 그러나 이 정책은 생명 존중 문화, 고위험군 식별, 상담 인프라 확충 등 기존의 개인위험요인 접근의 연장선에 있다. 20년 이상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자살률을 되돌리려면 자살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특히 당사자의 경험에 기반한 이해를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까? 오늘은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존중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한국 청년 여성 자살에 대한 과정-관계적 접근).

이 연구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약 15개월에 걸친 현지조사와 한국 20-30대 여성 26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자살 생각·계획·시도 경험을 분석한다. 자살을 개별적인 위험요인이나 그 단순한 합으로 설명하는 기존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자살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저자가 제시하는 "과정-관계적 접근"은, 한 개인의 자살(계획 및 시도 경험)은 그가 살아온 경험의 축적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우울증, 실업, 트라우마 등과 같은 측정 가능한 변수의 결과로 자살을 보는 대신, 그 경험들이 어떻게 살아지고 해석되며 점차 더 큰 구조적 조건의 일부로 이해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주류 의학 및 공중보건 접근이 복잡한 인간 경험을 주로 개별적이고 계량 가능한 요소로 환원해왔다고 비판한다. 사회적 요인이 고려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측정된 변수로만 다루다 보면, 개인이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의미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놓치게 된다. 이에 반해 과정-관계적 접근은 시간성과 관계성에 주목하는 방법을 취한다. 반복되는 어려움이 어떻게 쌓이고, 그 누적된 경험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고통을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재해석해 가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과정적 측면에서 보면, 자살은 특정 사건 하나 혹은 몇 가지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라 일상의 어려움과 좌절이 반복되고 쌓이면서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이 과정은 직선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경험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복합적으로 얽혀든다. 관계적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 고통은 가족이나 친구 같은 대인관계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사회 전체와 자신 간의 관계 속에서, 즉 사회 안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논문이 특히 주목하는 지점은, 연구 참여자들이 자신의 누적된 경험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점차 그것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나 정상성 규범 같은 사회 구조와 연결된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배제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다다르게 된 사회구조적 요인은 무엇일까? 연구 참여자들의 이야기에서는 두 가지 핵심적인 구조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하나는 가족, 노동시장, 일상적 상호작용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여성의 경험을 제한하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규범과 환경이다. 다른 하나는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결혼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삶의 경로에 대한 강한 사회적 기대다. 이 경로에서 벗어나거나 충족하지 못하는 여성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사회적 인정에서 밀려나기 쉬웠다. 이러한 요소들이 겹치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절망과 희망 없음이 형성되었다.

논문에서는 지우, 윤지, 현진(모두 가명) 세 청년 여성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자살 계획 및 시도 경험이 오랜 누적과 해석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 사람은 가정폭력, 경제적 불안정, 따돌림, 차별, 사회적 배제 등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들을 잇는 공통점은 특정 사건이나 요인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이 더 깊은 구조적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서서히 자리 잡으면서, 자신이 사회에서 저평가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 중 지우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터뷰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지우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서 자랐다. 단순한 갈등 수준이 아닌 신체적·언어적 폭행과 생명 위협을 포함한 지속적인 학대였다. 그러나 가족이나 경찰 등 외부의 개입은 부재하다시피 했고 그들의 문제는 그저 한 가족의 개인사로 취급되었다. 어머니도 경제적 이유로 신고를 막았다. 이는 지우가 어린 나이에 극심한 무력감과 고립감을 느끼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되었고, 청소년기부터 자살을 생각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20대 중반, 지우는 결국 가족과 완전히 연을 끊고 "탈가정"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독립이 아닌 만성적인 폭력적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대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가족을 떠난 뒤에도 지우의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초년생으로서 경제적 불안정,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 혼자서 생계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이어졌다. 또한 청년 여성으로 살아가며 다양한 부당함을 맞닥뜨렸다. 일부 구인 광고에서는 여성 지원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부적절한 조건을 내거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경험들은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경험이 겹치면서 그녀의 삶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우의 인식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자신의 어려움을 개인적인 불운이나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이해했지만, 점차 그것이 가부장제와 사회 구조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 사회에서의 불안정한 위치, 여성으로서 겪어온 차별들이 하나의 맥락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와 국가에 대한 신뢰는 점점 흐릿해졌고, 결국 "국가는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데 관심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지우: 사실 (제가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는) 그거에요. 저는 존엄하고 싶은 거. 죽는 거는 존엄하고 싶어요. (...) 내 삶을 존엄하게 지속시키기 위해 죽고 싶다는 거죠.

저자: (...) 존엄한 상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우: 아파도 연약해져도 죽지 않을 수 있는 거. 내가 연약한 상태에 처해져도 뭔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거. 사회적인 안전망이 있는 거.

지우의 자살생각 및 계획은 이러한 인식의 변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어느 특정한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 아니라, 오랜 시간 경험이 쌓이고 그것이 사회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해가 깊어지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그녀에게 자살은 단순한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에서는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하나의 결론에 가까웠다.

만약 지우의 사례를 기존의 방식, 즉 측정 가능한 위험요인을 식별하는 방식으로 분석한다면, 그녀의 경험은 가정폭력, 탈가정, 불안정 고용, 낮은 가족 지지, 소속감 부재 등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우는 자신의 자살생각 및 계획을 어느 특정한 요인, 사건이나 그것의 합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별개처럼 보이는 사건들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가부장적 환경을 드러내는 일련의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그 경험들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와 국가에 대한 좌절과 절망이 켜켜이 쌓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 논문은 자살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만든다. 청년 여성들에게 자살이라는 문제는 단순한 충동이나 "정신적 문제"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이 사회로부터 존엄과 인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과 깊이 맞닿아 있다. 이런 점에서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오랜 시간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단편적인 원인들의 결과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고통과 사회 속 위치를 이해해 가는 더 넓은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이 논문이 제시하는 관점은 자살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학문적으로는 삶의 경험과 긴 시간성, 개인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개인에 대한 개입을 넘어, 가부장제나 경직된 사회 규범 같은 구조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삶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그 삶에 대한 일종의 '존중'을 다른 방식으로 표하는 일이며, 나아가 자살을 이해하는 시야도 더욱 넓혀줄 것이다.

* 서지정보

Kwon, Jung Eun. "Living in a World Without Respect: A Processual-Relational Approach to Young Women's Suicide in South Korea." Culture, Medicine, and Psychiatry. 50(1) (2026): 8.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처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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