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오제도', 반공법으로 영화, 소설, 시, 신문기사를 다 잡은 검사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박종연, 판사까지 협박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국장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박종연(朴宗演, 1927~) 항목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당시 재야와 학생운동권에서 그를 "제2의 오제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오제도. 재판소 서기 출신으로 옆문으로 검사가 된 뒤 이승만 정권에서 반공 사냥개 노릇을 한 인물이다. 그 사람의 이름이 수식어로 붙을 만큼, 박종연은 반공법을 무기로 삼아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들였다.

그런데 이 '제2의 오제도'가 말년에 목사가 됐다고 한다. 오제도도, 박종연도. 이 나라의 공안 검사 퇴직 후 진로에서 법조계와 종교계가 점차 교대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무튼 이 글은 목사 박종연이 아니라 검사 박종연의 이야기다.

34세 늦깎이 검사, 콤플렉스가 맹목적 충성을 낳다

박종연은 1927년 12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성장과정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을 때 그의 나이 34세였다. 1963년 36세에 서울지검에서 검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검사들의 세계에서 나이는 중요하다. 고시 기수와 임관 나이가 출세의 사다리를 결정한다. 박종연은 두 가지 모두에서 출발이 늦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점을 주목한다.

"나이와 학벌에 약점을 느낀 박종연은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종연이 10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서울지검 공안부와 중앙정보부에서만 근무한 것도, 그가 담당한 시국사건에서 보여준 저돌성도, 이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인물을 단순히 악인으로 규정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개인의 야망과 공포가 어떻게 체제의 폭력에 기여하는지를 박종연은 몸으로 보여주었다. 영국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악의 평범성"을 생각할 때마다 박종연 같은 인물이 떠오른다.

세계사 속의 동류, 이념을 무기로 삼은 법률 기술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의 인물이 떠오른다. 미국의 로이 콘(Roy Cohn, 1927~1986)이다.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상원의원의 법률보좌관으로 1950년대 매카시즘의 핵심 실행자였다. 콘도 "공산주의자 사냥"을 출세의 도구로 삼았다. 증거보다 기소를, 사실보다 의심을 앞세웠다. 그리고 권력을 잃자 각종 비리와 탈세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채 1986년 사망했다.

박종연과의 차이는 있다. 콘은 자신이 공격한 이들과 같은 동성애자였다는 아이러니가 더해진다. 박종연의 아이러니는 다른 종류다. 그가 기소한 사건들 가운데 상당수가 당시에도 무죄가 선고됐다는 것이다. 그는 10년을 사람을 잡는 데 바쳤지만,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을 '잡는 데' 실패했다.

1964~1966년, 반공법으로 모조리 다 잡으려 했다

박종연이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로 재직한 1964년부터 1966년 사이, 그의 손에서 나간 기소장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1964년 11월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를 반공법으로 구속했다.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황용주가 월간지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주장했다는 이유였다. 친구도 잡는 반공법의 위력에 박정희 본인이 "펄펄 뛰었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달 조선일보 기자 리영희(1929~2010)를 반공법으로 구속했다. 외무부장관이 흘린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에서 남북한 동시가입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한 것이 반공법위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보를 흘린 사람이 외무부장관 이동원이었다.

1964년 12월에는 영화감독 이만희를 기소했다. 영화 〈7인의 여포로〉에서 "북한 인민군이 멋있게 그려졌다"는 이유였다.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 원종백이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박종연은 중앙정보부와 협의해 재청구해서 결국 불구속 기소했다. 이만희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965년 7월에는 소설가 남정현에게 반공법을 적용해 최고형인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다. 소설 「분지」가 북한 노동당 기관지에 실렸다는 이유였다. 한국문인협회가 "북괴가 언제든 마음먹고 한국작가 작품을 게재하면 그 작가를 죽이는 게 되지 않겠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재판부는 선고유예를 내렸다.

1965년 8월에는 "국민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고 호소한 예비역 장성 11명을 내란선동으로 기소했다. 군 통수권자를 비판한 군 원로들을 내란범으로 몬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1970년 6월에는 시인 김지하(1941~2022)의 「오적」을 반공법으로 기소했다. 재벌과 관료의 부패를 풍자한 시였다.

영화, 소설, 신문기사, 시, 군 원로의 호소문, 야당 정치인의 발언. 반공법의 칼은 박종연의 손에서 방향을 가리지 않고 휘둘러졌다.

새벽에 판사 집을 찾아가 합의 내용을 캐물었다

박종연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사법부 독립을 직접 침해한 장면이 있다. 1967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국장으로 파견된 그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과 제3차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 사건 재판부를 직접 협박했다.

새벽 3시, 기관단총을 설치한 지프차와 권총을 찬 채 배석판사 김인섭의 집을 찾아가 "정부 요인 보호를 위한 특수임무 순찰 중"이라며 "독침 간첩이 내려왔다는 설이 있다"고 압박했다. 결심공판을 앞두고는 "오늘 판결 방향을 알아가지 못하면 충성심 없는 무능한 인물로 낙인 찍힌다"며 합의내용을 알려달라고 새벽에 찾아와 떼를 썼다.

판사 김인섭은 이렇게 제안했다.

"중앙정보부 부장 김형욱과 재판장 김영준이 직접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자."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박종연이 새벽마다 판사 집을 방문한 결과,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직접 만나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밤사이에 무너졌다.

"긴가민가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 인정한 말

1992년 『월간 말』 기자가 박종연에게 물었다.

"중앙정보부의 조서를 사실로 믿었느냐?"

박종연의 대답이 압권이다.

"나 자신도 긴가민가 했지만 이신범이 사실이라고 강력히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긴가민가. 의심스러웠지만 기소했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사실이라고 우겼기 때문에" 기소했다는 것이다.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의 피의자 이신범이 어떤 상황에서 "사실이라고 우겼는지"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말해준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높은 사람 앞에 가서 지금까지 진술한 대로 해"라고 협박하고, 검사 박종연이 부인하는 피의자를 주먹으로 때리고,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을 법정 밖으로 끌고 가 구타한 상황에서였다.

박정희 정권의 충성에 보답은 없었다

박종연은 박정희 정권을 위해 10년을 바쳤다. 그 결말이 씁쓸하다. 1973년 1월 변호사법 개정으로 근무지에서 3년간 변호사 개업이 금지되게 됐다. 개정 전날 사표를 냈지만, 검찰 수뇌부는 개정 이후에 사표를 수리해버렸다. 서울에서 개업하지 못하고 강원도 원주에서 3년을 보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이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은 것이다. 권력은 충성자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이것이 공안 권력의 속성이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매카시즘의 실무자 로이 콘은 역사교과서에서 반면교사로 가르쳐진다. 그가 기소한 사람들을 어떻게 파멸시켰는지와 함께, 그 자신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한국에서 박종연은 변호사로 40여 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말년에 목사가 됐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사실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검찰에서보다 지위와 권한이 강화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국장 시절, 박종연은 공안사건을 맡은 판사들에 대한 미행과 사찰은 기본이고,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새벽에 판사 집을 찾아가 합의내용을 캐물었던 박종연을 떠올렸다. 판사의 독립적 판단을 새벽 협박으로 무너뜨리려 한 그 문법이, 60년이 지나 다른 옷을 입고 귀환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박종연 ⓒ반헌법행위자열전 제공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