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황혼, 대한민국의 '홀로서기'를 묻다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과 유럽을 단단히 묶어주던 굵은 밧줄이 낡은 실타래처럼 힘없이 끊어지고 있다. 안보와 통상 두 기둥에서 동시에 발생한 균열은 단순한 정책 갈등이나 일시적 긴장 차원을 넘어선다. 80여 년간 세계 질서를 지탱해온 '대서양 동맹'이 미국-이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만해도 '미국 우선주의'를 괴짜 대통령의 돌출 행동으로 치부하며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미국 외교의 구조적 변화는 이미 변곡점을 지났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도는 차이는 있지만 큰 흐름은 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또다른 트럼프'의 등장에 대한 공포도 크다. 유럽에 미국은 든든한 동맹국이 아니라, 자국 이익을 위해 언제든 판을 흔드는 냉혹한 경쟁자가 됐다. 영국의 <가디언>은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미국 없는 안보'를 위해 스스로 칼을 갈기 시작했다.

한국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진정한 혈맹인가, 아니면 횡포한 비즈니스 파트너인가. 이런 근본적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이란 전쟁은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북한을 겨냥한 방패에 국한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역외 반출 논란에서 확인되듯, 주한미군은 미국의 글로벌 체스판 위에서 언제 어디로든 차출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한국의 입지는 매우 좁다. 유럽이 나토(NATO)라는 다자간 완충 지대를 가진 것과 달리, 한국은 미국과 1대 1로 묶인 '부채살형 동맹'의 좁고 가파른 길 위에 서 있다. 여기에 남북 대치 상황, 한미동맹을 향한 '정서적 허기증'까지 겹쳐 발목을 잡는다.

이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윤석열 정부가 계속 집권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윤 전 대통령은 '자유 연대'라는 깃발 아래 미국 중심의 '진영 외교' 늪에 빠져 있었다. 국제정치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했다. 중동 정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UAE의 적은 이란"과 같은 경솔한 발언으로 외교적 자해도 초래했다. 그의 '확신에 찬 무지'와 즉흥적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이란 전쟁을 맞닥뜨렸다면, 한국은 자국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전장의 불길 속에 던져졌을 수도 있다. 이란 전쟁이 터진 뒤 많은 사람이 "만약 윤석열이 그대로 대통령이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말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이에 비해 이재명 대통령은 전장의 뜨거운 불길 앞에서 '차가운 물러섬'을 선택했다. 신중하고 유연한 접근 방식으로 상황을 교묘히 헤쳐오고 있다. 미국의 군사동맹 참여 요청에 응하는 대신 유럽 주요국들이 주도하는 다자간 협의체 뒤에서 리스크를 쪼개고 관리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군사 행동에 대한 직설적 비판은 한국 외교의 패러다임을 재편하려는 대담한 실험으로 다가온다.

이 발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한국의 '가치 외교'를 실질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서구 주요 국가들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침묵하는 사안에 대해 보편적 인권의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인권, 규범, 국제법 등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국가지도자의 소신 발언은 '소프트 파워' 축적으로 이어진다.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처럼 수치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국제 사회에서 힘을 발휘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소프트 파워는 공감과 연대를 통해 확장된다. 서구 중심의 이중잣대에 피로감을 느끼는 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이 대통령의 발언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한국의 국가 브랜드에 '정의로운 국가'라는 새로운 서사를 입히며, 우리를 지지하는 무형의 방어막을 형성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인도 비즈니스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맹은 남기고, 종속은 덜어내고

더 주목할 대목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핵심 우방국인 이스라엘을 비판한다는 것은 곧 미국 정책에 대한 간접적 이견 표명이 된다. 미국의 결정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특히 전쟁 당사국들을 향해 "평화를 향한 용기"를 촉구하면서 "침략적 전쟁은 부인된다. 이것이 우리 헌법정신이자 국제적 상식"이라고 못박은 대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그 배후인 미국을 향해서도 일침을 놓은 셈이다. 이는 한국이 동맹의 그림자에 가려진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내는 '능동적 행위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맹은 남기고, 종속은 덜어내려는 발걸음이다.

이스라엘과의 전략적 거리두기 건너편에는 외교적 공간 확장이 놓여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중동 및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향해 "한국은 서구 진영의 대리인이 아니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이것은 '줄타기 외교'가 아니라 '공간을 넓히는 외교'다. 거친 모래바람이 부는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실리의 통로를 여는 작업이기도 하다. 중동은 한국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생명선이자,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요한 수출 시장이다. 이 지역과의 관계 개선은 단순한 외교 현안 대응을 넘어 에너지 안보의 안정성을 넓히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에는 비용과 위험이 따른다. 국내 보수 정치세력은 '한미동맹 파괴'라고 매도하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미국 방문 중 강연과 SNS 등에서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이 미국 편인지, 이란 편인지조차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통적 보수층의 안보 불안감을 자극하고, 현 정부에 '동맹 균열'의 프레임을 씌워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책략이다. 미국의 통상 압박 등 유무형의 보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 미국이 변하고,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지금, '한미동맹 올인'이라는 낡은 문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동맹은 도구일 뿐, 운명이 아니다. 동맹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적 자산이지만 정책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사안별로 국익을 따지는 실용성, 협력과 거리두기를 선택적으로 병행하는 유연성, 때로는 입장을 유보하는 전략적 모호성-이 모든 것은 수사가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다. 유럽과 중동, 글로벌 사우스를 잇는 횡적 연대를 통해 우리의 '지정학적 몸값'도 높여야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주권 국가로서 홀로서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다.

격변기에 과거의 관성에 몸을 맡기는 것은 '안락한 자살'과 다름없다. 대한민국의 홀로서기는 고립이 아니라 확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치밀한 계산 끝에 단행하는 새로운 모색이다. 자율 외교로 항로를 변경하는 것은 무리한 도박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며, 장기적으로는 가장 '안전한 도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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