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회, 경기도에서 물꼬를 열어보자

[복지국가SOCIETY] 일상의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2024년 5월 8일 '시민의회 입법 추진 100인 위원회'가 출범하고 국제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 지 2년이 되어간다. 경기도 군포에서 관련 활동이 시작된 지도 2년이 되어 간다. 군포민주시민교육센터가 워크숍을 통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를 찾다가, '시민의회를 주제로 해 보자'는 의견 일치를 시작으로 강좌, 토론회 등을 통해 시민의회에 대한 준비를 구체화하고 있다. 경기포럼을 통해 경기도 31개 시·군 지역사회의 뜻도 모아가고 있다.

세계적 흐름이 된 시민의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중반 유럽과 북미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정치운동이 시도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관심을 갖고 시민의회를 지켜봤다. 지역 또는 국가 차원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선출된 일정 수의 시민이 의회를 구성해 기존 정당이나 정부 의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에 관해 수 개월 이상 학습과 숙의를 거쳐 정책안을 만들어 정부와 의회에 제안하는 방식이었다. 정부와 의회는 이를 검토해 채택하거나 보류할 경우 답변을 하도록 했으며, 참가하는 시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함으로써 일회성 봉사가 되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2004년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콜롬비아주에서는 총리의 제안으로 시민의회를 통한 선거제도 문제 해결을 시도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층화무작위 추첨방식으로 150명의 기후시민회의를 구성했고, 전국적으로 1만 회가 넘는 타운홀 미팅을 진행한 뒤 정책보고서를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다. 아이슬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헌법을 제정하는 시민의회를 결성해 중요한 의제에 대해 의견을 반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작은 규모로는 벨기에의 경우 수도권과 동벨지움의 독일어권에서 시민의회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시민의회는 정치엘리트 중심으로 형성된 의회가 아니라, 성별·연령·지역·사회경제적 조건이 반영된 추첨으로 선출된 평범한 시민들이 일정 기간 학습하고 숙의해 합의를 만들어가는 혁신적 민주주의 제도 중 하나다. 참여 시민의 참여도와 만족도가 매우 높고, 정책 동반자·주권자로서의 자신감과 성취가 실현된 것으로 인식했다는 보고도 많다.

지역의 예속화와 무너진 지역사회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새로운 정치를 고민하던 이들에게 유럽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신선한 울림을 안겼다. 특히 기존 정당을 대신하는 시민정치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제공했다. 시민정치가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에 진출하는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부럽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도 여러 진보정당의 시도가 계속 이어졌지만, 영향력은 크지 못했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지방자치제도가 다시 부활하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운동단체 역시 이에 민감하게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정당정치의 틀을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일본의 지역네트워크정치운동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운동 기반과 지역에서 대선거구라는 선거제도 덕분에 적지 않은 당선자를 배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어 배우러 가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은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기성 정당들은 자신들의 하부구조화된 지역 조직을 쉽게 놓으려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지역 사무실 운영이 각종 비리를 이유로 금지된 뒤 당원 조직인 지역협의회가 무늬만 바뀐 채 운영돼 왔다. 여야가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를 공약하고 합의했지만,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때부터 지방자치의 중앙예속화는 더욱 심해졌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경기도 지역사회의 노력

정치는 지역을 버렸지만, 시민운동은 끊임없이 지역 발전을 모색했다. 이에 호응한 경기도가 지속가능발전 전환을 주창한 UN의 지방의제 21 제안에 따라 선도적으로 민관협치기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만들어 기초지역까지 확산되게 했다. 이 협의회는 경기도 전역에 정착돼 운영 중이며, 민관협치·지속가능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10여 년, 민주시민교육도 기초지역에서 경기도 차원으로 상향식 진전을 이뤄왔다.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민주시민교육조례가 경기도와 23개 기초지역에서 제정돼 시행 중이니 큰 진전이라 할 만하다. 각 지역에서 여러 단체와 개인이 관련 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기도도 함께하지만 기초지역 연결을 바탕으로 수평적이고 민주적 방식의 민주시민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지역별로 단체들이 협력해 민주시민교육센터를 만들어 이를 전담해 가는 모습도 든든하다.

꽤 긴 시간 지역에서 가동돼 온 주민참여예산제도 입법으로 자리 잡고 보편화됐다. 주민자치위원회도 소중한 민주주의 기초 중 하나다. 과거 관변조직에 머물렀던 동정자문위윈회가 주민자치회로 변화하며 민관협력, 나아가 시민참여, 시민주도 시대를 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식정보사회로의 급속한 변화와 연결돼 있다. 누구나 검색을 통해 웬만한 지식과 정보는 쉽게 습득할 수 있다. AI 시대의 전면적인 도래도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의 진전으로 똑똑한 시민이 광범위하게 탄생했고, 광장 시민운동을 통해 스스로 변화의 주역일 수 있음을 시민들은 발견했다. 이제 광장의 촛불과 빛의 혁명을 일상의 정치 민주주의로 성숙시켜야 할 때다. 그런 시대적 요구의 등장한 것이 바로 '시민의회'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축소판, 경기도부터 '시민의회'를 도입하자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쪼그라 들어가는 국민의힘과 여론조사 결과가 그런 기대의 바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주권 정부임을 천명하고 있다. 명칭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에서 시민참여기본법이 발의돼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민의 정책 참여·숙의·공론화, 민주시민교육, 시민사회 활성화 등을 실현하자는 목적에서 2026년 제정을 목표로 추진 중이니 기대가 된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에 가깝다. 대도시에서 전형적인 농촌에 이르기까지 31개 시·군이 매우 다양하다. 인구로는 1400만 명에 해당하는 최대 지방자치단체다. 호남과 영남 같은 지역색이 별로 없고, 노·장·청년층이 골고루 존재하는 한편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젊어 지역사회가 역동적이다. 또 서울과 달리 기초지자체별로 자율성이 높고, 지역사회의 힘도 강한 편이다.

대한민국의 축소판인 경기도부터 혁신적 민주주의인 '시민의회'를 도입해보면 어떨까? 경기도 지사와 시장, 군수들이 뜻만 세우면 크게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해볼 만한 일이다. 선거는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시민의회의 도입을 위해 경기도 시민사회도 뜻을 모아가고 있다. 뜻 있는 선거 출마자들의 화답도 기대해 본다.

ⓒ시민의회전국포럼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