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2기 취임 첫날 다수의 행정명령을 쏟아냈는데 그 중 하나는 성소수자(LGBTQI+) 학생 지원을 위한 교육부 지침서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명령이 "생물학적 진실 회복"을 위함이라며 "미국의 정책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랜스젠더 혐오 및 관련 공포 조장 발언을 2기 행정부에서 정책으로 전환한 시작점이었다.
책 <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들>(다이앤 에런사프트·미셸 유르키에비치 지음·조은영 옮김·수오서재·336쪽)의 저자 에런사프트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의대 소아과 겸임교수, 유르키에비치는 심리학자이자 젠더 전문 임상가로 젠더 고민을 겪는 아동과 부모를 현장에서 실제로 만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책은 최근 미국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이분법적 젠더 경계를 넘는 것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 조장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임상 경험과 연구를 통해 현실을 정확히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 고민을 겪고 있는 아동과 부모에 눈높이를 맞춰 이론이나 논점보다 경험에 집중했고 생소하거나 복잡할 수 있는 개념을 최대한 어렵지 않게 풀어낸 것이 강점이다.
책은 임상에서 만난 아이들이 인식하는 젠더가 어른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크게 뛰어넘는다는 현실을 알린다. "과거에는 (여성과 남성) 두 범주 간을 오가는 (이분법적) '점프'만 가능"했지만 "이제 우리 상담소에 오는 아이들은 대개 자신이(주어진 성별에 따른) 남자나 여자로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여자이면서 동시에 남자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트랜스보이이거나 트랜스걸일 때도 있지만 "자신이 다른 남자아이나 여자아이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끼거나, 아예 젠더라는 규정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를 '비정상적' 현상으로 보고 도서관에서 성소수자 관련 서적을 빼는 등 젠더에 대한 정보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는 현상이 미국 곳곳 보수적 주에서 일어나지만, 저자들은 이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일단 젠더 교육은 '원천' 차단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 아이는 출생시 지정된 성별에 따라 다른 대우, 반응을 겪게 되고 이 자체가 아이의 젠더 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책은 "학교에서 젠더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모든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매일 젠더에 대해 배우고 있다는 점을 잊고 있다. 첫 수업은 아이들이 자궁을 떠나자마자 성별에 따라 다르게 취급되면서 시작된다. 아이의 방 색깔이든, 부모가 아기의 울음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식"이라고 짚는다. 이어 "유치원에서도 남녀로 나눠진 화장실과 장난감, 또는 옷차림을 통해서 배우고, 유치원 선생님은 모두 여자이고, 지역 사회의 리더나 소방관은 모두 남자인 것 같은 직업의 성별 분리에서도 수업은 계속된다"고 지적한다. 이 '수업'은 "'넌 정말 씩씩한 남자아이구나!', '안 돼, 넌 남자니까 치마를 입을 수 없어!', '이렇게 예쁜 여자아이가 있나', '레슬링 대신 발레 수업 어때? 레슬링은 여자아이가 하기엔 너무 거친 활동이니까'" 등 "어른의 직접적인 칭찬과 꾸중을 통해 더 강화된다."
저자들은 젠더 교육 자체를 막는다는 개념은 "말이 안 된다"라고 비판하고 "진짜 문제는 그 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라며 "전통적인 젠더 규범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지, 아니면 성별다양성과 포함을 중요하게 가르치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학교에서의 젠더 학습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교육 과정이 정치적으로 조장되고, 좌파 성향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현실을 무시한 편향된 이념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책은 이분법적 성별 범주를 벗어난 "젠더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보를 무작정 차단하여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것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시대에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고 덧붙인다. 또 "젠더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에선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빼거나, 관련 수업을 금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 하지만, 젠더가 한국에서 '사회적 성'으로 번역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사회의 모든 변화가 젠더에도 반영된다. 아이들이 "두 범주 대신 연속체 안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색"하고 "자신에게 '맞는' 젠더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원인'을 찾고 싶다면, 사회·문화의 총체적 변화 이상의 설명을 찾기 어렵다.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린 세대는 성별표현의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문화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는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의 페미니스트 운동과 성소수자 권리 운동, 그리고 좀 더 최근의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 커뮤니티가 적극적으로 활동한 결과일 것"이라며 아이들이 더 이상 대형마트에서 장난감이 성별로 분류돼 판매되지 않고 장난감 제조사에서 만든 인형도 가장 '여성스러운 것'에서 가장 '남성스러운 것'까지 자연스럽게 옷, 머리 모양, 액세서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출시된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많은 미국 기관들이 공식 서류 양식에 남·여 이외 성별정체성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하고 'policeman'에서 'police officer'으로의 전환 등 언어에서 또한 성별 구분 표현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점점 더 많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성별정체성을 고민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결국 젠더는 "본성, 양육, 문화의 실타래가 복잡하게 뒤얽힌 결과물"로 "세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화한다"고 강조한다.
젠더 논의를 틀어막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실제 젠더 탐색 중인 아이들에게 고통만 가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우려한다. 책은 미국에서 "반트랜스젠더 법안이 통과된 주에서 위기 상담 전화가 급증했고 상담자 중에 해당 법안으로 인한 스트레스, 자해 충동,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난 데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도 함께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책은 "반대로 나이에 맞는 적절한 젠더 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사회에서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성별정체성 또는 성별표현 때문에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줄어들게 된다"며 "결국 아이들은 가장 유연한 존재이고, 대개 어른이라 삶의 경험을 통해 혐오를 배우기 전까지 혐오로 채워져 있지 않다"고 덧붙인다.
책은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기반한 다양한 성별표현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도 설명한다. 저자들은 "신체의 이차 성징과 일치하지 않는 성별표현은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견해나 비판을 불러오는 경향 때문에 성별불쾌감(자신의 성별정체성이 출생 시 지정된 성과 다를 때 느끼는 고통)의 원인이 된다"며 "외모를 특정 젠더와 일치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대개 전형적인 성별표현과 일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대한 반응인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이어 "트랜스젠더 및 젠더 다이버스 아동과 청소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원인은 한 사람의 성별정체성 자체나 그 사람의 신체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이라며 "사회적 성별불쾌감은 자신의 젠더 경험이 주위의 이분법적 문화와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정의된다"고 강조한다.
미국에서 우파 중심으로 매일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과 공포 조장 메시지가 나오는 시대에 저자들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임상 전문가로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막연한 공포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엔 성별확정의료 및 사춘기억제제 사용에 대한 정보도 포함된다.
저자들이 지적하듯 젠더는 "정적인 그림"이 아닌 "맥동하는 생명체"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끊임 없는 논쟁이 필요하다. 변화하기 때문에 어렵고 계속되는 토론, 공부와 이해를 필요로 하며,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이분법에 익숙한 이들에 안정감을 제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움직이는 젠더의 고정된 순간을 포착해, 불안과 공포를 심는 일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미국에서 젠더다이버스 아동의 성별확정 의료를 제한 및 금지하고 LGBTQ+ 커뮤니티 지원과 가시성을 억제하는 법안이 단 1년만에 무려 550개나 발의되었다. 이들이 전체 청소년 인구의 2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과도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양"이라고 지적한다.
젠더에 대한 논쟁은 필요하지만, 공포와 불안감 조성은 하나의 분명한 현실을 가린다. 이들이 성소수자로, 사회의 많은 부문에서 차별 받고 때로 폭력과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한 트랜스젠더 활동가가 시위 현장에서 들고 있던 피켓의 문구를 인용해 보자. '트랜스젠더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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