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네 번이나 연임하면서 팬들의 목소리는 물론 국민 여론조차 무시하는 행정을 이어갔다.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은 ‘나만 옳다’는 식으로 팀을 운영했고 사퇴 기자회견 때도 자신의 말만 뱉은 후 주머니에 손 꽂고 퇴장했다.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은 외국인 감독을 찾으라는 여론은 물론 회장의 지시에 항명하며 보란 듯 사퇴했고 이임생 기술이사는 기어이 자신의 선배 홍명보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축구인들은 왜 이렇게 오만할까.
지난 14일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열린 ‘반복되는 대한축구협회의 파행,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토론회는 한국 축구의 보다 근본적 문제를 파헤친 자리였다. MK스포츠 이근승 축구 담당 기자는 ‘축구 기득권’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정치권을 우선 지목했다. K리그 12개 팀 중 절반인 6개가 시도민 구단이고 K2리그는 17개 중 무려 13개다. 혈세 없이 운영이 불가능한 리그다. 프로리그 자체가 국민 세금에 의존해 유지되는 처참한 현실이다.
혈세 없이 운영 불가능한 프로축구?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 우후죽순 창단한 ‘혈세 구단’들에 올해만 무려 1,500억원이 투입된다. 예산 대부분이 시도 재정에서 채워진다. K리그 수원, 대구, 인천 등이 연 200억원 가까이, K2리그의 안양, 아산, 부천, 화성은 연 100억 안팎의 예산을 쓰고있다.
이들 시도민 구단에서 스타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연봉을 보면 ‘억’ 소리가 아니라 ‘헉’ 소리가 난다. 대구FC는 세징야에게 21억원의 연봉을 지급하고, 인천 유나이티드가 무고사, 제르소, 바로우에 지급하는 연봉을 합하면 40억원에 이른다. 시민구단임에도 기업 구단 스타선수들 보다 더 받는다. FC서울 린가드가 19억원, 전북현대 이승우가 16억원이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은 대구, 인천은 이렇듯 예산을 펑펑 쓰면서도 K2로 강등됐다는 점이다.
한국 프로축구는 1983년 출범 이후 흑자를 낸 팀이 단 하나도 없다. 이제까지 그토록 국민적 성원과 국가적 지원을 받고도 국민의 세금 없이는 단 하루도 연명할 수 없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다. 이 기자는 K리그는 축구인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지금 대한민국 축구 시스템은 축구인들 생계를 국민이 세금으로 떠받들고 있는 형국이다.
변화가 있을 리 없다. 축구계 전반에 걸쳐 이토록 엉망진창이지만 정치권이 구단 만들어주고, 억대 연봉 주고, 먹고 사는 문제가 없으니 더 나은 축구를 위한 노력도, 수익 창출을 위한 고민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축구인들의 특권의식
이 기자의 또 다른 지적은 축구인들의 ‘특권의식’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축구 잘 했던 사람들을 벼슬자리에 앉혀줬다”고 꼬집었다. 먼저 상무. 군 복무하면서 자기 직업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기 몸값 올리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다. 그리고 병역특례. 축구인 뿐 아니라 모든 체육인들이 당연시하는 특권의식이다. 메달리스트 체육인들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성과를 가지고 왜 시비를 거냐”는 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한때 배려하고 호의를 베푼 것인데 이를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불공정의 극치다.
당연히 폐쇄적이 된다. 지난 44년 동안 K리그 외국인 감독은 33명이다. 10년 늦게 출범한 일본 J리그는 157명이다. 외국인 감독이 들어오면 자기들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축구계 전체가 저항한 결과다. 홍명보 감독도 이런 분위기에서 축구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심판들도 이에 가담한다. 외국인 감독들은 경기 중 자신에게 수시로 날아드는 불공정을 끼고 살 수밖에 없다.
이는 협회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토론회 참여자 모두 동의한 것은 ‘경기인 중심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자체가 축구인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차기 축구협회장 선거 관련하여 축구를 소비하는 팬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축구인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면 자신들의 이익만 좇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축구인들만 모여 논의해봐야 변화나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축구협회가 이렇게 된 것처럼.
홍재민 축구전문기자는 그래서 축구계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축구계가 너무 좁다 보니 축구계 내 모든 관계 맺음이 형·동생 관계라는 것이다. 한 인물을 놓고 ‘어떤 축구를 지향하는가’를 논하는 게 아니라 ‘누구 사람,’ ‘어디 라인’으로 먼저 규정한다. 지금도 학연·혈연·지연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이 축구계다. 전근대적일 수밖에 없다. 홍 기자는 “축구계는 바깥세상과 너무 달라서 일하다가 만나는 사무적 관계가 아니라 모두 형, 동생 관계”라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자기들끼리 동의하면 바깥에서는 안 될 일도 되는 곳”이고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너무 당당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존립이 불가능한 한국 축구
축구는 한마디로 공공재다. 대한축구협회 예산에 정부 지원금이 들어가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방정부 소유의 경기장에서 경기하고, 거의 모든 아마추어 팀들은 지자체 공공기관 소속이며, 공공재인 전파를 통해 중계방송을 한다. 프로팀들마저 시민 세금 없이는 운영이 되지 않는다. 대구FC와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보듯 시민 혈세로 팀을 운영하면서 외국인 선수에게 20억원 넘나드는 연봉을 지급하는 등 돈을 펑펑 쓰고도 팀은 2부로 강등된다. 자기 돈이면 그렇게 쓰겠는가.
헐벗고 비참했던 과거, 축구는 국민에게 ‘세상 사는 맛’을 주던 존재였다.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열불이 오르고 분통을 터뜨리게 만드는 존재가 됐다. 개혁은 바라지도 않는다. 상식적 협회 운영이면 족하다. 스스로 바꾸기를 바란다. 아니면 국민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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