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긴 신규 핵발전소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지역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이에 따른 갈등 역시 확산되고 있다.
3월 16일 경북 영덕에서는 영덕군 주최로 신규 원전 공개 토론회가 진행됐다. 같은 날 울주군의회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후보 부지 자율 유치 신청 동의안’을 가결했고, 다음 날인 3월 17일 울주군은 한국수력원자력에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3월 18일에는 경주시의회가 'SMR 건설 후보지 유치 동의안’을 가결했으며, 같은 날 영광군의회에서는 신규 핵발전소 유치 공모와 관련한 의원 간담회가 열렸다. 오는 3월 24일에는 기장군의회에서도 '혁신형 SMR 유치신청 동의안’ 의결이 예정돼 있다.
이처럼 영덕, 울주, 경주, 영광, 기장 등 여러 지역에서 핵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의회 의결과 논의가 짧은 시간 안에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다수의 핵발전소가 이미 밀집해 있거나, 수차례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문제를 둘러싸고 유치와 철회를 반복하며 갈등이 누적돼 온 곳들이다. 탈핵 시민사회는 "더 이상의 위험을 가중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며 본회의장에서 항의행동을 진행하기도 했고, 울산에서는 '신규 원전 유치 반대 울산시민 10만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지방정부와 의회는 지역 주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장기적인 미래를 고려해 정책 방향을 판단해야 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그러한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이 제시되면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보다, 유치 결의라는 방식으로 빠르게 호응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기보다 이미 정해진 정책을 지역에 옮겨오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탈핵 시민사회가 지방정부와 의회의 역할을 문제제기하며 항의하더라도, "국가사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식의 대응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핵발전 지역의 전환 논의는 사실상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의회는 조례를 통해 지례를 통해 지역의 정책 방향을 구체화하고 실행의 기반을 만든다. 무엇을 제도화하느냐는 결국 그 지역이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 핵발전소 지역의 자치법규는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까. 자치법규시스템에서 원자력과 관련한 조례를 살펴보면 다수는 발전에 따른 지역자원시설세 등 재정 지원과 관련된 내용에 집중돼 있다. 원자력 안전과 관련해서는 안전관리와 방재를 다루는 '원자력안전 조례', '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 설치 및 운영 조례' 등이 존재한다.
또한 원자력산업 육성과 기업 경쟁력 강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원자력 산업 진흥 조례'는 경주, 창원, 부산 등에 제정돼 있으며, '원전 해체 산업 육성 조례'는 울산과 경북에 마련돼 있다. 부산의 경우, 문재인 정부 시절 고리 1호기 폐쇄 국면에서 제정됐던 '원전해체산업 육성 조례'가 이후 '원자력산업 육성 조례' 제정으로 폐기된 바 있다. 이는 핵발전소 영구정지 이후를 준비하는 방향에서 다시 기존 원자력 산업의 유지·확장으로 정책의 무게가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에너지 정책 방향이 정권 변화에 따라 흔들리며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해 온 흐름 역시 드러낸다.
반면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한 조례는 석탄화력발전소 지역인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태안군을 비롯해 전국 7곳에서 제정돼 있다. 정의로운 전환 또는 노동전환 지원을 위한 제도적 시도가 일부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조례가 실제로 작동하고 이행되는 과정에서는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와 제도적 시도조차 핵발전소 지역에서는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간극은 더욱 두드러진다.
핵발전소 지역의 지방정부와 의회는 그동안 핵발전으로 인한 세수 유입과 지원사업에 기대어 왔으며, 전환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시작되지 못한 채 기존 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선택은 종종 지역의 미래를 위한 것처럼 제시되지만, 이미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또 다른 핵발전소를 유치하는 것은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전기는 수도권과 산업이 소비하고, 위험은 지역이 떠안는 구조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다가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금과 같은 핵발전소 유치 행보는 더욱 문제적이다. 지역의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숙의 없이, 짧은 정치적 시간 속에서 수십 년, 어쩌면 수십만 년 동안 남게 될 위험을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핵발전소는 한 번 들어오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며, 그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다음 세대에게까지 이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발전소 유치가 아니라, 더 이상의 위험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위험을 떠넘기는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지역이 전환의 주체로 나서 새로운 길을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핵발전소 유치라는 낡은 해법이 아니라, 지역의 안전과 미래를 중심에 둔 전환의 관점이 지금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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