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방어의 핵심 보루라 일컬어지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중동 전장으로 재배치되고 있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군사 자산의 이동을 넘어,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인내해온 명분과 신뢰의 근간을 뒤흔든다. 평화를 말하며 배치된 무기가 전쟁을 따라 옮겨가는 이 장면은, 우리가 믿어온 '동맹의 언어'와 실제 작동하는 '전략의 논리'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억지'라는 약속의 유효기간
우리는 오랫동안 '억지(deterrence)'라는 차가운 언어에 길들여져 왔다. 사드 배치는 북핵 위협에 맞서 한반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설명을 들어왔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 막대한 경제적 보복,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극심한 갈등을 감내했다. 그 모든 희생의 끝에는 오직 하나, "한국 방어를 위한 철통같은 방패"라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자산의 차출은 그 약속의 실체를 묻게 만든다. 한반도 안보의 필수 자산이라던 무기가 전략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옮겨갈 수 있는 '유동 자산'이었다면, 우리는 보호받는 동맹이었는가, 아니면 글로벌 군사 네트워크의 '전략적 전초기지'였는가? 동맹의 언어는 상호 보호였으나, 현실의 문법은 전략 자산의 저장과 차출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가?
무기는 질서를 만들지 못한다
미국은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하며 늘 '안정'과 '질서'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미사일 배치가 늘어난 자리에 평화가 뿌리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무력 충돌은 군사적 압도가 공포를 낳을 뿐, 결코 신뢰를 낳지 못한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전쟁의 언어는 언제나 계산적이고 건조하지만, 그 대가를 치르는 희생의 얼굴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폭격으로 형체조차없이 죽어간 아이들, 공습의 굉음 아래서 아이를 안고 대피소로 뛰어야 하는 부모들, 일상의 저녁을 잃어버린 평범한 가족들. '정밀 타격'이라는 말은 차갑게 식고 '불가피성'이라는 설명은 공허하게 울린다. 폭격으로 설계된 평화는 누군가의 삶을 파편으로 만들 뿐이다.
안보의 주권, 그리고 사고방식의 재배치
한반도는 분단과 정전이라는 거대한 슬픔을 일상으로 견뎌온 사회다. 우리에게 평화는 관념적인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절대 조건이다. 그렇기에 이 땅의 무기가 또 다른 누군가를 겨누기 위해 떠나는 모습은 단순한 군사 이동이 아니라 깊은 윤리적 통증으로 다가온다.
이번 조치는 한반도를 주권적인 평화의 공간이 아닌, 강대국의 전략적 자원 저장고로 인식하는 시선을 투영한다. 진정한 동맹이란 위험을 함께 나누는 결속이지, 필요할 때 부품을 가져다 쓰는 계약 관계가 아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중대한 결정들이 시민의 동의와 숙의 없이 '안보'라는 이름의 자동 승인 아래 행해진다는 점이다.
전쟁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을 위한 '무기의 재배치'가 아니라 평화를 향한 '사고방식의 재배치'다. 적을 압도하는 전략보다 적이 생기지 않게 하는 외교가, 전쟁을 억제하는 힘보다 전쟁이 필요 없어지는 질서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강대국 전략의 경유지인가, 아니면 스스로 평화를 설계하는 목적지인가?
진정한 평화는 미사일 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신뢰, 그리고 상호 안전 보장의 토대 위에서만 싹튼다.
평화를 말한다면, 이제 전쟁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군사적 편의라는 효율성 대신, 인간의 존엄과 공존이라는 질서를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 사드의 이동이 남긴 빈자리는 우리가 채워야 할 '자주적 평화'의 무게만큼이나 깊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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