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LOL' 프로게이머, 편견을 부수고 협곡을 누빈다

[장애 드러내는 사람들] ②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권재혁 씨

여전히 장애가 욕설로 사용되거나 약점이 될까 숨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드라마, 유튜브, 연극, SN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의 편견을 깨부수고 있다. <프레시안>은 장애를 소재로 대중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과정, 활동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들어 봤다. 편집자.

최근 게임과 프로게이머를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지난 1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e스포츠 선수 최초로 체육훈장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받은 일이 대표 사례다.

청룡장은 마라토너 손기정, 축구 감독 거스 히딩크, 피겨선수 김연아, 축구선수 손흥민, 프로골퍼 박세리 등 한국 스포츠를 빛낸 체육인들이 받은 상이다. 게임이 기성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문화라는 걸 국가가 인정한 셈이다.

사회 인식이 변하는 만큼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청소년도 크게 늘고 있다. 프로게이머를 육성하는 학교와 학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전국 규모로 열린 학교 대항 e스포츠 대회에 '2025 전국중고교대회'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단체로 참여하는 등 정부 지원도 확대 추세다.

▲디플러스 기아 리그오브레전드팀 소속 프로게이머 권재혁(19) 선수가 2월 10일 <프레시안>과 인터뷰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상혁)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게임 산업 속에서 유독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 바로 '장애인 프로게이머'다. 뇌성마비로 인해 발로 게임하는 유튜버 이시형 씨가 "게임은 몸의 한계를 그나마 덜 느낄 수 있어 좋아하게 됐다"고 할 정도로 게임은 신체 제약이 비교적 적은 스포츠다. 그러나 장애인 e스포츠 대회가 따로 열릴 뿐, 모두가 함께 경쟁하는 프로게임 리그에서 장애인은 없다시피 하다.

휠체어를 탄 프로게이머, 재혁(본명 권재혁·19) 선수는 그래서 유독 눈에 띈다. 리그 오브 레전드팀 '디플러스 기아'의 2군 탑라이너를 맡고 있는 권 선수는 한국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중 유일하게 자신의 장애를 드러낸 이다. 2007~2011년 워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근이영양증 환자 고(故) 박승현 선수 이후 10여 년 만에 휠체어를 탄 프로게이머이기도 하다.

지난달 10일 서울 영등포 디플러스 기아 연습실에서 만난 권 선수는 가장 자신 있는 캐릭터 '암베사'를 조작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짧은 시연에도 드러난 빠른 손놀림과 높은 집중력에 프로와 일반인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연습하는 모습은 다른 선수들이 의자에 앉아 게임하듯 익숙하고 편안해 보였다. 권 선수는 "휠체어에 앉아서 게임한다고 불편한 점은 없다. 책상에 휠체어 높이를 맞추는 건 받침대를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휠체어 외에도 눈에 띄는 게 하나 더 있었다. 권 선수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보라색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팬 분들이 커스텀 마우스와 키보드를 선물해주셨다"고 했다. 디플러스 기아 및 게임 커뮤니티 곳곳에서 권 선수의 도전을 응원하는 글을 다수 찾아볼 수 있는데,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권 선수를 향한 애정이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 권재혁 선수가 팬들에게 선물받은 키보드와 마우스. ⓒ프레시안(박상혁)

권 선수가 프로게이머가 되기까지 과정은 어땠을까. 권 선수는 다섯 살 무렵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바퀴에 깔려 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고,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사고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어나보니까 휠체어를 타야 했다"고 회고할 만큼 큰 충격이었다.

몸의 절반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재능을 가릴 수는 없었다. 유년 시절 권 선수는 기타, 탁구, 바둑, 수영 등 각종 예체능 종목을 남들보다 빨리 배웠다. 진로 탐색 차 친형과 함께 등록한 게임 아카데미에서도 형의 실력은 늘지 않는 반면 권 선수의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권 선수의 빠른 성장은 그가 무엇을 하든 행복하길 바라는 부모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권 선수의 어머니 엄남미 씨는 "재혁이가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컴퓨터로 오만 곳을 다닐 수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꼭 공부를 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게 했다"며 "어느 순간 게임 실력으로 방송에 나간다고 하더라. 그때 재혁이가 보통이 아니란 걸 다시금 알게 됐다"고 했다.

권 선수는 2022년 15세라는 이른 나이에 리그 오브 레전드 최상위 랭킹에 오른 뒤 대형 게임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유망주를 찾던 김선웅 디플러스 기아 3군 감독은 영상을 보고 그에게 연락해 프로게이머를 제안했다. 미팅 자리에서야 권 선수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괘념치 않았다. 휠체어는 프로게이머를 도전하는 데 큰 장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혁이 같은 유망주가 프로게이머에 도전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에서 휠체어 타는 학생 중에 누가 도전할 수 있을까요? 프로게이머는 상체만 잘 움직일 할 수 있으면 괜찮으니 재혁이와 같이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식사 시간이나 이동할 때는 주위에서 도와줄 때가 있지만, 게임을 연습시키고 평가할 때는 다른 선수와 똑같이 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라고 구별하며 배려하려는 행동이 누군가에겐 배려가 아닐 수 있으니까요." (김선웅 감독)

▲2022년 게임 유튜브 채널 <테스터훈>에 출연한 권재혁 선수ⓒ테스터훈 유튜브 갈무리

김 감독이 평가하는 권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열정'이다. 권 선수는 연습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프로게이머 세계에서도 유달리 연습량이 많다. 움직이는 데 제약이 있다는 단점을 연습에 더욱 집중한다는 강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권 선수도 본인이 승부욕 있는 성격이라며 "스스로 만족할 만한 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열정 앞에 장애는 어떤 흠결도 되지 못했다. 2024년 디플러스 기아 3군에 입단한 권 선수는 그해 6월 '2024 LCK AS 상반기 아카데미 리그’에서 곧바로 우승을 차지해 실력을 증명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내부 평가를 통해 2군으로 승격했고. 이제는 2부 리그인 'LCK 챌린저스 리그' 우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장애가 권 선수를 가로막지 못하는 데에는 그가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이들의 영향도 컸다. 권 선수는 "데뷔할 때 친구들이 응원해 줬고, 친형도 경기 때마다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코치님, 감독님, 부모님, 선수들 모두 잘 도와줘서 생활도 편하게 하고 있다"며 "여기서는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도와주고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권재혁 선수가 게임 연습을 시연하는 모습. ⓒ프레시안(박상혁)

권 선수는 프로게이머로서의 삶이 만족스럽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라며 "프로게이머만큼 만족도가 높은 직업이 없는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직업을 택하지 않고 다시 프로게이머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권 선수는 앞으로도 프로게이머로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게 열정을 불태울 예정이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 또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권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지 말고 최대한 열심히, 쓰러지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모습 보여서 팬 분들 행복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남은 시즌 열심히 준비해서 꼭 좋은 결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권재혁 선수ⓒ프레시안(박상혁)
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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