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한자어를 많이 쓰면 유식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필자가 학사학위 논문을 쓸 때 설문조사를 했는데, 한자어를 많이 쓰면 유식해 보인다고 응답한 경우가 엄청 높게 나타났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특히 명사의 80% 정도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영어나 다른 나라의 말이 많이 들어 와서 한자어보다는 서구의 말이 명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스마트 폰이나, 마우스, 키보드, 카센터 등등이 모두 외국어에서 유래한 것임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영어가 대세였는데, 요즘에 와서는 조금 달라진 모양이다. 예전에 쓴 글에서 ‘어벤져스(Avengers)’라는 영화를 논하면서 중국에서는 이것을 ‘복수자연맹’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했다고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하면서 웃은 적이 있다. 이제는 세월이 또 많이 흐른 모양이다. 일본어나 중국어가 다시 들어와 우리말에서 한 구석을 차지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필자 세대는 어린 시절에 일본어를 많이 썼는데, 요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외계어(?)를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게임이나 만화 등에서 가지고 온 말들이 아닌가 한다. 게임이나 만화에서 유행하는 말을 현실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얼마 전에는 우리 학생 중에 한 명이 ‘탕핑’이라는 말을 하길래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물어보았다.
탕핑(躺平tǎng píng)은 중국어로, 뜻은 ‘눕다(누울 당躺), 평평하다(평평할 평平)’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것을 젊은이들은 ‘더 이상 세상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치열하게 사는 것보다는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심한 경쟁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작지만 소박한 행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벤져스(Avengers)’를 ‘복수자연맹’이라고 할 때는 촌스럽다고 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중국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아마도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그나마 ‘있어 보인다(?)’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한자어로 쓰면 촌스럽지만, 중국어로 발음하면 튀는 맛(?)이 있는 모양이다.
중국에서는 ‘996 근무(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 6일 근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사회 생활하는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의미로 풀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탕핑(躺平tǎng píng)’이 등장한 것이라고 본다. 스트레스 없는 삶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지만 중국에서도 이러한 바람이 분다는 것이 놀랍다. 이것을 한국식 발음으로 ‘당평’이라고 하면 촌스러운지 대부분이 중국어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탕핑족’이라는 말도 등장하였다. 그 실제적인 의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젊은이들이 중국공산당의 경제적 폭거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근로나 소비도 회피하고 최소한의 생계활동만 수행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누워보내는 것을 의미한다.(나무위키, <탕핑족> 참조) ‘당평이 정의(躺平是正義)’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중국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는 하는가 보다. 탕평의 예문을 보자.
我不想努力了,我要躺平(나는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 그냥 눕고 싶어.)
(<생활중국어> 躺平 뜻/작성자 킴블리>에서 참고)
필자는 순한글만을 고집하는 학자는 아니다. 국한문혼용했을 때 우리말의 의미가 더 정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신조어의 경우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우리말로 바꿔서 의미 전달이 잘 되는 것이 있고, 외국어를 그대로 전했을 때 더 정확하게 의미를 나타내는 것도 있다. 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젊은이들이 모두 활용하고 있는 어휘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게 의미전달이 가능해야 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텅핑’과 같은 어휘는 규범 표기가 등장할 때까지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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