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 전국 핵발전소의 출력이 25번 제한됐다. 약 206억 원의 손실이 추정된다. 출력 제한은 '전기가 수요보다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져' 생산량을 줄이는 조치다. 전력망은 수요와 공급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주파수가 널을 뛰어 망 자체가 고장 날 수 있다.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연한 전력 공급이 중요한 이유다.
핵발전의 출력제한은 증가추세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20년부터 2회, 3회, 4회, 7회 등으로 매해 늘다가 2025년 25회로 크게 늘었다. 5년간 총 48회, 줄어든 출력만 총 33.52GW(기가와트)다. 한수원은 1071억 596만원의 손실이라고 밝혔다.
배경 중엔 재생에너지의 증가가 있다. 교통체증과 같은 부족한 송전망 문제와 함께, 태양광 발전망이 확충되면서 최근 낮 시간 등에 전력 과잉 상황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전망을 개선하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저장하는 등 공급 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와중 핵발전소 증설이 추진된다. 유연한 전력 공급이 필요한 상황에, 경직된 에너지의 대량 공급이 동시에 이뤄지는 모양새다. 조화로운 공존일까? 일부 핵발전 전문가들은 "손실이 더 급증하고, 재생에너지 발전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에너지 전환 시대에 핵발전 경직성의 의미를 들여다봤다.
핵발전, 경직>>유연
원자력 업계 일각에선 핵발전이 "탄력운전이 가능하다"며 "원전이 경직성 발전원이라는 건 오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핵발전소는 현재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 28기 모두 '기저 부하' 용도로 설계됐고 운영된다. 수요에 즉각 대응하는 탄력 운전을 기초로 설계된 발전소는 아직 없다. 기저 부하는 기저 전력을 고정적으로 생산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23일 실시간 전력수급현황인 위 그림을 보면, 핵발전(주황색)의 특징이 뚜렷하다. 전체 전력의 기저처럼, 출력 변동 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출력 조정은 대부분 가스나 석탄 등의 발전소에서 이뤄진다. 핵발전은 한 번 가동하면 출력을 큰 폭으로 조정하기 어렵고, 연료비가 가장 싸다. 전기 공급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위해 기저 부하를 맡기기에 적절했다.
프랑스, 독일 등은 핵발전 탄력 운전을 성공적으로 해온 나라이지만, 한국 핵발전소와는 기본 설계부터 다르다. 기저 부하 운전에 최적화돼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한국은 고정 출력이 전제라면, 프랑스 등은 초기부터 탄력 운전 설계를 도입했다. 최대 20%까지 수시로 발전량을 조절하는 프랑스, 독일 사례와 한국을 기계적으로 비교하기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은 2016년부터 가동된 'APR1400(차세대 한국형 원전)' 모델에 일부 기능이 탑재돼있다고 강조하나, 실제 상용화가 가능한 단계는 아니다. 2020년, 2023년 등 APR1400의 부하추종 운전 가능성을 연구한 최근 자료를 봐도, 연구는 복합적인 가정을 전제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드웨어는 갖춰져 있으나, 이를 제어하는 기술력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한계도 스스로 밝힌다.
연구가 궤도에 올랐다 해도 안전 문제가 남아 있다. 예로, 탄력 운전의 종류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회색 제어봉'이다. 이를 원자로에 넣고 빼며 핵반응 속도를 조절한다. 이런 출력 변화를 장기간 반복하다 보면 기계에 열 피로가 쌓이고, 설비에 균열이 가거나, 제논(방해 물질의 종류) 농도를 통제하지 못하는 등의 다종다양한 문제가 뒤따른다.
한수원 5년 전엔 "탄력 운전 어렵다"
이상적인 탄력운전이라면 몇 시간 만에 큰 폭으로 핵발전 출력을 줄이거나 늘리는 조정을 수시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로, '100-50-100(%)'과 '14-2-6-2(시간)' 사이클은 밤 시간 등 전력량을 줄여야 할 때 출력을 50%까지 낮춘다. 14시간은 출력 100%를 유지하고, 2시간에 걸쳐 출력을 50%까지 낮춘 뒤, 6시간은 낮은 출력을 유지하고 다시 2시간 동안 출력을 회복하는 식이다.
그러나 현재 이런 운전은 기술·안전상 문제로 불가능하다. 한수원은 현재 핵발전소출력을 최대 80%까지만 조절하고, 출력 제한 허용 일수는 18개월당 27일 내외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또 1시간에 3%씩까지만 서서히 제어하도록 규정하며, 붕산수 등을 주입해 출력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붕산수 활용은 반응 속도가 느려 즉각적인 출력 조절은 어려운 방식이다.
양수발전소는 핵발전의 경직성을 잘 보여주는 설비다. 출력 조절이 어려우니 밤 동안 전기가 남으면 양수발전소로 전기를 보내는 식이다. 양수발전소는 높이 차가 있는 상부 저수지와 하부 저수지를 두고, 핵발전의 남는 전력으로 하부 물을 상부로 끌어 올린 뒤, 이 물을 낙차 시켜 발전한다. 이 패턴을 계속 반복할 수 있다. 전국에 총 7개 양수발전소가 있다. 현재 3개를 더 지으려고 한다.
정재훈 전 한수원 사장은 2021년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핵발전의) 부하추종 운전은 애초 설계에 반영돼 있으면 몰라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며 "(국내 핵발전은) 부하추종이 어렵다"고 발언했다.
그러다 4년 후인 2025년, 한수원은 2032년부터 출력 제한 범위를 50%까지 늘리고 가동 일수도 1년에 100일까지 늘리는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당장 내년에 70%까지 범위를 늘리고 허용 일수도 1년에 100일 내외로 늘린다고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6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총 43개월 동안 '원전 탄력운전 기술개발' 사업을 진행한다. 총 503억 7000만 원가량의 연구사업으로, 정부 예산은 294억 원이 투입된다. 한수원, 한전원자력연료, 한전기술,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8개 기업·기관이 참여한다.
핵발전-재생에너지 조화, 과연?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100GW를 달성하려 한다. 35GW가량인 지금의 3배다. 동시에 지난 달, 총 2.8GW 규모의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0.7GW의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만들겠다고 확정했다. 11차 전력기본수급계획에 따르면, 핵발전 설비용량은 2030년 28.9GW에서 2038년 35.2GW로 늘어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지난 1월 성명에서 "세부적인 전력망 안정대책이 시급한 시점에,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워지는 원전을 추가 건설해 막대한 공공예산의 낭비와 좌초 자산화를 초래한다"며 "원전과 재생에너지간 이해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도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가동 안전성 문제 등으로 현재 핵발전소 출력제한엔 한계가 있다"며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월등히 많아지는 상황에서 2030년 이후 핵발전 경직성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할 경우, 조정이 어려운 핵발전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재생에너지 출력을 대거 제한해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 <한겨레>는 지난 1월 전영환 홍익대 교수 자문을 기초로 "(2038년에) 1년 중 6개월가량 원전 가동률을 최소 20%까지 줄이거나, 재생에너지 출력을 60~70%가량 강제로 제한해야 한다"고 예측했다.
문제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여름철이 아니라 수요가 절반가량 급감하는 봄가을에 발생했다. "핵발전에서만 약 33GW의 전력이 공급되고, 재생에너지에서도 약 56GW 전기가 생산되면서, 전체적으로 29GW 이상의 전력 과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스·석탄 등의 최소 유지 발전량까지 더하면 봄가을 낮 시간대에 최대 37GW에 달하는 전력 과잉 문제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출력 제한은 경제적 손해로 이어진다. 전력의 균등화발전단가(LCOE)는 발전소 건설부터 폐쇄 및 폐기물 처리까지 드는 총비용을 총생산 전력량으로 나눈 값이다. 이때 분모의 전력량이 낮아지면, 발전단가는 커진다.
비용의 80%가량이 초기 건설비와 금융 비용인 핵발전의 경우, 분자의 값은 어느 발전원보다 규모가 크다. 이때 분모의 값이 큰 폭으로 작아지면, 발전단가가 급증해 '가장 싼 전기'라 불렸던 이점도 사라진다. <한겨레>는 "기존 60원대에서 110원대로 전기요금이 두배 가까이 증가해 인상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도 '원전 확대 우려' 경고 있어
지난해 레오나르드 괴케(Leonard Göke) 박사 등이 에너지 전환이 100% 이뤄진 2040년 유럽의 핵발전 비용 효율성을 검토한 결과, "핵발전이 효율적인 대안이 되려면 발전소 건설 비용이 현재의 절반 수준인 kW(킬로와트)당 약 4000달러(2018년 기준)로 떨어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핵발전 탄력 운전이 가능해도 막대한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선 "실제로 90% 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해야 한다"며 결국 탄력 운전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진단했다.
2020년 영국 에너지운동 단체 '100percentrenewableUK'이 스코틀랜드의 풍력발전소 가동 중단 실태를 분석한 결과 "핵발전량이 많을수록 풍력 발전소 가동 중단률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핵발전소는 이런 상황에서 전력망 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할 수 없거나 기여하려 하지 않으며, 이는 재생 에너지의 발전을 저해하고 소비자가 낼 풍력 발전소 운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이헌석 정책위원도 시점의 차이를 우려했다. 가령 한수원은 기술개발을 통해 2032년부터 50%까지 출력을 제한할 수 있는 탄력운전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정부 계획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는 이미 2030년 100GW로 대폭 확충된다.
특히 신규 대형 원전 2기는 지금 바로 추진한다 해도, 부지선정부터 실제 가동까진 통상 13~15년이 소요된다. 2039~2041년경 건립이 완료된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40~50%까지 확대한다고 밝힌 시점이다.
그는 "배터리저장장치(BESS)나 전력수요 조절 등 다른 유연성 자원 확대가 없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한수원은 탄력운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터리-재생에너지 연계 주목
유연한 전력 수요 조절 수단으로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손에 꼽힌다. 그러나 한국의 에너지저장장치 투자는 지난해까지 답보상태였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지난 1월 공공데이터포털에 게시한 '발전자원별 전기저장장치' 통계를 보면, 저장장치 용량은 2021~2025년간 연평균 2.61%씩 증가했다. 저장장치 용량은 현재 총 11.34GW 정도다.
비영리 에너지 연구기구 Ember는 지난해 보고서를 내고 "배터리 기술의 발전과 가격 급락으로 인해 '24시간 365일 유지되는 태양광 발전'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고 분석했다. 이 단체는 "2024년 한 해에만 배터리 평균 가격이 40% 하락해 kWh(킬로와트시)당 165달러를 기록했다"며 "특히 저렴하고 화재 위험이 적으며 수명이 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경제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또 "일부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저장장치를 결합해 1년 365일 중 97%의 시간 동안 무중단 전력을 공급할 경우, 균등화발전단가는 104달러/MWh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이는 한 연구의 신규 핵발전 단가인 182달러/MWh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BloombergNEF)가 지난 2월 18일 낸 보고서를 보면 최근 배터리 가격은 더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4시간용 배터리 프로젝트의 글로벌 기준 비용은 전년 대비 27% 하락한 MWh당 78달러를 기록했다"며 "200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에선 풍력 발전이 2023년 이후 처음으로 가스 발전을 제치고 가장 저렴한 신규 발전원 자리를 탈환했다"며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광+4시간 배터리' 시스템이 가스 발전보다 낮은 비용으로 데이터 센터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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