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뮌헨 안보회의 '중국 세션'에서 아시아 정세를 논하는 가운데 일본의 대만 관련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아시아는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중국은 그 평화의 중류지주(中流砥柱, 주된 버팀목)*다. 그러나 일본의 최근 발언은 전후 질서를 뒤흔드는 위험한 신호다."
이 연설은 단순한 외교적 반박을 넘어, 오늘날 중국이 국제질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인식이 어떤 정념(情念)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평화와 진보의 관점에서 이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층위에서 보다 입체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1. "아시아는 평화롭다"는 진술의 정치성
왕이는 아시아를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지역"으로 규정했다. 이는 단순한 사실 진술이 아니라, 중국이 자신을 지역 질서의 안정자이자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서사적 선언에 가깝다. 실제로 아시아는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의 무력 충돌과 비교하면 대규모 전면전이 없는 상태를 유지해왔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 역내 공급망의 얽힘, 다자 협의체의 작동 등은 분명 지역 안정의 토대가 되어왔다.
그러나 평화의 표면 아래에는 구조적 긴장이 상존한다. 미중 전략경쟁의 장기화 속에서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 대만해협의 군사적 압박, 한반도의 군비 증강 등은 모두 불안정성을 내장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아시아는 평화롭다"는 언명은 현실을 부정하기보다, 긴장의 책임을 특정 행위자—주로 일본이나 미국—에게 귀속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갖는다.
평화 담론이 책임의 외재화와 결합할 때, 그것은 방어적 민족주의의 정당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진보적 관점에서 평화는 누가 '중류지주'인가를 선언하는 문제가 아니라, 상호 억제와 상호 절제, 그리고 상호 인정의 누적된 결과여야 한다. 선언적 평화가 아니라 관리된 평화가 필요하다.
2. 일본 비판: 역사 정의와 전략적 억제 사이
왕이는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집단자위권 행사 가능성" 언급을 전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며, 독일의 전후 청산과 일본의 역사 인식을 대비했다. 이 비교는 역사 정의의 차원과 전략적 억제의 차원이 동시에 작동하는 수사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는 여전히 현재적 문제다. 전쟁 책임에 대한 성찰 부족과 역사 수정주의적 움직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에 대한 경계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연설의 어조는 설득보다는 경고에 가까웠다. "다시 도박하면 더 빨리 패배할 것"이라는 표현은 외교적 대화의 언어라기보다 도덕적 규탄의 언어에 가깝다. 이 수사는 국제 청중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내 여론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도 읽힌다.
문제는 역사 비판이 일본 사회 전체를 잠재적 군국주의의 연장선에 두는 방식으로 일반화될 때 발생한다. 일본 내부에도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사회와 비판적 지식인 집단이 존재한다. 외교적 수사가 이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차단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긴장을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
3. 대만 문제와 '주권의 절대화'
왕이는 대만이 전후 국제질서 속에서 이미 중국에 반환되었다고 단언했다. 이는 중국 외교의 일관된 입장이며, 국제사회 다수 국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온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관점에서 대만 문제는 미완의 내전이자, 근대 굴욕사를 극복하는 민족 부흥의 상징이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안정은 법적 확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는 오히려 전략적 모호성과 상호 억제, 그리고 위기 관리의 축적된 관행 위에서 작동해왔다. 중국은 통일을 목표로 삼되 즉각적 무력 사용을 자제해왔고, 미국과 일본은 억제 신호를 보내되 공식적 독립을 지지하지는 않는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이 불안정한 균형이 충돌을 지연시켜온 것이다.
주권을 "이미 완결된 문제"로 규정하는 순간, 다른 행위자들의 안보 인식은 비합리적이거나 부당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도보다 상대의 위협 인식이다. 중국의 강경한 수사는 일본과 미국의 군사적 대비를 촉진하고, 이는 다시 중국의 포위 인식을 강화한다. 안보 딜레마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반복된다.
그렇다고 주권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주권 수호 방식을 위기 관리 체계와 소통 채널 속에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강경한 언어는 단기적 결속을 낳지만, 장기적 안정은 신뢰 구축과 긴장 관리 능력에서 나온다. 강한 선언이 반드시 강한 안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4. 정념(情念)의 정치
연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14억 중국인은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국가의 정책을 국민 전체의 감정과 동일시하는 방식이다. 대만 문제는 중국 사회에서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라, 굴욕과 부흥의 기억이 응축된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념은 정치의 강력한 자원이다. 그러나 외교에서 정념이 전략을 압도할 때, 정책 선택의 유연성은 줄어든다. 지도자가 국민 감정을 전면에 내세울수록, 향후 긴장 완화나 절충이 필요해질 때 정책 공간은 협소해진다. 감정은 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협상의 결론을 미리 봉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의 품격은 분노의 강도가 아니라, 그 분노를 제도적 언어로 번역하고 협상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정념을 동원하는 외교는 즉각적 결속을 낳지만, 정념을 절제하는 외교만이 장기적 신뢰를 축적한다.
5. 결론
왕이의 연설은 중국의 자신감과 역사적 감수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은 대만 문제와 일본을 둘러싼 강경한 인식이 동아시아 안보 딜레마를 더욱 선명하게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진정한 평화 담론은 세 가지를 동반해야 한다.
첫째, 상대의 위협 인식을 이해하려는 노력.
둘째, 군사적 수사 대신 외교적 설득의 언어.
셋째, 국내 결집용 정념과 국제적 책임의 분리.
아시아의 평화는 어느 한 국가의 선언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역내 국가 모두가 자국의 정념을 관리하는 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평화는 힘의 과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힘을 자제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정치적 성숙에서 시작된다.
* 中流砥柱: 황하(黃河)의 급류 한가운데 우뚝 선 바위를 비유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거센 흐름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버티는 존재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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