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속의 이란,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빛들

[다시! 리영희] 2026년 이란 시위의 배경과 전망

2026년 이란 시위를 촉발한 직접적 원인은 초인플레이션과 리알화 가치의 파멸적인 하락이다. 2024년 가을, 테헤란의 혼잡한 거리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리알화 가치가 아프가니스탄 돈보다도 못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때 100달러를 환전했을 때 손에 쥐기 힘들 정도의 돈뭉치를 받아야 했던 비현실적인 광경은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국민과 맺은 최소한의 사회적 계약이 파기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그 예감은 참혹한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2025년 한 해 동안 식료품 물가는 72% 이상 급등했으며, 평범한 시민이 테헤란에서 소형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100년을 저축해야 한다는 절망적인 통계가 제시되었다.

현재 이란인들에게 리알화 폭락과 무서울 정도로 인상되는 물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존하는 것'으로 격하시켰다. 이러한 물질적 박탈감은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아얀데 은행의 부실 대출 스캔들과 결합하며 국가가 보호자가 아닌 착취자로 전락했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번 시위는 단순한 생계형 저항이 아니다. 이는 1999년의 학생운동, 2009년 녹색운동, 2019년 경제난 시위, 2022년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의 파편들이 하나의 거대한 저항 서사로 수렴한 결과였다. 특히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은 이란 Z세대에게 혁명을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존적 정의의 문제로 각인시켰다.

아세프 바야트(Asef Bayat)가 개념화한 '사회적 비운동(Social Non-movements)'처럼, 평범한 이들이 일상 속에서 권리를 주장하던 행위가 이제 거리라는 광장을 통해 연대로 폭발하고 있다. 시위 초기 더 나은 삶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유모차에 어린 자녀를 태우고 나온 주부부터 학생과 상인 그리고 혁명 이전의 역사를 기억하는 중장년층까지 거리를 채웠다. 그러나 정부군의 잔혹한 진압 속에서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는 곧 거대한 묘지가 되었다.

이슬람공화국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역설적 질문이 남는다. 이처럼 끔찍한 인권 탄압과 대규모 희생 속에서도 이슬람공화국은 어떻게 건재할 수 있는가? 이 독특한 체제 유지의 비밀은 정권의 억압 기구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지 민병대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정규군 아르테쉬(Artesh)와 구별되는 평행 군사 기구1)로서, 정권 보호와 혁명 이념 수호라는 명목 하에 국가와 긴밀한 '상호 자원 의존(Mutual Resource Dependence)' 관계를 구축해 왔다.

국가는 IRGC에 법적 권한과 경제적 이권을 부여하고, IRGC는 그 대가로 정권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물리적 강제력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이란의 이슬람정권이 무너지려면 IRGC가 새로운 지도부에 편입되어야 하지만, IRGC 자체가 기득권이자 정권의 핵심이기에 이슬람공화국은 견고히 버틸 수 있는 것이다.

▲ 오토바이를 타고 행진 중인 바시지 민병대원들. ⓒ Iran International

바시지는 본래 1979년 혁명 직후 자발적 민병대로 출발했으나,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을 거치며 IRGC 산하로 편입되었다. 전쟁 종료 후 바시지는 학교, 공장, 사무실, 모스크 등 이란 사회의 일상 곳곳에 침투하여 평상시 감시와 사회 통제를 담당하는 기구로 변모했다.

특히 2026년 시위 진압에서 두드러진 것은 바시지의 ‘모자이크 방어 전략(the doctrine of mosaic defense)’이었다. 이는 중앙 지휘 체계가 마비되더라도 지역 사령관이 독자적으로 봉기를 진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분산하고, 바시지 대원을 동네 단위까지 촘촘하게 배치하는 분권형 억압 체계를 의미한다. 이란 전역에 설치된 3000개 이상의 바시지 기지는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내부 소요를 막는 최전선 역할을 수행한다.

바시지의 진압 전술은 잔혹하고 정교하다. 고도로 훈련된 오토바이 기동대를 투입해 초기 시위대를 분산시키고,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시위 주동자를 조준 사격하며 공포를 극대화했다. 시위대에 무차별 폭력을 가하며 시민들을 극한의 공포에 빠뜨린다.

이번 시위에서 보안군은 치료 중인 시위대를 체포하기 위해 병원을 습격하고 의료진에게 신원 보고를 강요하는 등 인도주의적 공간조차 억압의 현장으로 전락시켰다. 이는 아쉴 음벰베(Achille Mbembe)가 '시신정치(necropolitics)'라 명명한, 죽음을 통치의 도구로 삼는 권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망한 시위대의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는 대가로 막대한 금액을 요구하거나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 행위는 죽음마저 권력의 자원으로 전유하는 체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들이 이토록 잔혹하게 밀어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25년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군사 공습은 이란의 핵 시설과 군사 기반을 초토화했을 뿐 아니라 IRGC의 핵심 지휘관들도 줄줄이 제거했다. '저항의 축'이라 불리던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 등 역내 대리 세력들도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그 과정에서 밖으로는 안보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안으로는 연이은 대규모 시위가 신정 체제의 정당성 자체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란 정권에게 이번 시위는 단순한 소요 사태가 아니라 존립을 건 사활적 위기인 것이다.

더욱이 IRGC 엘리트들에게 갈 곳은 없다. 샤 시대의 엘리트들은 서구에서 교육받았고 망명 후 런던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삶을 재건할 수 있었지만, 이슬람공화국의 지도부는 훨씬 더 고립되어 있다. 그들에게 정권의 붕괴는 곧 자신의 종말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 '혁명 수호자들'의 자녀들이다. 정권은 서구를 '대악마'로 규정하며 반미·반서방 이데올로기를 설파하지만, 정작 고위 관료와 IRGC 간부들의 자녀 상당수는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이란 국민이 당장의 먹거리를 걱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배층의 2세들은 '적국'에서 유학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며 안전한 탈출구를 확보해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위선이 거리의 분노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디아스포라들, 사자가 되어 일어났다

정권 엘리트들의 자녀들이 서구의 풍요 속에서 안위를 누릴 때 같은 하늘 아래 타국을 떠돌던 수백만의 이란 디아스포라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답했다. 사실 이란 디아스포라의 본격적인 정치 참여는 이미 2020년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건, 2022년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을 거치며 질적인 변화를 맞이한 상태였다.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이후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이란인들은 단순한 관찰자에서 벗어나 고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체로 스스로를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2026년 현재 이 초국가적 연대는 정권의 심장을 겨누는 가장 강력한 디지털 전선의 전사가 되어 돌아왔다. 암흑 속에 놓인 고국의 사진들에 분노하며 그들도 거리에 나섰다.

이제 캐나다와 미국의 주요 도시들은 이란 밖의 또 다른 혁명 광장이다. 토론토와 밴쿠버,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에는 연일 수십만 명의 이란인이 모여 "독재자에게 죽음을" 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이들은 백악관과 오타와 의회에 실질적인 외교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대규모 국민청원을 주도하며,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국제적인 테러 단체로 지정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권의 숨통을 죄는 자금줄 압박은 더 이상 정부 간 협상만이 아닌, 거리에서 시작된 풀뿌리 외교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상징적인 저항의 장면들이 쏟아졌다. 캐나다로 망명한 이란 출신의 한 난민 여성이 이슬람공화국의 신성불가침 영역인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에 담뱃불을 붙여 태우는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는 단순한 반항을 넘어 40여 년간 이란 사회를 지배해온 공포의 상징 체계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선언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공포는 더 이상 통제 기제가 되지 못한다. 금기를 깨뜨리는 디아스포라들의 이러한 용기는 차단된 인터넷 대신 위성방송 등 우회망을 통해 이란 시민들에게 전달되면서 연대의 힘이 되고 있다.

▲ 캐나다로 망명한 이란 출신의 한 여성이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에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X 갈무리

그러나 디아스포라 내부의 결집이 강화될수록 그 정치적 지향점을 둘러싼 복잡한 층위의 쟁점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 연대 운동의 중심에는 샤(Shah) 시대의 부활을 상징하는 레자 팔레비(Reza Pahlavi) 왕세자가 구심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많은 디아스포라가 그를 포스트 이슬람공화국의 대안적 지도자로 호명하고 있지만, 그의 리더십은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엄중한 검증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특히 시위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노골적인 연호는 이란 혁명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2026년의 시위가 이전의 저항들과 무엇이 다른지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과거의 시위가 '개혁'을 요구했다면, 지금의 시위는 체제의 '종식'을 전제한다. 정권이 쌓아 올린 공포의 성벽은 이미 균열을 넘어 붕괴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고령화와 후계구도를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은 체제의 경직성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정권 내부의 '조용한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정권에 대한 분노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이 과연 이란 인민의 진정한 해방을 보장할 수 있는가? 외부 세력에 의한 인위적인 정권 교체는 역사적으로 더 큰 혼란과 폭력의 악순환을 초래했음을 우리는 목격해 왔다. 이스라엘의 폭격과 미국의 개입이라는 시나리오는 결코 자유의 씨앗이 될 수 없다.

또한, 외부 세력에 의한 인위적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는 리비아나 이라크의 사례에서 보듯 더 큰 혼란의 전조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폭격이나 미국의 군사 개입은 독재 정권에게 '외부의 적'이라는 선전 도구를 쥐여줄 뿐 진정한 민주화의 동력이 되기 어렵다.

진정한 변화는 이란 내부의 시민들이 스스로 주권을 회복하는 '자주적 혁명'의 과정에서 나와야 한다. 국제사회는 군사적 개입이라는 손쉬운 유혹 대신 이란 시민들이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디지털 통로를 확보해주고 그들의 목소리가 국제 무대에서 삭제되지 않도록 하는 '연대의 정치'에 집중해야 한다.

2026년 테헤란의 밤은 블랙아웃으로 어둡지만, 스마트폰의 불빛과 꺼지지 않는 저항의 의지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되고 있다. 이란의 봄은 거리의 피로 쓰여지고 있으며, 그 끝은 정권의 종말이 아닌 인민의 존엄이 회복되는 지점이어야 한다.

암흑 같은 무거운 이란의 일상 앞에서 디아스포라들이 활용하는 테크놀로지는 이러한 정치적 한계를 넘어서는 목격의 힘을 발휘한다. 정권이 인터넷을 차단하고 외신 기자의 출입을 막아 이란을 정보의 요새로 만들자, 해외의 아티스트들과 활동가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무기로 들었다. 이들은 이란 내부에서 전해지는 파편적인 음성 메시지와 텍스트 정보를 바탕으로 현장의 참상을 시각화했다.

AI로 생성된 극사실주의적인 시위 이미지와 영상들은 '보이지 않는 참상'을 '목격되는 역사‘로 치환했다. 테헤란 아자디 광장을 가득 메운 빛의 바다나 보안군의 총구 앞에 선 소녀의 강렬한 눈빛을 담은 AI 작업물들은 실제 사진보다 더 강력한 정서적 파급력을 발휘하며 국제사회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상상이 역사가 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결국 디아스포라들은 이제 이란 내부 소식을 외부로 전하는 수동적인 가교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테크놀로지와 정치적 압박을 무기로 정권의 선전 도구를 무력화하고, 이슬람공화국을 외교적 사면초가로 몰아넣는 '사자(使者)'가 되었다. 내부의 암흑이 짙어질수록 외부의 불빛은 더욱 밝게 타올랐고, 그 빛은 정권이 그토록 가리고 싶어했던 위선과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이란 사회,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현재 이란은 2026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인터넷 차단으로 인해 유례없는 정보 암흑기에 처해 있다. 이는 단순히 정보의 외부 유출을 막는 검열을 넘어 시민들 사이의 시공간적 연대를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개개인을 고립된 섬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1월 8일과 9일 사이, 이 '디지털 장벽' 뒤에서 수천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이번 사태가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가장 참혹한 국가 폭력으로 기록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시위는 공식 통계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 보이지만, 이는 결코 종결이 아닌 거대한 폭풍 전의 침묵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국민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며, 극소수의 시민만이 위험천만한 우회망을 통해 내부의 참상을 조각조각 전하고 있다.

그 파편화된 소식들 속에서 들려오는 "세페르, 내 아들 어디 있니?"라는 아버지의 절규는 이제 한 개인의 슬픔을 넘어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에게 자식을 빼앗긴 이란 전체의 비극이 되었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흐르는 그 짧고 참혹한 영상들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고통은 이란인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정서적 토대가 되고 있다.

이제 이란 국민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신정 체제가 수십 년간 공들여 쌓아온 통치의 정당성은 민중의 피와 눈물 앞에서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국가라는 이름의 보호자를 향했던 일말의 기대는 이제 거대한 집단적 이탈로 변모했다. 공포로 통제되던 시대는 저물고,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체제의 신성함을 믿는 이는 더 이상 거리에 남아있지 않다.

이번 2026년 1월의 사건은 단순한 시위의 한 국면이 아니라 이슬람공화국이라는 신정 체제가 내부로부터 해체되기 시작하는 결정적 전환점이다. 정권이 총칼과 인터넷 차단이라는 극단적 수단으로 거리의 목소리를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인플레이션으로 파탄난 경제, 생존을 위협하는 수자원 부족 등 체제가 해결 능력을 상실한 구조적 모순은 시간이 갈수록 이란 사회의 기초를 뿌리째 흔들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란 국민이 국가가 쏜 총탄에 쓰러진 무거운 주검들을 직접 목도했다는 사실이다.

피로 쓴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의 체제는 겉보기에 견고한 요새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내부의 공동화(空洞化)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다. 붕괴의 순간은 예고 없이 그리고 실로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결론적으로 2026년 이란 혁명은 마침표를 찍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투쟁이다. 이미 대다수 이란인은 현재의 신정 체제가 더 이상 자신들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블랙아웃'이라는 짙은 어둠 속에서도 시위대들이 스마트폰 불빛을 모아 만들어낸 '빛의 바다'는 침묵을 강요하는 권력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향한 근원적 갈망을 결코 끌 수 없음을 웅변하고 있다.

인권을 짓밟는 무자비한 탄압은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선 이들의 용기를 '폭동'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가둘 수는 더더욱 없다. 우리는 그들의 저항과 아픔을 잊지 않고 기록하며, 어둠이 걷히고 진정한 빛이 이란 땅에 내릴 때까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 필자 주석

1) 국가의 정규 군대와 별개로 존재하면서, 군대와 유사한 구조와 장비, 기능을 갖춘 준군사 조직이나 비정규 무장 단체를 뜻함-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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