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적 판단이 일상이 된 학교…"사과부터 하면 안 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학교폭력 제도가 만든 교실, 회복의 언어를 잃어버린 아이들

제도가 바꾼 학교 풍경

친구를 괴롭히거나 때리면 학교폭력 조치를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선생님이나 부모 등 양육자가 호되게 혼내고 반성하며 새사람으로 거듭나던 시절은 갔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지난 2004년 제정된 이후 꾸준한 개정을 거듭해왔다. 2020년 3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됐다. 학교 단위가 아닌 교육청 단위로 심의를 하면서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긴급조치 및 즉시분리조치 등 피해학생 보호조치가 강화되었고, 2024년 3월부터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가 전면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피해학생 보호를 강화함과 동시에 준사법적 판단이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으로 변화해왔다.

가해학생 조치사항의 학생생활기록부 보존기간도 달라졌다. 2024년 3월 이후 신고된 사안부터 가해학생에 대한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조치의 보존기간이 졸업 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됐다. 2026학년도 대입부터는 학교폭력 조치사항이 의무 반영된다.

교육과 제재의 경계에서

엄정 대응의 취지에 동의한다. 피해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도 옳다. 그러나 모든 사안이 중대한 학교폭력은 아니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폭력 사례만이 아니라 일상의 갈등, 감정적 충돌, 고의 없는 안전사고까지 학교폭력으로 신고되고 있다.

잘못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책임지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법제는 범죄를 저지른 소년에게조차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소년법은 보호처분이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있고(제32조 제6항), 소년보호 및 형사사건의 보도를 엄격히 제한하며(제68조), 관련 기관의 사건 내용 조회 역시 극히 제한하고 있다(제70조).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 교육이라는 법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의 제도가 균형 잡힌 과정과 결과를 내놓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의 문제 해결을 보여주고 있는가.

갈등의 기술적 회피를 배우는 아이들


학교폭력으로 신고된 사안이 사후에 학교폭력이 아닌 '일상적 갈등'으로 판단되더라도, 학생들은 이미 문제가 처리되는 방식 자체를 학습한다.

사안의 경중을 충분히 가리지 못한 채 제도가 일률적으로 작동할 경우, 학생들에게는 불합리의 감정이 남는다. '일단 사과부터 하면 안 된다'는 조언이 일종의 생존 전략처럼 공유되고, 학교폭력 신고 후 이루어지는 즉시분리조치에 대응해 기계적인 맞신고가 이루어진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장은 피해학생 측이 학교장 자체해결에 동의하지 않거나 일정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심의위원회 개최를 요청해야 한다. 학교는 갈등의 맥락이나 관계 회복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기 전에 절차를 우선 가동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도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자칫하면 한쪽 편만 든다거나 화해를 강요했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교육기관의 본래적 역할이 축소되고, 문제 해결을 단순히 법적 절차의 일부로 인식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사법화 경향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벗어난 교육적 개입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제도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는 역설적인 장면이 반복된다.

작아진 학교 안에서 더 필요한 '사회적 기술'


한편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기술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학생 수 감소로 다수 지역에서 학교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다. 전학이 아닌 이상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초등학교의 경우 최대 6년간 같은 학교에 머문다. 여러 이유로 학군을 벗어난 이사는 쉽지 않고, 학생들은 작아진 학교 안에서 장기간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갈등을 회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능력이다. 잘못을 인식하고 책임지는 법, 피해를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역량 등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학교폭력 사건의 전 처리 과정에 관한 것을 공동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적 합의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분리조치로 누군가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해석과 교육은 여전히 교사 개인의 역량에 맡겨져 있고, 그 공백은 소문과 왜곡으로 채워지기 쉽다. 학교는 학생들이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익히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제도는 그것을 지원해야지, 이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서울시교육청과 울산시교육청은 2025년 2학기부터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에 '관계회복 숙려제'를 시범 도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그 결과를 평가한 뒤 서울 전역으로 확대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도를 환영하며, 실효성 있게 운영되어 각급학교의 특성에 맞게 중, 고등학교에도 도입되기를 희망한다.

다시 목적을 묻는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뉴 노멀'

갈등을 법적 절차로 해결하는 방식은 이미 학교 현장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이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육자 세대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 변화가 어떤 미래를 만들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이 제도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조는 분명히 말한다. 이 법의 목적은 피해학생의 보호뿐 아니라, 가해학생의 선도·교육과 분쟁조정을 통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는 데 있다. 지금 제도는 이 중 무엇을 실현하고 있는가.

지금의 제도 운영이 이 목적에 얼마나 가까이 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사회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작고 치열해진 학교 안에서 교육의 언어를 놓치지 않는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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