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시위 사망 수천명으로 급증…중동 개입 꺼리는 분위기에 트럼프 '고심'

전문가 "체제 붕괴 기대는 시기상조·보안군 충성 굳건"…시위대 진료 의사 "8일부터 진압용에서 살상용으로 무기 바뀌어"

17일째 이어진 이란 시위 사망자 추산이 수천 명 규모로 급증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회담을 취소했다고 밝히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다만 미국은 베네수엘라 작전을 위해 중동 자산을 카리브해로 이동해 당장 군사 공격이 녹록지는 않은 상황이다. 막대한 희생자 규모가 이란 신정 체제의 위기를 반영하는 동시에 보안군의 충성을 증명해 정권 전복 기대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보건부 고위 당국자가 시위 관련 전국적으로 약 30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엔 보안군 사망자 수백 명이 포함됐다. 이 당국자는 사망자 발생 책임을 소요를 부추기는 "테러리스트"에 돌렸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도 신문에 최소 3000명이 숨졌다는 내부 보고서를 봤고 사망자가 더 늘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시위 사망자가 2000명가량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에 기반을 둔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란 고위 정부 및 보안 소식통들에 따르면 시위 사망자가 최소 1만2000명이고 이 중 대부분이 8~9일에 숨졌다고 전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도 13일 기준 사망한 시위 참여자가 2403명에 달했고 이 중 12명은 18살 미만 어린이라고 추산했다. 구금자는 1만8434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단체는 보안군 사망자도 147명이라고 집계했다.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NGO)은 13일 시위대 사망자 수를 734명으로 집계했다.

이란 정부가 인터넷 접속을 막기 시작한 지난 8일 이전에 인권단체가 집계한 시위 사망자 수는 수십 명 수준이었다. 사망자 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 불과 며칠간 수천 명이 학살된 셈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센터(CHRI)가 공개한 시위대를 치료한 의사 증언에 따르면 8일 저녁부터 시위대에 사용된 무기가 진압용에서 살상용으로 확연히 달라졌다고 한다.

단체가 11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해당 의사는 이전엔 "법집행군이 산탄총으로 산탄을 발사했고 당시엔 하루 5~6건 정도 머리나 두피에 산탄을 맞은 이들을 진료했다. 상처는 비교적 깊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8일 저녁에 병원에 가보니 "부상 양상과 총상 규모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8일 자정부터 산탄 부상은 더 이상 없었다. 사람들은 총알이 몸을 관통했다고 말했다. 실탄에 맞은 것"이라며 "근거리 사격이 가해졌고 부상은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시위대가 중기관총이 동원된 "살상용 총격"에 직면했다며 "정보가 막힌 상황에서 국제언론이 보도하는 이미지엔 현실의 1%로 반영돼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곧 도움" 준다지만…지지층 반발·중동 군사자산 카리브해 이동으로 쉽지 않을 듯

사망자 추산이 급증하며 트럼프 대통령 발언도 강경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시위대에 대한 무분별한 살인이 멈출 때까지 이란 당국자들과의 모든 회담을 취소했다"고 밝히며 외교적 해법에 대한 기대를 낮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전 이란과의 회담이 준비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게시글에서 "도움이 곧 도착할 것"이라며 "시위를 계속하라. 기관을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살인자와 학대자"들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란에서의 최종 목표가 "이기는 것"이라고 밝히고 '이기는 것'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최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를 포함해 집권 1, 2기에 수행한 군사 작전을 열거했다. 그는 이란 정권이 시위대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면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과 가까운 소식통들에 따르면 공개적으론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적으로는 확신이 덜 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 폭격 때보다 열의가 적어 보인다는 것이다.

JD 밴스 미 부통령을 포함해 고위 참모들부터 열성 지지층에 이르기까지 해외 군사 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집권 1기 때와는 달리 현재 트럼프 대통령 보좌진들은 중동 개입에 소극적이며 밴스 부통령의 경우 지난해 6월 이란 폭격을 지지하긴 했지만 중동 문제에 말려드는 것을 경계해 왔다고 밴스 측근들을 인용해 설명했다.

유럽 당국자들은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행정부가 12일 자국에 이란 내 잠재적 표적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지만 "핵시설이 목표물이라는 징후는 없었다"며 "시위대 살해에 책임이 있는 조직 및 군 지도부를 겨냥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압박을 위해 카리브해에 군사 자산을 집결시키며 중동에서 자산을 빼내 당장 군사 작전이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지중해에 머물렀던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은 지난해 11월 카리브해로 이동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마두로 생포 작전 몇 주 전에 중동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에서 항공기, 함정, 특수작전 요원 철수도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행정부 내부 생각에 정통한 소식통은 신문에 "베네수엘라 (작전) 지원을 위해 중부사령부에서 많은 자산을 철수해야 했다"며 현재 미국이 "보복 위험 없이 완전한 물리적 공습을 수행할 만한 역내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HRANA에 따르면 이란 전역 187곳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미국이 공습을 단행할 경우 민간인 사상자 발생도 우려된다. 군사 공격이 수행될 경우 역효과로 이란 정권 결집력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네수엘라를 포함해 단발성 공격을 선호해 온 트럼프 정부 군사 작전이 이란 정권 교체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낮고 체제가 붕괴될 경우 내전, 무장조직 난립 등 가능한 혼란에 대한 책임 있는 감독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이 "장기 작전을 원하지 않는 건 거의 확실하다"며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이 군 및 안보 지도부 30명을 사살한 뒤에도 이란 정권은 건재했고 미국의 몇 차례 시위성 공습으론 상황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체제 붕괴 기대는 시기상조'…막대한 희생자, 정권 절박함 보이는 동시 보안군 충성 굳건 증명

이번 시위로 이란 신정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막대한 사망자 규모는 정권의 절박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민 대량 살해 명령을 보안군이 거부 없이 수행 중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국 BBC 방송은 "이란 정권은 거대한 압박 아래 놓여 있지만 곧 무너지진 않을 거라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결정적으로 보안군이 충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지난 2주간 정권군은 길에서 동료 시민들에 총을 쏘라는 명령에 복종했다"고 지적했다.

지역 분쟁 및 미 외교정책 전문가 발리 나스르도 <로이터> 통신에 "이런 일이 성공하려면 거리에 훨씬 더 오랫동안 군중이 모여 있어야 한다. 국가 붕괴가 있어야 하고 국가의 일부 부문, 특히 보안군이 이탈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불만으로 시작해 반정부 구호로 이어진 이번 자생적 시위에 지도부와 조직이 없는 것도 지속성 면에서 한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부 분석가들이 이전에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한 폭력 사태 속에서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시위 동력이 약해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테헤란에 기반을 둔 한 분석가는 "폭력이 격화하면 중산층이 즉시 물러날 것이라는 점은 예측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이란 정부는 이미 12일 상황이 통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로이터>는 다만 체제 생존이 곧 안정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짚었다. 나스르는 이란 체제가 "몰락의 순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기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 ⓒAP=연합뉴스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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