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멈췄다. 그러나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미국과 이란은 60일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를 담은 양해각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서명과 이행은 아직 남아 있다. 핵문제는 타결된 것이 아니라 향후 기술협상으로 미뤄졌고, 동결 자산 해제와 제재 완화도 조건부 약속에 머물러 있다.
워싱턴은 이를 외교의 승리로 자축하지만, 이란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치른 비용은 작지 않다. 지도부 타격과 장기간의 폭격, 해상봉쇄와 경제적 압박이 뒤따랐다. 핵 문턱을 넘지 못한 국가가 협상장에 앉기 위해 감당한 전쟁의 비용이다.
사진 한 장에 매달리는 한국
한국에서는 곧바로 조미정상회담이 거론된다. 이란과 미국이 타협했다면 조선과 미국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에 올린 일도 그 기대에 불을 붙였다. 사진 한 장이 "좋은 시그널"로 읽혔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마저 이를 김정은을 만나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이자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진을 평화의 입구로 읽는 것은 지나치게 가볍다. 트럼프가 과거 회담 사진을 별도 설명 없이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정책 결정이나 실무 접촉, 의제 조율이나 대조선 메시지의 공식 발신을 뜻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망, 정상외교에 대한 자기 과시, 극적 장면을 선호하는 정치적 습관을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사진은 신호일 수는 있어도 전략은 아니고, 회상일 수는 있어도 협상은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정부의 반응이다. 통일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트럼프의 사회관계망 심리를 읽으며 조미정상회담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식 정상외교가 열리든 열리지 않든, 한국이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만들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미국 대통령의 사진 한 장에서 평화의 입구를 찾는 순간, 한국의 전략은 다시 기대의 외주화로 미끄러진다.
조선은 협상장이 아니라 출발선을 바꾸고 있다
조선은 이란을 성공 사례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조선이 이란에서 읽는 것은 외교의 승리보다 미국 합의의 불확실성이다. 정권이 바뀌면 약속은 흔들리고, 의회와 관료조직, 동맹국의 이해가 다시 개입한다. 군사공격과 협상은 분리되지 않으며, 압박과 제재는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카드로 남는다. 조선은 하노이에서 이미 그것을 경험했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움직였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조선이 이란에서 끌어낼 결론은 한국의 기대와 반대 방향일 수 있다. 이란은 핵무기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과 협상을 동시에 겪었다. 핵능력은 협상 카드였지만 핵무기는 아니었다. 조선은 바로 그 차이를 생존의 차이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핵을 내려놓으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핵이 없으면 더 쉽게 공격받을 수 있다는 오래된 판단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조선이 핵을 협상 카드가 아니라 헌법과 주권, 방위력의 언어로 고착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의 담화 역시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핵보유국 지위를 물러설 수 없는 한계선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비핵화를 말하고 주변국이 한반도 안정을 말해도, 조선은 협상의 출발점을 이미 옮겨 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새 핵물질 생산시설 시찰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에까지 못박아 놓은 조선이 말하는 것은 비핵화 협상 복귀가 아니라 핵무력 확대와 핵보유 지위의 정치적 고착이다.
조중정상회담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로동신문>은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을 1면부터 7면까지 대대적으로 다뤘다. 핵심어는 비핵화가 아니었다. 조중친선, 최대 국빈, 제1의 전략적 사업, 사회주의국가 간 관계의 본보기, 주권과 안전, 발전이익, 전략적 조정과 협력이 반복됐다. 조미대화와 남북관계는 전면에 없었다.
중국은 조선을 압박하는 비핵화 설득자가 아니라 조선의 전략환경을 지지하는 후원자로 등장했다. 조선은 중국을 최고 수준으로 예우했지만, 핵문제와 대남전략에서 관리받는 자리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여기서 조선의 현재 좌표가 드러난다. 조선은 러시아를 군사전략적 지렛대로, 중국을 경제·외교·정치적 안정판으로 삼고 있다. 전쟁 중인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군사협력은 조선의 몸값을 올렸고, 중국과의 전략관계는 외교의 후방을 넓혔다. 조선은 둘 중 하나를 고르려 하지 않는다. 둘을 병렬로 운용하며 미국을 향한 협상 문턱을 높이고, 한국을 향해서는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지속한다. 조선은 관리받는 대상이 아니라 관리질서를 활용하는 행위자로 자신을 세우고 있다.
이란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현재 좌표에서 조미정상회담의 필요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조중·조러 후방이 두터워질수록 조선은 회담의 절박성을 낮추고, 미국이 먼저 조건을 내리도록 기다릴 수 있다. 조선이 무응답과 무시를 전술로 쓴다는 분석도 타당하지만, 그 결과는 회담 가능성의 상승이 아니라 회담 문턱의 상승이다.
노벨상 욕심에 트럼프의 회담 욕구가 커진다고 조선의 협상 의향이 덩달아 커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회담 의지가 높아질수록 이제 핵을 가진 조선의 문턱은 오히려 높아진다.
조선이 다시 협상장에 나온다 해도 과거의 거래 목록을 들고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는 장기 목표이자 선전적 최대치일 수 있지만, 지금 그것을 회담의 직접 의제로 삼을 가능성은 낮다. 이제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결정적 유인이 아니다. 종전선언이니 연합훈련 축소와 전략자산 전개 제한도 2018년에 이미 소진된 카드에 가깝다.
조선이 요구하는 것은 보상의 크기가 아니라 협상의 문법 자체다. 비핵화 대 보상이라는 낡은 틀을 버리고, 핵보유 현실을 전제로 한 위험관리와 관계 재설정으로 들어오라는 요구다. 조선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미국이 무엇을 줄 수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이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없는지를 확인받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조미정상회담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트럼프식 외교는 극적 장면을 선호하고, 김정은도 필요하다면 정상외교를 활용할 수 있다. 대화 자체를 반대할 이유도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문은 열려 있어야 한다. 문제는 조미정상회담을 한반도 평화의 입구로 당연시하는 태도다. 미국이 비핵화를 출발점으로 고집하면 조선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핵보유 현실을 사실상 전제하고 위험관리로 접근한다면 대화는 열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대화는 한국이 기대하는 비핵화 협상도, 남북관계 복원의 자동 통로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더 위험한 경우는 한국이 빠진 조미거래다. 제한적 긴장 완화가 평화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한국 배제형 핵위험 관리와 핵보유 지위의 정치적 승인, 주한미군의 대중국 전략적 유연성 확대로 이어진다면 의미는 달라진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이 낮아지는 듯 보이는 순간, 한국은 오히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전략 구도에 더 깊이 묶일 수 있다. 평화처럼 보이는 거래가 새로운 연루의 입구가 된다.
회담을 기다릴 것인가, 평화관리를 시작할 것인가
미중정상회담 이후 시진핑이 평양에 가고, 이란 전쟁이 끝나고 트럼프가 김정은과 찍은 과거 사진을 꺼내들었다고, 지금 한국이 할 일은 조미정상회담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조중회담이 조미회담으로, 조미회담이 남북관계 복원으로 이어지리라는 순차적 기대는 현실성이 낮다.
조선의 전략에서 한국은 중재자도 촉진자도 아니며, 조선은 한국을 조중·조러·조미 구도와 분리해 적대적 두 국가의 틀로 따로 관리한다. 회담에 어떻게 끼어들지를 묻는 일조차 조미회담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기대의 외주화를 벗어나지 못한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회담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평화관리 장치를 무엇부터 만들 것인가.
그 답이 우리식 평화공존이다.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과거의 민족공동체 담론만 반복할 수도 없다. 기준은 조선의 선언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과 국민의 안전이어야 한다. 헌법 제4조의 평화적 통일 지향을 붙들면서, 장기 단절과 군사적 적대, 우발충돌의 위험을 함께 관리하는 제3의 길이다. 상대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되 적대성은 승인하지 않고, 전쟁을 막고 충돌을 관리하며, 시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관계를 제도화하는 구상이다.
그 핵심은 탈상호주의, 선제적 조치, 지속가능한 실천이다. 대화 재개나 정상회담을 선결조건으로 삼지 않고, 접경지역 주민 안전과 우발충돌 대응, 국회 보고와 위기 단계별 재검토처럼 조선의 상응 조치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한국이 먼저 제도와 루틴으로 남긴다. 조선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이며, 정권 교체와 선거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평화관리다.
이란 전쟁은 멈췄지만 조선의 학습은 끝나지 않았다. 조선은 미국이 무엇을 하는지, 중국이 어디까지 지지하는지, 러시아가 얼마나 필요한지, 한국이 얼마나 일관된 전략을 갖는지 보고 있다. 우리도 배워야 한다. 미국이 협상한다고 평화가 오지 않는다. 중국이 움직인다고 한반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국의 공간이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는 강대국 정상회담의 선물도, 조미정상회담의 부속 결과도 아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설계해야 할 생존의 질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조미정상회담의 재연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조선이 응답하지 않아도 작동하고 미국의 전략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으며 강대국의 움직임 속에서도 국민안전을 지킬 수 있는 평화공존의 기준선을 세우는 일이다. 기대의 외주화가 아니라 평화공존의 주체화, 그것이 사진 한 장과 평화를 구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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