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이번 주에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따로 있었다. 그러나 토요일인 3일에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대통령 부부 납치 소식을 듣고는 도무지 이 충격적 사건 말고 다른 문제를 깊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1년쯤 전에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12월 3일 밤, 윤석열의 비상계엄 시도를 겪고 난 뒤에도 역사를 그 전과 후로 나누는 대사건 앞에서 꼭 지금처럼 다른 화제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시도는 21세기 한국인들이 그간 공기처럼 당연시해온 일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는 전례 없는 침략 행위를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일상을 '과거'로 만들어버리고 전 인류에게 새로운 일상을 선포했다. 몇 세대에 걸쳐 당연시해온 문명의 기본 규범과 약속, 상식이 이토록 쉽게 폐지될 수 있다니 아연실색할 뿐이다.
트럼프 정부가 1월 3일 새벽(미국 시각)에 부숴 버린 것은 무엇인가? 니콜라스 마두로의 부패한 독재로 전락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주의 실험인가? 아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이 자신의 운명과 동일시해온 '자유주의' 문명이다. 과거의 선배 제국들 못지않게 패악을 부리면서도 항상 그 외피로 둘러대기를 잊지 않았던 '자유주의'를 이제는 더 극악한 제국의 행보를 위해 미국 스스로 폐기했다.
이와 동시에 우리 모두는, 베네수엘라인들과 미국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는 갑자기 세계사의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하고 말았다. 단순히 위선이 사라진 세상이 아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 적나라한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 열렸다.
국내외를 향해 자유주의의 폐지를 선포한 트럼프 정부
사실 '자유주의' 같은 말은 입에 담거나 글로 쓰기가 쉽지 않은 소재다. 보수주의나 사회주의만큼이나 자유주의 역시 참으로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그렇고, 아직까지 계속되는 사상사 연구자들의 숱한 논쟁 속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자유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과감히 생략한 채 그 정치적 측면만 부각해 이야기해보겠다.
정치적 측면의 자유주의는 일국적 차원에서는 주로 권력의 분립과 상호 견제, 균형으로 이해된다. 서유럽에서 자유주의가 절대 왕정과 투쟁하며 등장, 성장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이것은 확실히 자유주의의 가장 뿌리 깊고 일관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정치 권력을 필요악으로 보며(그럼 '다른' 권력은? 가령 경제 권력은? - 이것은 자유주의의 가장 중대한 역사적 한계를 직격하는 물음이다), 그래서 정치 권력의 구심을 다원화하는 제도를 지지해왔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권력을 민중의 것으로 만들자'는 민주주의와 긴밀히 협력하기도 했지만(민중은 엘리트들의 권력 분립과 상호 경쟁을 최대한 활용했다), 긴장을 빚기도 했다(민중이 모처럼 획득한 권력 역시 견제의 대상이 됐다).
이런 일국적 수준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국제적 차원에서는 국민국가들로 촘촘히 구획된 세계로 변주됐다. 저마다 자기 국경 안에서 주권을 행사하면서 다른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는 국가들이 지구 위를 채우고, 이런 국가들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된다고들 말하는) 세계시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대등하게 협력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를테면 전 지구적 수준에서 절대 권력 형성을 막는 길이었다.
다만, 영국이 자유주의의 종주국 노릇을 하던 시절에는 이런 구상 자체가 없었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다음 종주국을 자임한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내놓은 구상이고, 이 나라는 이 명분 아래 지난 80여 년간 패권을 유지했다. 물론 이 시기에도 국민국가들 사이의 불평등은 의연히 유지됐다. 하지만 불평등한 질서라 하더라도 최소한 영국식 식민주의가 아니라 미국식 자유주의의 외양을 띠려고 노력하기는 해야 했다. 너무나 진부한 지적이겠지만, 이것은 곧 대한민국의 탄생사이기도 하다.
새해 벽두에 트럼프 정부는 바로 이러한 한 시대의 문명적 골조를 일격에 무너뜨려 버렸다. 우선, 의회 결의도 없이 전쟁을 개시함으로써 미국 내부에서 자유주의 헌정이 붕괴했음을 확인했다. 미합중국 헌법은 선전포고를 결정할 권한이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에 있다고 못 박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의회가 선전포고를 결의하거나 심의하기는커녕 침공 계획을 인지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수도를 타격했고 대통령 부부를 납치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명확히 지적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헌법을 위반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다. 상원이든 하원이든 의회가 뒤늦게나마 군사 행동을 중단시키고 대통령 탄핵에 나설 것 같지도 않다. 이미 작년부터 시작된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한 위헌-위법적 통치의 연장선에서 베네수엘라 침략-식민화는 흔들림 없이 관철될 분위기다. 즉, 미국에서 권력의 분립과 견제라는 자유주의의 핵심 원리는 이미 작동 불능 상태다. 대통령의 의지가 국가기구 전체에 일사불란하게 관철되며 의회나 법원은 이를 저지하기 힘든 '대통령 국가'가 사실상 확립됐고, 다음 번 대중 투표(중간선거 혹은 차기 대선)만이 이를 좌절시킬 마지막 제도적 장치이자 기회로 남아 있다.
사실 고대 로마 공화국의 독재관 제도를 본뜬 미국산 대통령제는 처음부터 전시 최고 사령관(=대통령)이 국내외에 독재 권력을 수립할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신봉한 고상한 자유주의 원칙의 논리적 결과라기보다는, 국내적으로는 지주-자본가 지배 국가를, 국제적으로는 신생 제국을 바란 그들의 계급적 본능이 이런 원칙을 압도하면서 탄생시킨 제도다. 다만, 자유주의자들의 마지막 양심이 그나마 발동하여 의회의 선전포고 권한 독점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들이 헌법에 명기됐다. 그러나 지금 트럼프 정부는 이런 안전장치들마저 짓밟으면서, 대통령제에 잠복해 있던 최악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폭발시키고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대통령주의의 최종 승리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자유주의 문명의 사망은 더욱 극적인 모습으로 선포됐다. 한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한밤에 다른 국가에 의해 최후통첩이나 선전포고도 없이 납치돼 타국 법률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됐다. 냉전기나 '테러와의 전쟁' 시기에 미국이 굳이 음지에서 온갖 궂은일을 감수하면서도 외관상 넘어서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모든 금도가 하룻밤 사이에 까마득한 옛날일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주권'이라는, 본래부터 애매했던 원리가 완전히 빈껍데기로 전락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베네수엘라를 미국 정부가 '운영(run)'하겠다고 공포했다. 이론의 여지없는 식민지화 선언이다. 즉, 현 미국 정부는 지난 세기에 자신들의 선조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어렵사리 확립한 지구적 차원의 자유주의 질서를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대신 영국식 식민주의를 뒤늦게 추수하던 윌리엄 매킨리와 시어도어 루즈벨트 시기의 대외 정책으로 회귀했다. 미국식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사라지고, 역사책에서만 보던 고전적 제국주의가 미국 자신에 의해 돌아온 것이다.
미국이 자유주의를 폐기한 시대에 다시 보는 자유주의의 유산
오랫동안 좌파는 미국식 자유주의의 가식과 위선을 비판해왔다. 그 이면에서 실은 또 다른 제국주의가 작동한다고 폭로해왔다. 그렇다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략 이후 국면은 단지 이런 고약한 진실에서 껍데기 하나가 벗겨진 데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자고로 제국이 주도한 문명치고 위선 덩어리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바로 이 위선이야말로 늘 인류 전체가 가장 추악한 야만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받쳐주는 최후의 안전망이었다. 미국이 아직 '젊은' 제국이던 시절에 내세운 이런 위선적 문명의 이름이 바로 '자유주의'였다. 그런데 이 '자유주의'가 미국 자신에 의해 폐기된다는 것, 이것은 문명 자체가 다시 한 번 존립의 위기에 빠졌음을 뜻한다. 야만의 시간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새삼, 대한민국 시민들이 1년여 전부터 겪어온 시간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12월 3일 밤과 그 후의 나날들 속에서 시민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것들의 목록에는 시민들 자신이 의식했든 못했든 '자유주의'도 있었다. 비상계엄 포고령 1호에 맞서 시민들이 국회를 지켜낼 때 그곳에는 대통령주의에 압살 당하려다 살아남은 정치적 자유주의가 있었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를 무력화시키려 하거나 법원이 제 역할을 못할 때마다 끓어오른 대중의 분노 역시 알게 모르게 자유주의의 원리를 실체화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 미합중국 정부가 무참히 파기하는 자유주의를 한국 시민들은 기를 쓰고 살려낸 셈이다.
너무나 극적인 이 엇갈림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미국의 한 피후견국 시민들이 철지난 유행을 좇은 것인가? 본산지에서마저 버림받은 낡은 이념에 미련스럽게 집착한 것인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묘한 엇갈림은 자유주의 역시 세계사 속에서 중요한 이념들이 밟았던 궤적을 반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자유주의의 주역이 바뀌고 있고, 그러면서 자유주의는 과거의 위선적 보편성과는 구별되는 보편성을 획득해가고 있다.
미국 정부와 전 세계 지배블록의 최상층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헌신짝처럼 버렸지만, 저항 세력은 그런 자유주의를 자신의 무기고에 추가해 넣어야 할 절박한 처지에 있다. 일국 수준에서 자유주의는 '대통령 국가'에 맞서 정당과 노동조합,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지켜내야만 하는 민중들의 무기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국제적 차원에서는, 베네수엘라 다음의 공격 목표를 찾는 트럼프 정부를 상대해야 할 운명인 멕시코, 브라질, 덴마크 같은 나라들이 가장 먼저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담론이 되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미국에 침략의 빌미를 준 베네수엘라 차베스주의의 실패 역시 정치적 자유주의의 적극적 재평가와 보편적 계승이라는 맥락에서 곱씹어볼 수 있다. 차베스주의 체제는 (적어도 마두로 정권 이전까지는) 자유선거와 민중 참여를 동반한 '민주적 사회주의'의 한 형태로 평가받았지만, 정치 권력의 분산이라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원칙을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권력을 고도로 집중시켰다. 돌이켜보면, 이는 미국식 대통령주의의 또 다른 거울상이었고, '자유주의가 부족한' 사회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였다. 즉, '민주적 사회주의'란 좌파가 상상해왔던 것보다 더 '자유주의와 긴밀히 결합된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여야만 한다.
아무튼 요점은 이것이다. 야만의 시간일수록 새 문명의 기초를 다지는 근본적 고민과 토론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고민의 토론의 쟁점은 실로 여러 가지이겠지만, 지배자들 자신이 미련 없이 폐기 처분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재평가와 계승이 여기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윤석열 일당의 친위쿠데타 시도에 대한 진압을 내란범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 정도로 그칠 게 아니라 시민들이 지킨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재정리하는 논의로 이어가야 한다. 이럴 때에만 한국의 시간과 미국의 시간 사이의 기묘한 엇갈림은 더욱 뚜렷한 역사적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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