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이후 장애인은 어떤 이유로 고립감을 느낄까?

[서리풀연구通] 부정적 시설 경험 예방, 탈시설 후 지원제도 중요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22년 9월 '긴급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통해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다시금 강조하며, 장애인에 대한 시설 수용을 종식시킬 것을 각국에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에서는 시설 수용 폐지, 신규 입소 금지, 지역사회 기반 지원 등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이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탈시설지원법 역시 제정되지 못했다. 2025년 8월에 노숙인 요양시설 원주복지원에서 발생한 장애인 학대 사건은 시설 내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열악한 환경과 장애인 자립지원법의 빈틈을 드러내기도 했다.

탈시설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시설거주 경험이 장애인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위해 어떤 정책적 조율이 필요한지에 대해 보다 활발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탈시설과 관련된 단편적인 접근들은 탈시설 이후 많은 장애인이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며, 따라서 탈시설 정책이 오히려 장애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시설에서의 부정적 경험, 한국의 부족한 지원 제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장애인의 고립감을 '탈시설' 그 자체에 환원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접근을 넘어, 오늘 소개할 연구는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장애인들이 시설 경험 및 지원제도와 관련하여 왜, 어떠한 경로로 고립감을 느끼는지를 보다 구조적으로 살핀다(☞논문 바로가기: 탈시설 장애인의 고립감의 구조: 건강 상태, 시설화 경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 및 고립감 간의 관계).

특히 그 원인을 개인적 차원이 아닌 구조적 차원에서 파악하기 위해 건강상태, 시설화 경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이라는 요인들 위에서 고립감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조명한다. 그간 국내에서는 고립감에 관한 연구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장애인의 고립감은 거의 부각되지 못했고, 한국은 탈시설정책 도입단계이기에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연구는 더더욱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연구는 탈시설 장애인이 경험하는 고립감의 원인과 경로를 살피고, 탈시설 정책의 보완점을 도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장애인 거주시설, 정신건강 증진시설, 기타 집단거주 형태의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한 후 퇴소하여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등록장애인 365명을 대상으로 2023년 6월부터 9월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응답을 바탕으로 한 모형의 적합도 검증 결과, 시설에서의 부정적 경험은 지원제도 체감도와 사회자본을 직접적으로 낮추는 영향을 주고 있었다. 비슷하게 건강상태가 나쁠수록 지원제도 체감도와 사회자본이 악화되었으며, 고립감은 높아졌다. 한편 지원제도 체감도가 높을수록 사회자본은 커지고 고립감은 낮아졌다.

나아가 연구는 시설화 경험이 지원제도 체감도를 거쳐 사회자본과 고립감에 미치는 간접효과 역시 드러냈다. 즉 시설에서 부정적 경험을 했을수록 지원제도 체감도가 낮아지고, 그 결과 사회자본이 낮아졌으며 고립감은 심화되었다. 한편 건강상태가 나쁠수록 지원제도 체감도가 낮아지고, 그 결과 사회자본이 감소하며 고립감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탈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고립감의 주요 원인으로 시설거주 경험을 부각시킨다. 시설에서 장기간 생활하거나 시설 환경이 열악했을 경우, 사회적 관계망이 약화되고 지역사회에서 제공되는 제도적 지원으로부터 충분히 도움을 얻지 못하며, 나아가 시설 밖에서도 사회적 고립과 정서적 외로움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설화로 인해 훼손된 사회적 관계와 제도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구축할 때에 실질적인 권리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탈시설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채 다수의 장애인이 다양한 시설에 입소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관련영상 바로가기), 시설 경험이 미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을 드러내는 이 연구의 시사점은 매우 중요하다. 연구는 국가가 장애인의 부정적인 시설 경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시설화를 경험한 경우에도 탈시설 이후 시설화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제공해야 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지원은 당사자의 생애경험과 사회적 맥락,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탈시설에 대한 다양한 논의 위에서, 2026년은 한국 사회가 장애인들의 탈시설권리를 위해 더 큰 걸음을 내딛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서지정보

전근배 & 조한진. 2025. “탈시설 장애인의 고립감의 구조: 건강 상태, 시설화 경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 및 고립감 간의 관계”. 보건사회연구. 45(2): 122-147.

https://doi.org/10.15709/HSWR.2025.45.2.122

▲2025년 4.20 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투쟁단 출범식.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