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은 불가능하다”는 반발에도…용인 반도체 논쟁, 왜 ‘새만금’이 거론되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용인시

착공 단계 국책사업 흔들기 논란 속 전력·에너지·균형발전 문제 수면 위로

전면 이전은 현실성 낮지만 ‘수도권 집중’ 재검토 요구는 정치권·시민사회로 확산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지방 이전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지역 간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착공 단계에 들어간 국가 핵심 산업 프로젝트를 두고 “현실성이 없다”는 수도권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북 지역 정치권과 정당 조직,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논쟁이 단순한 이전론을 넘어 수도권 집중형 산업 구조와 에너지 전략의 한계를 드러낸 사안이라는 문제 제기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논쟁의 계기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언이었다.

김 장관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모두 입주할 경우 전력 사용량이 약 15GW, 원전 15기 분량에 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제는 전기를 끌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이 전기가 많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됐다.

현재까지의 사업 진행 상황을 고려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면 이전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투자 계획 발표 이후 6년 만인 올해 착공에 들어갔고, 삼성전자 역시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토지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수년간 행정 절차와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가 진행된 상황에서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혼란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 ⓒ경기도

전력·용수·인재라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필수 요건 역시 용인 중심 전략의 근거로 제시된다. 수도권에는 주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연구 인프라가 밀집해 있고, 대규모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하천·댐 기반의 물 공급 체계도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는 “전력 문제만으로 이전을 거론하는 것은 산업 생태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새만금을 대안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은 특정 정치인 개인의 발언을 넘어 조직적 흐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을 비롯해 전북 지역 국회의원들과 정당 조직은 공식 입장이나 개인 SNS를 통해 “용인 반도체 논쟁은 국가 균형발전과 에너지 전략을 재점검하라는 신호”라며 새만금을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역시 공식 입장문을 통해 새만금 이전을 포함한 국가균형발전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30일 개인 SNS를 통해 “수백 건의 반대 기사는 오히려 새만금이 대안이라는 점을 방증한다”며 “전기가 없어 중단될 위기에 놓인 용인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가 흐르는 땅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인 반도체 2단계 사업의 규모와 파급 효과를 언급하며, 반도체 산업 성장 동력의 수도권 집중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역·기초의회와 시민사회가 결합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전북 시·군의회와 여러 시민단체가 참여한 ‘반도체클러스터 새만금유치추진위원회’는 새만금을 전력과 에너지 기반의 대안 입지로 검토해야 한다며 공개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지산지소’ 원칙을 반도체 산업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반도체클러스터 새만금유치추진위원회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안호영 위원장이 지난 29일 전주역 광장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 이전 촉구’ 서명 동참을 요청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안호영 의원 페이스북

정당 차원의 연대도 형성됐다. 기본소득당과 녹색당 등 일부 진보정당 전북자치도당 연합은 공동성명을 통해 “수도권에 반도체 산업을 계속 집중시키는 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며 새만금 이전 또는 분산 배치를 촉구했다.

시민사회 연대체와 송전탑건설백지화 전북대책위 등도 “비수도권은 수도권의 전력 공급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반도체 산업 입지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국회의원과 송전탑건설백지화 전북대책회의가 지난 12월 8일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국가 에너지 전환과 지역균형발전 토론회’를 열었다. ⓒ전북도의회

전북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수도권 전력 수급의 구조적 한계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상시적으로 요구하는 산업인데, 수도권에서는 송전망 포화와 주민 반발로 대규모 전력 인프라 구축이 반복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실제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전력 공급 문제가 주요 과제로 거론돼 왔다.

반면 새만금은 대규모 재생에너지 집적지로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의 대안으로 언급된다. 전북 지역에서는 이를 근거로 “당장 용인 클러스터를 접자는 것이 아니라, 향후 반도체 산업 확장 과정에서 전력 집약 공정이나 연구·실증 기능을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면 이전보다는 기능 분산과 단계적 확장에 무게를 둔 접근이다.

결국 이번 논쟁은 ‘이전 가능성’을 둘러싼 공방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향후 확장 전략을 어디에, 어떤 구조로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착공에 들어간 용인 클러스터의 전면 이전은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가 많지만, 수도권 집중 구조의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는 여전히 정책적 과제로 남아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양승수

전북취재본부 양승수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