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오염수 해양방출은 '구조적 폭력'

[후쿠시마오염수 해양투기를 둘러싼 진실] ALPS처리수, 바다로 전가되는 위험의 정치학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는 이즈음이면, 사회는 늘 '이제는 정리해야 할 것과 새로 시작해야 할 것들'을 돌아본다. 그러나 후쿠시마원전사고는 그런 시간의 구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고 발생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후쿠시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정부는 2023년 8월부터 다핵종제거장치(ALPS)로 처리한 오염수의 해양방출을 시작했고, 2024년과 2025년에도 방류는 계획대로 이어지고 있다. 방류 횟수와 총량은 점차 누적되고 "문제 없다"는 설명도 반복되고 있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최근 들어 일본 내외에서는 방류 이후의 장기적 영향, 해류를 통한 확산 가능성, 어업과 연안 지역사회에 미칠 지속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의 대응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제기준을 충족했고,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설명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처럼 제시된다. 해가 바뀌어도 정책의 언어는 바뀌지 않는다.

새해를 맞는 지금, 우리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정말 이 문제는 '안전한 기술적 관리'의 문제에 그치는가. 사고 이후의 대응 방식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방사능 수치와 기준을 넘어, 정책과 행정이 작동하는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개념이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제시한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다. 갈퉁의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폭력, 평화, 평화 연구)>(Journal of Peace Research, 1969)는 '구조적 폭력' 개념을 소개한 대표적 논문이라 할 것이다. 갈퉁의 '구조적 폭력'은 총이나 폭탄처럼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제도가 특정집단에게 지속적인 피해와 부담을 강요하는 상태를 뜻한다. 가해자는 명확하지 않고, 절차는 합법적이며, 피해는 천천히 누적된다. 후쿠시마오염수 해양방출과 방사능 오염토 재생이용 정책은 바로 이 구조적 폭력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후쿠시마오염수 문제는 단순한 찬반논쟁이나 기술적 안전성 문제를 넘어 일본의 '안전·안심 행정'이 어떤 방식으로 위험을 특정지역과 집단에 전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왜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게끔 한다. 더 나아가 이 문제 틀이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 부산 고리원전 수명연장 논란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도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맞닿은 지금이야말로, 이 구조를 다시 질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2011년 3월 11일에 멈추지 않았다. 폭발과 멜트다운(노심용융) 이후 일본 사회는 "사고 이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더 어려운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ALPS로 처리한 오염수의 해양방출, 방사능 오염토의 재생이용 정책은 그 질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답이었다. 이 답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일본 정부는 ALPS처리수 해양방출을 "국제기준을 충족한 과학적으로 안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방사성 핵종 대부분을 제거했고, 삼중수소는 국제기준 이하로 희석해 방류하므로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시민의 불안과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 문제는 단순한 과학적 안전성 논쟁이 아니라 이 정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 즉 누가 결정하고 누가 감당하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사회학자 나카야마 케이타(中山敬太)는 <후쿠시마원전사고 대응책에서 ALPS처리수 해양방류와 방사성 오염토양 재사용에 관한 구조적 문제-일본의 안전·안심 행정과 요한 갈통의 구조적 폭력론의 관점에서(福島原発事故対策におけるALPS処理水の海洋放出と放射能汚染土の再生利用に関する構造的問題-日本の安全·安心行政とヨハン·ガルトゥング<構造的暴力論>の観点から)>(<場の科学> 通巻 第7号 Vol.3, No.1, 2023.7)'에서 후쿠시마사고 대응정책을 요한 갈퉁의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개념으로 분석한다. 갈퉁에 따르면 구조적 폭력은 누군가가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사회구조와 제도가 특정 집단의 생존 가능성과 안전을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상태를 의미한다(Galtung, J. 1969.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 Journal of Peace Research, 6[3]). 가해자는 특정되지 않고, 피해는 분산되며, 책임은 제도와 절차 뒤에 숨는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이 정의에 놀라울 만큼 잘 들어맞는다.

▲ 일본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오염수 투기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1. ALPS 처리수 해양방출: '안전기준'이 가리는 것

ALPS처리수 방류 논의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기준치 이하', '국제기준', '과학적 안전성'이다. 이 언어는 정책을 기술적 문제로 환원한다. 방사능 농도가 일정 수치 이하라면 정책은 정당하며, 그 이상을 문제 삼는 것은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이 있다. 바로 불확실성과 장기적 영향, 그리고 피해의 분배 문제다.

해양은 단순한 폐기공간이 아니다. 바다는 연안생태계, 어업, 지역공동체의 생계와 직결된다. 방류로 인한 위험이 실제로 얼마나 될지는 장기적 관측과 해류·생물농축 등 복합적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정책은 '문제 없다'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맞는 과학적 근거를 선택적으로 동원한다. 나카야마는 이를 일본식 '안전·안심 행정'의 전형으로 지적한다.

그는 ALPS처리수의 해양방출을 둘러싼 제 문제를 △UNSCEAR(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의 견해는 '삼중수소의 피폭리스크나 피폭위험성을 결코 '제로'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와타나베, 2021)는 점 △삼중수소를 포함한 ALPS처리수의 해양방출로 피해가 '있다'는 리스크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다 △삼중수소의 위험성의 '인위적 과소평가'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또한 ALPS처리수 해양방출의 문제와 그 구조는 △해양방출설비의 실시계획을 '원자로 등 규제법'에 의해 인가를 했으나 구체적인 명문규정이 없고 △리스크요인으로 피폭, 암발별, 유전성영향, 생물농축 등이 있고 △피해의 불가역성이 있으며 △예방적 조치 가능성이 없고 △리스크커뮤니케이션 상황이 불충분하다고 나카야마는 강조했다.

구조적 폭력의 핵심은 결정권과 부담의 분리다. 오염수 방류를 결정하는 권한은 일본 정부와 규제기관, 전문가집단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그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불안과 경제적 손실은 연안지역 주민과 어업종사자, 나아가 주변국 시민들에게 분산된다. 피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책임은 흐려진다. 이것이 구조적 폭력이다.

2. 방사능오염토 재생이용: 위험의 '육상 전가'

ALPS처리수 해양방출과 함께 논의되는 것이 방사능오염토의 재생이용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사고 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오염토를 장기 보관하는 대신, 일정 기준 이하의 토양을 공공사업 등에 재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는 비용 절감과 공간 문제 해결이라는 행정적 합리성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카야마의 분석에 따르면 이 정책 역시 구조적 폭력의 성격을 지닌다. 오염은 국가적 재난이었지만, 그 관리 부담은 특정 지역사회로 이전된다. 재생이용의 기준은 기술적으로 설정되지만, 장기적 건강 영향과 사회적 수용성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 주민참여는 형식적 절차에 머무르고, 실질적 거부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위험은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 지역에 고착된다.

3.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해양방출 사례들

이러한 구조는 후쿠시마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흐르는 티후아나강 사례를 분석한 연구는 하·폐수가 해양과 연안으로 유입되면서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현상을 '환경적 구조적 폭력(environmental structural violence)'으로 개념화한다(Calderón-Villarreal, A. et al. 2022. Environmental structural violence in the binational Tijuana River. Social Science & Medicine, 305.[3]). 오염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책임은 분산되지만, 피해는 특정집단에게 반복적으로 귀속된다.

또 다른 연구 사례로 방글라데시 등지의 선박해체(shipbreaking)산업 분석이 있다. 독성물질이 해안으로 흘러들고, 그 피해는 저임금 노동자와 지역주민에게 집중된다. 이 역시 국제규범과 기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위험이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전가되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한다(Dewan, C. & Sibilia, E. A. 2024. Structural violence and the toxic flows of shipbreaking. Environment and Planning C).

이들 사례는 중요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바다로의 방출은 언제나 '공유재'를 명분으로 하지만, 그 부담은 결코 공유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역시 같은 구조 위에 놓여 있다.

4. '느린 폭력'과 구조적 폭력의 결합

남미의 환경학자로 미국 위스콘신대 롭 닉슨(Rob Nixon) 교수는 <Slow Violence and the Environmentalism of the Poor(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2011)에서 환경 피해를 '느린 폭력'이라고 불렀다. 즉각적인 폭발이나 사망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누적되는 피해라는 의미다. 후쿠시마오염수 해양방출은 이 느린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 결합한 사례다. 당장의 참사는 없을지 몰라도 불안과 경제적 손실, 환경적 부담은 장기적으로 누적된다. 그리고 그 부담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5. 구조적 폭력을 넘어서는 길: 과정의 민주화

후쿠시마 오염수 논쟁은 흔히 찬성과 반대의 대립으로 단순화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감당하는가. 구조적 폭력을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안전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안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민주화다.

정보는 완전히 공개되어야 하고, 불확실성은 솔직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이해당사자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결정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해양이 공유재라면, 그에 대한 결정 역시 공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ALPS처리수 해양방출과 오염토 재생이용은 앞으로도 '합법적이지만 폭력적인 정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후쿠시마사고는 자연재해로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의 고통은 정책과 구조가 만들어내고 있다. 구조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오래 지속된다. 이제 우리는 기술의 언어가 아니라 권리와 책임의 언어로 이 문제를 다시 묻기 시작해야 한다.

6. 구조적 폭력은 국경을 넘는다―후쿠시마에서 고리까지

후쿠시마오염수 해양방출을 구조적 폭력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 틀은 한국, 특히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고리원전 수명연장 논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위험을 감당하는 지역과 결정을 내리는 권력이 분리되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가 반복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후순위로 밀어내는 양상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전은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용 원전이다. 이곳은 현재도 다수의 노후원전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고리1호기는 2017년 영구정지되었지만, 고리2호기를 비롯한 다른 원전들은 설계수명을 넘겨 계속운전(수명연장)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논리는 후쿠시마오염수 방류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기준을 충족했고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고리원전 수명연장 역시 구조적 폭력의 조건을 충족한다. 첫째, 결정권은 중앙정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집중되어 있다. 둘째, 사고 발생 시 직접적인 피해는 부산·울산·경남 시민이 고스란히 입는다. 셋째, 수명연장으로 발생하는 고준위핵폐기물과 장기적 위험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넷째, 지역주민의 의견 수렴은 형식적 절차에 머무르고, 실질적인 거부권이나 결정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 구조는 갈퉁이 말한 구조적 폭력의 핵심 요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폭력은 눈에 띄지 않게 제도 속에 내장되어 있고, 누구도 직접 가해자로 지목되지 않는다. 모든 결정은 합법적 절차를 거친 것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특정 지역과 집단에 지속적인 위험과 불안을 강요하는 것이다.

특히 고리2호기 수명연장은 부산의 폐로산업과 에너지전환의 기회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고리1호기 폐로를 계기로 부산이 '원전 해체와 전환의 도시'로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수명연장은 다시 원전의존 구조를 연장한다. 이는 단지 에너지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 선택권을 제한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위험은 지역이 감당하지만, 전환의 기회 역시 중앙의 결정에 의해 미뤄진다.

후쿠시마오염수 해양방출과 고리원전 수명연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된 패턴이 드러난다.

①기술적 안전성 기준이 정책의 전부가 되고, ②불확실성과 장기적 위험은 '관리 가능'이라는 말로 축소되며, ③지역주민의 불안은 비합리적 감정으로 취급되고, ④결정 구조에 대한 질문은 정치적 문제 제기로 밀려난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위험을 주변부로 밀어내는 구조가 반복 재생산되는 과정이다.

후쿠시마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오염수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위험을 확산시키고, 고리에서 계속운전되는 노후원전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위험을 고착시킨다. 하나는 해양이라는 공유재를 통해, 다른 하나는 지역이라는 공간을 통해 위험을 전가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 위험은 공유되지만, 결정은 공유되지 않는다.

따라서 후쿠시마오염수 문제를 구조적 폭력으로 비판하는 것은 동시에 한국의 원전정책, 특히 고리원전 문제를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다. 구조적 폭력은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합법'과 '과학'의 언어를 입고 나타난다.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후쿠시마의 바다와 부산의 연안에서 반복되는 이 구조를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안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을 기준으로 삼는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구조적 폭력은 형태만 바꾼 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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