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근 영주시장 권한대행은 부임 6개월 만에 혼란과 불신에 빠졌던 영주시정을 비교적 빠르게 안정시키며 ‘일하는 행정’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주말조차 반납한 채, 이른바 ‘독일 병정’처럼 현장을 누비며 영주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지역 정치 지형과 맞물린 갈등 속에서 끝내 중단됐다. 지난 6개월간의 공적을 뒤로한 채 전해진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 소식에 시민사회는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 “역대 최고의 부시장, 차기시장감” 평가까지
유 권한대행의 행정은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보여주기식 성과나 단기 민원 처리에 머무르지 않고, ‘영주 10년의 미래’를 전제로 행정의 기준을 다시 세우려 했다. 책상 위 보고보다 현장을 중시했고, 관행보다 원칙을 앞세웠다. 그 과정에서 해이해졌던 공직 기강이 점차 바로잡히기 시작했고, 관행에 안주해 온 기존 행정과 대비되면서 “역대 최고의 부시장”이라는 평가와 함께 “영주시에 필요한 차기시장감”이라는 인식이 지역사회 전반에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 영주 미래 설계도의 방향을 바꾸다
그는 행정의 역할을 관리가 아닌 촉진으로 규정했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확대간부회의를 금요일 오후 5시로 조정하고, 회의가 끝나면 공직자들과 함께 원도심 상가를 찾았다. 공직자가 먼저 소비자가 되고 손님이 돼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메시지였다. 일회성 행사나 캠페인이 아닌, 행정이 직접 몸으로 움직이는 실천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6개월은 영주 미래 설계도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정수소 발전소 유치 기반을 마련하며 영주의 산업 축을 전통 구조에서 에너지·미래 산업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을 만들었고, 방산기업 유치를 통해 영주를 국가 전략산업과 연결되는 도시로 재정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가산단·에너지·첨단산업을 연계한 중장기 산업 생태계 구상을 가시화했고, 정책용역을 ‘낭비’가 아닌 국비·도비 확보를 위한 필수 설계로 규정하며 준비 행정의 틀을 세웠다. 이러한 구상은 행정 내부를 넘어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공론 의제로 확장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특히 “베어링 국가산단에 어느 기업이 오겠느냐”는 패배의식이 만연했던 지역사회에, 영주도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그의 리더십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가능성을 말하는 행정, 도전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행정이었다는 평가다.
▲ 영주에는 일 잘하는 부시장보다 말 잘 듣는 부시장 ?
그러나 변화는 곧 저항에 부딪혔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한대행의 적극 행정을 두고 불만과 교체 요구가 제기됐다는 전언이 나온다. 특히 공식 행사 석상에서 공개적인 비판과 불편한 장면이 반복되면서, 이를 두고 ‘일잘하는 부시장보다는 말잘 듣는 부시장이어야 한다’는 해석도 이어졌다. 다만 이러한 공격이 거세질수록 역설적으로 유 권한대행의 인지도와 차기 시장 후보로서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지역의 유력 정치권 인사는 경북도에 부시장 교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전한다. 이에 유 권한대행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논란이 도정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도지사에게 정치적 부담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자진사퇴를 결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 저래 영주시민들은 일 잘하는 부시장을 보내고, 선출직들의 입맛에 맞는 관리형 부시장 체제로 신년을 맞이하게 됐다.
▲ ‘쪽지예산’도 해본 적 없는 영주시
정책용역을 둘러싼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일부 선출직과 정치권에서는 “왜 이렇게 용역을 많이 하느냐, 예산 낭비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유 권한대행은 정책용역이야말로 미래 예산을 끌어오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라고 강조해 왔다.
실제로 영주시는 국회와 중앙부처를 잇는 정치적 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정책과 사업 설계가 부족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예산결산특별위원으로 활동 중인 임종득 의원을 비롯해 영주출신 임미애 민주당의원, 전임 영주국회의원 박형수의원 등 예산 확보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있음에도, 영주시의 준비부족으로 이른바 ‘쪽지예산’ 하나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는 전언도 나온다.
심지어 영주시는 그동안 ‘쪽지예산’을 단 한 차례도 해 본 적이 없다는 말까지 공공연하다.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조차 모른 채 예산 확보의 기회 앞에서 손을 놓아온 셈이다.
▲ 존중받지 못하는 30년 지방자치, 그리고 시민의 선택
이번 유 권한대행의 사퇴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30년 간 누적돼 온 부패에 익숙한 기성정치와 무능한 행정 관성이 얼마나 견고한 지를 다시 보여준다.
임종득 의원이 공개 석상에서 “금권선거로 얼룩진 지난 30년 지방선거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 발언은, 이번 사태와 맞물리며 더 큰 울림을 준다.
일 잘하는 행정 책임자의 퇴장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오랜 시간 고착돼 온 기성정치와 관성이 여전히 영주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 권한대행은 퇴임을 앞두고 영주시의회에서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는 고사성어로 그간의 심경을 대신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는 말처럼, 영주 발전을 향한 진심이 왜곡되고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표현이었다.
이제 영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지난 30 년 간 켜켜이 쌓여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노회한 기성정치의 퇴장과,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새로운 판짜기가 필요하다. 영주의 다음 선택은 익숙한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 다수의 공통된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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