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李 '페이스메이커' 위해 통일부·국정원이 美와 협의해야…외교부 왜 나서나"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 출범 앞두고 전직 통일부 장관들 반대 성명 발표…"제2의 워킹그룹 반대한다"

외교부가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를 통해 미국과 협의를 주도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대해 전직 통일부 장관들이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이 될 것이라면서 공개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외교부가 단독으로 미국과 공조하게 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언했던 '페이스메이커' 역할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15일 임동원(25·27대 통일부 장관), 정세현(29·30대 통일부 장관), 이재정(33대 통일부 장관), 조명균(39대 통일부 장관), 김연철(40대 통일부 장관), 이인영(41대 통일부 장관) 등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당시 재임했던 통일부 전직 장관들은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가동에 반대하는 전직 통일부 장관들의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에 관해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 한미 워킹그룹 방식으로 이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한미 워킹그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산적인 협의가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제재의 문턱을 높이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 6월 북미 1차 정상회담 및 4월과 9월 남북 정상회담이 치러진 이후인 11월에 만들어진 한미 워킹그룹과 관련 당시 외교부 당국자는 "비핵화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에서 우리 입장을 전하고 미국 입장을 듣기 위한, 효율성의 측면에서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남북관계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것 아니었냐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워킹그룹은 2019년 1월 북한에 지원할 타미플루를 싣고 가는 화물차량이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북한에서 수령 거부 의사를 표명하면서 이 사건이 남북관계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직 장관들은 북한 사안을 외교부가 주도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북정책을 외교부가 주도하는 것은 헌법과 정부 조직법의 원칙에 반한다"라며 "과거 남북관계 역사에서 개성공단을 만들 때 나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 외교부는 미국 정부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전문성이 없고, 남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북정책은 통일부가 주무부처이며, 경제, 군사, 인도, 사회문화 등 전 분야의 회담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협의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며 "외교부 주도의 한미 워킹그룹 가동 계획을 중단하고, 통일부가 중심이 되어 남북관계 재개 방안을 마련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메이커'가 되려면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내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를 아는 사람들이 미국과 협의를 하도록 해야 한다"라며 "북한한테 무엇을 줘야 회담장이 나올 것인지, 액션 플랜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통일부와 국정원에 있다. 외교부가 왜 나서나"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수석대표로 회의를 가지는 형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남북, 북미 관계 개선) 시작도 하기 전에 '케빈 통감' 허락을 받고 무슨 대북 정책을 발표하고 수립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먼저 무엇을 북한과 이야기할지 챙겨서 통일부와 국정원을 포함한 우리 정부 기관들이 미국과 같은 급의 관료들과 만나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직 장관들은 이 회의의 미국 측 실무대표로 나설 것으로 전해지는 케빈 김 대사대리의 대북 제재 관련한 인식을 꼬집기도 했다.

이들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 실무 부처의 의견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서, 미국 실무자들과의 대북정책 협의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기보다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더 크다"라며 "최근 언론에 보도된 미국 실무대표의 생각을 보면, 그가 참여하는 한미 정책협의는 북미 정상회담의 환경 조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일 <중앙일보>는 지난달 25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만난 케빈 김 대사대리가 트럼프 대통령이 "압도적 우위에서 북한과 협상하길 바란다"며 "북한이 계속 협상에 나서도록 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협상력 확보가 중요하다. 제재를 유지하고 인권 문제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오는 16일로 예정된 한미 간 공조회의와 관련해 "명칭은 바꾸기로 한 것 같다"라며 통일부의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나 최종적으로 불참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외교부 주도의 협의체에 참여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를 가진 끝에 "이번에 외교부가 진행하는 미측과의 협의는 팩트 시트 후속 협의에 대한 내용으로 알고 있으며 한미간 외교현안 협의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통일부는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동맹국으로서 필요시 국방정책은 국방부가, 외교정책은 외교부가 미국과 협의하고 있으며, 남북대화, 교류협력 등 대북정책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필요시 통일부가 별도로 미측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대북정책과 관련해 유관부처 및 한미간 긴밀히 협의한다는 통일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이와 관련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간 대북 정책 조율 협의 관련해서는 현재 양측 간의 막판 실무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회의의 공식 명칭이 '대북 정책 조율 협의'냐는 질문에 "회의 명칭이나 참석 부서, 양측 수석대표 등은 오늘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해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회의 의제에 대해 이 당국자는 "기본적으로는 한미 공동 '팩트 시트'의 후속 조치 협의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라면서도 "팩트 시트에도 양 정상이 대북 정책과 관련하여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관해서 후속 조치를 협의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해 한미 간 대북정책이 협의의 주 내용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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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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