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베네수엘라 연안서 유조선 나포…'석유 의존' 마두로 정권 옥죄기 통할까?

미 법무 "외국테러조직 지원 혐의 선박 영장 집행"…인근 제재 대상선 30척 추가 나포 가능성도

미국이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유조선을 나포해 카리브해 마약운반의심선 공격에 이어 베네수엘라 경제 핵심인 석유 산업 압박에 들어갔다. 베네수엘라 인근에 미 제재 대상 선박 수십 척이 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겨냥한 추가 나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마두로 대통령의 정적인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출국금지령을 뚫고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0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경제 라운드테이블 행사 연설에서 "우린 방금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유조선 한 척을 나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조선 규모가 "매우 대형"이고 "아주 타당한 이유"로 나포됐다고 밝힌 것 외에 구체적 설명은 제공하지 않았다. 이어 유조선에 실린 기름은 어떻게 되는냐는 취재진 질문엔 "아마 우리가 가질 것 같다"고 답했다.

이날 팸 본디 미 법무장관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해당 유조선이 "외국 테러 조직 지원을 지원하는 불법 원유 운송 네트워크 연루"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본디 장관은 이러한 혐의로 해당 유조선이 수년 간 미국의 제재 대상이었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제재 대상 원유를 운송"해 와 이번에 "압수 영장"이 집행됐다고 설명했다. 작전엔 연방수사국(FBI), 국토안보수사국(HSI), 미 해안경비대가 국방부 지원으로 참여했다. 본디 장관은 미군이 헬기를 통해 해당 유조선에 접근해 나포하는 영상 또한 공개했다.

<AP> 통신은 미 당국자를 인용해 나포된 유조선은 '스키퍼호'로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이전엔 '아디사호'로 알려져 있었다고 전했다. 아디사호는 이란 혁명수비대·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를 위해 원유를 밀수하는 그림자 유조선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는 혐의로 2022년 미국 제재를 받았다. 유조선은 약 200만 배럴의 중질 원유를 싣고 지난 2일 베네수엘라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미 CNN 방송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해당 유조선이 쿠바로 가는 중이었고 최종 목적지는 아시아였다고 보도했다. 최근 정전 사태를 겪고 있는 쿠바는 베네수엘라 등에서 오는 원유에 에너지를 의존한다. 미국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원유의 주요 수출처는 중국이다.

이번 나포는 석유 수출에 의존 중인 베네수엘라 경제에 대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유조선 나포가 카리브해 마약운반의심선 폭격에 더해진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전술"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지난 9월 이후 카리브해 등에서 마약운반의심선에 대해 20차례 이상 폭격을 가해 80명 이상을 숨지게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당국자들이 향후 몇 주 내 추가 나포를 예상 중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움직임이 석유 시장을 약화해 마두로 정권의 힘을 빼려는 트럼프 정부 시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베네수엘라 인근에 미 제재 대상 배가 30척 가량 머물고 있어 추가 나포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원유 선적을 추적하는 사이트 탱커트래커스닷컴에 따르면 10일 기준 베네수엘라 해역 및 연안에 원유를 적재했거나 적재 대기 중인 선박이 80척 이상 떠 있는데, 이 중 30척가량이 미국 제재 대상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노골적 도둑질이자 국제적 해적 행위"라며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적 정책이 우리 에너지 자원을 빼앗으려는 고의적 계획의 일부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규탄했다.

미 민주당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카리브해 군사력 증강 목적이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AP>를 보면 크리스 밴 홀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번 사건을 통해 군사력 증강이 "마약 단속을 위한 것이라는 변명이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트럼프 정부 행보가 "무력에 의한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위한 것임을 보이는 또 하나의 증거"라는 것이다.

유조선 나포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지만 마두로 정권의 급격한 붕괴가 필연적이진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두로 대통령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당시 석유 생산량 급감 및 유가 하락에도 정권을 지켰다.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미 라이스대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부문 책임자 프랜시스코 모날디는 마두로 정권이 팬데믹 때도 살아남았다며 현재 압박이 마두로 대통령이 겪는 "최악의 경제적 압박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마차도가 당국의 출국금지령을 뚫고 비밀리에 베네수엘라를 떠나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10일 도착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다만 이날 몇 시간 전에 열린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해 딸 코리나 소사 마차도가 대신 상을 받았다.

마차도는 이날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위험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로 "물론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자신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오슬로 행을 도왔다고 말했다. 마차도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월 이후 처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차도가 가발을 쓰고 변장해 8일 베네수엘라 탈출에 나섰으며 배를 타기 위해 한 어촌 마을로 열 시간에 걸쳐 이동하며 10개의 군 검문소를 통과했다고 이 작전과 밀접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마차도는 이 마을에서 목선을 타고 네덜란드령 퀴라소로 향했고 그곳에서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측근이 보낸 비행기를 통해 오슬로로 향했다고 한다.

신문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 작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관여 정도는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행 추적 데이터에 의하면 마차도가 바다를 건너던 시점에 미 해군 F-18 전투기 두 대가 베네수엘라만으로 진입해 퀴라소로 이어지는 항로 부근에서 약 40분간 선회 비행을 했다고 한다. 신문은 마차도가 퀴라소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제공한 탈출 전문 민간 업자와 접촉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덧붙였다.

마차도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이끌어 온 공로로 지난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됐다. 마두로 대통령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마차도는 지난해 대선 출마가 금지됐고 대신 출마한 에드문도 곤살레스도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야당은 마두로 대통령이 당선된 2024년 대선에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10일(현지시간) 팸 본디 미국 법무장관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개한 미군이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유조선을 나포하는 영상 일부를 갈무리한 이미지. ⓒA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노르웨이 오슬로 그랜드호텔 발코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AFP=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효진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